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A가 불을 질렀다. "그 정도 돈은 충분히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재난지원금을 덥석 받는 건 염치없는 일"이라는 게 A의 주장이다.
"기부를 왜 해. 여기저기 다니며 열심히 써야 경제 숨통이 트이지." 개인사업자 B가 반론을 펴고, 주거니받거니 논쟁은 후끈 달아올랐다.
쟁점은 진보연(然)하는 86세대 양심의 문제로 번졌다. 진보의 이중성까지 거론됐다.
논쟁이 뜨거워질수록 합의는 멀어져갔다. 결국 "각자의 선택"이라는 어정쩡한 결론으로 봉합한 뒤 자리를 파했다. 먹고 살만한 이들이 재난지원금을 받는게 염치없는 일인가, 기부를 해야 양심적인가, 그냥 쓰면 이중적인 건가…. 의문은 그대로 남았다.
정답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그럴듯한 합의의 논리라도 찾고 싶었다. 출근하자 마자 '현인'(賢人) C에게 전화를 걸었다. C의 설명은 늘 쾌도난마다. 복잡한 이슈가 싹 정리된다. 경제,금융,통화·재정 정책에 정통한 셀럽으로 베스트셀러급 책을 여러권 냈다.
"재난지원금, 기부하실 건가요. 쓰실 건가요." 다짜고짜 물었다.
"저요? 써야지요." 주저 없이 답했다.
C는 고위 공직자로, A가 말한 '먹고 살만한' 계층에 속한다.
"그 돈 안받아도 그 정도는 쓰실 수 있잖아요. 왜 기부하지 않으시고∼ " A의 논리대로 어깃장을 놨다.
"기부하면 정부가 쓰는 거지요. 만약 온 국민이 재난지원금을 기부한다고 칩시다. 그럼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C는 "기부하면 정부 지출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생계를 위협받는 소상공인을 위해 빨리 쓰라는 게 재난지원금"이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최문순 강원지사가 "기부하지 말고 모두 신청해 다 쓰자"고 한 것도 같은 얘기다.
양심에 찬, 선한 기부가 재난지원의 정책 효과를 반감시키는 역설을 품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먹고 살 만한 이라도 기부하지 않고 지원금을 모두 받아 쓰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이유는 없을 듯하다.
양심은 정작 기부 여부가 아니라 사용처를 놓고 따질 문제가 아닐까 한다. 먹고 살만한 이들이 공돈 생겼다고, 재난지원금으로 보톡스 맞고, 쌍꺼풀 수술하고, 피부관리 받고, 명품백 사고, 골프채를 바꾼다면 이야말로 양심의 문제다.
좀 더 촘촘히 사용제한 대상을 정하지 못하다 보니 재난지원금을 성형외과나 백화점밖 명품점에서도 쓸 수 있지만 '좀 사는' 이들이 이런 데서 그런 소비를 한다는 것은 재난지원금 취지를 망각한 몰지각한 일이다.
그래도 A는 반문할 것 같다. "기부는 기부대로 하고 그 만큼 자기 돈을 쓰면 될 것 아니냐"고.
"그 돈도 쓰고 자기 돈도 그 만큼 더 쓰면 어때?" 이러면 답이 될까. 물론 그날의 결론처럼 기부는 '각자의 선택'이다.
K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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