지나친 정부 개입에 '제2 공인인증서' 나오나

김들풀 / 2020-05-27 12:02:58
과기부, '대체인증 서비스 보급확산' 회의 주재
인증사업자들에 상호인증 동참 여부 주문
시장 우월적 지위 플랫폼 기업에 쏠릴 우려
전자서명법 개정안 국회 통과로 공인인증서가 20여 년 만에 폐지됐다. 전자서명 시장 자율경쟁을 통해 국민 편의성을 높인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지나친 정부 개입으로 인증서비스 시장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우려가 초장부터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2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대체인증서비스 회사 및 기존 공인인증기관과 함께 '대체인증 서비스 보급확산'을 주제로 회의를 가졌다. 참석자는 카카오 및 이동통신사 대체인증 사업자와 기존 공인인증기관 5곳이다. 정부에서는 과기부 해당 부서 과장과 사무관, KISA 단장이 참석했다.

▲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인인증서의 독점적 지위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자서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사진은 공인인증서 관련 이미지. [UPI 자료사진]

이날 과기부 과장은 "전자서명법 개정에 즈음해 국민들이 다양한 인증수단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기존 인증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다.

KISA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카카오, 이통3사 등 대체인증사업자들이 인증사업자로 평가인정을 받으면 상호인증 기술규격(CTL)을 도입해 상호 간에 인증서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기존 공인인증기관들은 즉각 반발했다. 개정 전자서명법에 따라 시행규칙 등 관련 기술 규격이 나오기도 전에 대체인증 사업자들과 상호인증을 개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며, 시행규칙이 개정되는 6개월 이후에나 가능한, 무리한 요구라는 것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공인인증기관 한 담당자는 "이처럼 정부가 나서서 대체인증수단 도입을 주문하게 되면 자유시장 경제원칙에 위배된다"면서 "특히 시장이 한쪽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제2의 공인인증서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인증기관 담당자는 "현재 민간 기업들의 전자계약, 전자세금계산서 등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인증서는 시스템 개발(SI) 영업사들이 판매한 것이며 이들이 시장 지배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며, "공인인증기관이 직접 나서서 대체인증을 적용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자서명법 개정 취지에 맞게 시장 자율과 선택에 따라 인증서비스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 같은 정부 개입은 결국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카카오나 이통사 대체인증서비스로 몰리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서 "전자서명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과정에 참여해 시장 독점적 요인을 배제하는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과기부 담당 과장은 "이번 회의는 상호간 에 인증을 도입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시범사업이 정해진 것도 없다. 어떻게 하면 확산시킬 수 있는지 아이디어 차원에서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어느 한쪽을 편들어 줄 이유가 전혀 없다. 오로지 많이 기다린 국민들을 위해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 카카오나 이통사 인증서를 써도 법에 문제가 없다. 기존 공인인증기관도 미리 준비를 해야 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기부는 이날 회의에서 인증사업자들에게 26일(화요일)까지 상호인증 동참 여부에 대한 회신을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노력도 과하면 시장 개입으로 비칠 수 있다. 정부는 인증서비스 사업자들이 자율경쟁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시행령 및 시행규칙를 만들어야 한다. 

만약 거대 플랫폼 기업 대체인증서비스로 몰릴 경우 기존 공인인증기관은 물론이고 새로운 기술로 인증서비스 시장에 진출하려는 스타트업의 앞길도 막는 것이다. 개정 전자서명법의 자율경쟁 취지를 저버리는 일이다.

KPI뉴스 / 김들풀 IT과학 전문기자 itnews@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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