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주는 자와 피하는 자, 도심 '전단지 전쟁'

정혜원 / 2020-01-14 17:27:07
"달라고 오더니 면전서 쫙쫙 찢어 버려"
장소 옮겨가며 하루 11시간 소비하기도
생계·홍보 수단…"너그럽게 받아 달라"
출근·점심·퇴근, 피크타임에만 '번쩍'하며 등장했다가 이내 사라진다. 바로 도심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사람들이다.

겨울바람이 귀갓길을 서두르게 했던 지난 9일 저녁,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김모(74·여) 씨를 만났다. '전단지 알바'가 궁금해서였다.

저녁 8시까지 일을 한다는 그가 일을 끝낼 때까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직접 필라테스 업소 전단지를 돌려 보았다. 전단지 받는 게 귀찮아 일부러 벌레 피하듯 반원을 그리며 피해가는 사람들, 지나쳤다가 다시 와서 받아가는 사람 등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아무리 기피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생계가 달린 일, 쉽게 포기할 순 없는 일이다.

▲ 겨울 추위가 한창이던 지난 13일 낮, 서울시 종로구에서 한 여성이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눠 주고 있다. [정혜원 인턴기자]

"어차피 여덟시까지는 돌려야 해."

전단지를 빨리 배포하고 소진하면 일찍 퇴근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간제라고 했다. 빨리 돌린다고 퇴근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바닥에 버려진 전단지를 다시 줍기도 했다. 전단지가 소진되면 다시 받으러 가야 한단다.

영하권 날씨에 손을 주머니에 푹 집어넣은 사람들. 이들은 얼마나 전단지를 받아들까. 횟수를 세어 보았다. 5분 동안 43회 시도, 16회 성공했으니 약 37.2%의 확률이다. 운이 좋으면 계속 받아주기도 했고, 어떨 때는 야속하게도 줄줄이 외면하기도 했다.

시간이 되자 김 씨가 전단지 홍보 업체로 정산하러 갔다가 나왔다. 퇴근이었다. 차 한 잔하며 얘기 좀 나누자 했더니 피로해서 빨리 집에 가 쉬겠단다.

다음날에도 같은 장소. 주말, 공휴일,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거의 고정적으로 일한다. 귀갓길 지하철 안에서 몇 마디 나눴다. 그가 지인의 소개로 전단지 일을 시작한 건 1년 전, 영등포의 이 자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기 시작한 건 한 달 전이다. 직장인들을 겨냥해 점심시간 대와 퇴근시간 대에 각각 2, 3시간씩 뛴다.

김 씨는 전단지 알바와 맞닥뜨리는 행인들의 스트레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별의별 사람들 얘기도 꺼냈다.

"(전단지를) 하나 달라고 오더니 내가 보는 앞에서 쫙쫙 찢는 거에요. 정말 서러워서 울음이 나오는 걸 꾹 참았죠. 또 행인은 한참을 서서 나를 째려보더라고요. 자기를 불편하게 했다고 항의하는 것 같았어요."

전단지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알바'에게 전가되는 순간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왔다 갔다…"

업무 시간대 사이에 비는 시간은 어떻게 보낼까. 김 씨는 잠깐 귀가했다가 다시 복귀한다.

"(분당) 미금역에서 할 때는 의료기 업체에서 (시간을) 때웠지. (집까지) 왕복 세 시간이니깐."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몰려나오던 지난 10일 정오 쯤, 서울 중구에서 만난 60대 A(여) 씨도 사정이 비슷했다. 오후 1시 30분, 업무가 끝나자 그는 저녁 업무까지 쉬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출근·점심·퇴근시간 대 업무 시간을 합치면 하루 5시간 30분. 시간 대마다 전단지 돌리는 지역도 다르다. 아침에는 종각으로 향한다. 중간 중간 집을 오가는 시간까지 합하면 11시간이 소요된다.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A 씨는 벌써 일을 시작한 지 10여 년째다. 20년 이상 전단지 알바를 해 온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힘든 거에 비해 임금은 낮지만 생활에 보탬이 된다"고 말한다. 김 씨는 "함께 살고 있는 아들도 모른다"고 했다. 고달프지만 전단지 알바는 이들에게 소중한 생계 수단인 셈이다.

"이만한 광고가 없다"

전단지를 돌리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행인들의 불편도 뒤따른다. 행인 최모(남·56) 씨는 "일부러 받아주려고 하는 것도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또 윤모(여·26) 씨도 "(전단지가) 가방 안에 굴러다닌다"며 "버리는 것도 일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단지 홍보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실제 전단지 홍보를 하고 있는 업체들을 찾아갔다. 서울시청 인근에서 이미 '맛집'으로 소문난 B 식당은 인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점심 메뉴를 전단지로 돌리고 있다. 이 식당 관계자 C(여·30) 씨는 "적어도 2년 이상 전단지 홍보를 계속 해온 걸로 알고 있다"며 "전단지를 돌리고 안 돌리고 차이가 크다. 전단지 홍보가 점심 매출 상승에 큰 효과가 있더라"고 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스포츠 업체도 비슷했다. 이 업체 관계자 D(남·32) 씨는 "업체가 생긴 지 16년 이상 됐지만 매일, 계속 전단지 홍보를 해왔다"며 "전단지를 보고 전화문의가 많이 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인근 지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업체들의 경우, 인터넷 광고보다 전단지 홍보가 더 효과적이다. 이들 업체들이 전단지 홍보를 놓지 않는 이유다. 행인들의 스트레스와 관계없이 전단지는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솔깃한 광고로 다가가는 것이다.

오늘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실랑이 속에 '전단지 알바'의 고달픈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KPI뉴스 / 정혜원 인턴 기자 jh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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