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연내 통과, 사실상 무산…내년 1월 31일 연기 유력
EU 회원국 '3개월 연기안' 논의…존슨 내각, 조기 총선 제안 오는 31일 예정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사실상 무산됐다. 당초 브렉시트는 3월 29일로 예정됐었지만, 두 차례 연기되며 올해 10월 31일로 시한이 정해졌었다.
그러나 영국 하원은 아무런 합의 없이 브렉시트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No-deal Brexit)를 막기 위한 장치인 '레트윈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을 미루는 등 브렉시트를 저지해왔다.
이달까지 브렉시트를 이행하겠다던 존슨 총리의 계획도 좌절됐다.
EU가 브렉시트 연기 요청을 수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브렉시트 시한이 내년 1월 31일로 미뤄지는 '3개월 연기 방안'이 유력하다. 이에 따라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의 정치·사회적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英 하원 '노딜 브렉시트' 저지…물 건너간 10월 브렉시트
존슨 총리는 취임 후 백스톱 조항을 수용할 수 없으며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이를 견제하고자 영국 의회는 지난달 9일 벤 액트(Benn Act) 통과시켰다.
벤 액트는 EU 정상회의 다음 날인 19일까지 영국 정부가 EU와 브렉시트 합의에 도달하거나, 노 딜 브렉시트에 대한 의회 승인을 얻도록 한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다. 둘 다 실패하면 EU에 3개월의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벤 액트에 따라 존슨 총리는 EU 정상회의 직전인 지난 17일 오전 브렉시트 재협상 합의에 도달했다. 양측은 기존 안전장치의 대안으로 북아일랜드를 법적으로 EU 관세 및 단일시장 체계에 남겨두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어 18일 EU의 최고 의결기구인 EU 정상회의에서 승인했다. 그러나 합의안은 하원 문턱 넘기지 못하고 브렉시트가 내년 1월까지 3개월 추가 연장됐다.
19일 영국 하원은 이례적으로 토요일에 개원하고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투표 전 보수당 출신 무소속 의원 올리버 레트윈 경의 수정안을 상정, 가결했다.
이 수정안은 브렉시트 이행 법률이 의회를 최종 통과할 때까지 존슨 총리의 합의안에 대한 의회 승인을 보류하는 내용이다. 수정안은 찬성 322표 반대 306표로 통과됐다. 이에 존슨 총리는 합의안 승인 투표가 의미가 없다며 상정을 취소했다.
존슨 총리는 21일 EU와 브렉시트 합의안 재표결을 추진할 작정이었지만 하원은 합의안을 표결에 부치지 않았다. 존 버커우 영국 하원의장은 "브렉시트 합의안을 48시간 안에 다시 상정하는 것은 반복적이고 무질서하다"고 설명했다.
존슨 총리는 지난달 제정된 EU 탈퇴법에 따라 자동으로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EU에 보냈다. 하원이 지난 9월 이날까지 존슨 총리가 합의안을 통과시키거나 노 딜 브렉시트를 승인받지 못하면 EU 측에 브렉시트 추가 연장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도록 하는 법안을 처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연기 요청을 하느니 차라리 시궁창에 빠져 죽는 게 낫다(rather be dead in a ditch)"고 큰소리치던 존슨 총리는 연기 요청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또 연장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의회의 요청 때문이라는 내용을 담은 별도의 서한을 보내는 등 브렉시트에 대한 강경한 의지를 보였다.
영국 정부는 22일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투표 개최가 좌절되자 EU탈퇴 협정 법안(WAB·Withdrawal Agreement Bill)을 상정했다. 브렉시트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아예 승인투표를 거치지 않고 탈퇴협정 법안의 통과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110쪽의 본문과 124쪽의 설명서로 이뤄진 WAB는 영국과 EU 간 합의한 탈퇴 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영국 내부적으로 필요한 각종 법안을 말한다. 기존 EU 회원국으로서의 법률 등을 영국 국내 법률로 대체하고 전환(이행)기간, 상대국 주민의 거주 권한, 재정분담금 등 영국과 EU 간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법적 효력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영국 의회에서 법안 심사과정은 3독회제를 기본으로 한다. 이에 존슨 총리는 법안 관련 토론 시간을 제한하고 하원을 밤늦게까지 열도록 해 오는 24일까지 통과시키려고 했다. 하원은 이날 제2독회 표결에서 찬성 329표로 가결했다.
그러나 이 입법안에 대한 신속처리 의사진행 동의안은 이어진 표결에서 부결됐다. 야당은 법안의 분량이 방대한 만큼 사흘 안에 검토하기가 불가능하다며 계획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 경우 하원은 정부가 설정한 사흘의 일정과 관계없이 수 주 동안 WAB를 놓고 토론할 수 있다.
EU 선택 기다리는 브렉시트…미궁 빠진 브렉시트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 의회 재표결을 허가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공은 EU로 넘어갔다. 현재로서는 EU가 브렉시트 연기 요청을 수용하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브렉시트 3개월 연기안을 27개 회원국과 논의했다. 가디언은 EU 관료를 인용, 이미 EU 정상들은 영국의 연기 요청을 받아들이자는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또한 23일 회의에서 EU 정상들이 연기안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도했다.
브렉시트가 한 차례 연기되며 영국이 조기 총선으로 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존슨 총리는 앞서 WAB 신속처리 의사진행 동의안 표결 전 "의회가 브렉시트를 1월 또는 그 뒤로 연기하기로 하면 탈퇴 협정 법안을 철회하고 조기 총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도 브렉시트 연기가 확정되면 조기 총선에 동의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또 24일 존슨 총리는 제1야당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에게 서한을 보내 "브렉시트 합의안이 비준되도록 협력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EU가 브렉시트를 1월31일까지 연기하도록 허용한다면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존슨 총리는 12월 12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며 29일 조기 총선 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조기 총선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해 브렉시트를 완성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존슨 총리가 조기 총선 동의안을 상정하더라도 의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존슨 총리는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조기 총선 동의안을 상정했지만 충분한 찬성표를 얻지 못했다. 조기 총선을 실시하게 될 시 어느 쪽이 유리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2016년 국민투표로 시작된 브렉시트 논란
브렉시트가 처음 논의된 것은 3년 전인 2016년이었다. 2016년 6월 23일 당시 총리이던 데이비드 캐머런은 정치기반을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EU 잔류와 탈퇴를 두고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국민투표 결과 모두의 예상을 깨고 3.8%의 격차로 영국 국민들은 탈퇴를 선택했다.
이후 캐머런 총리의 뒤를 이어 집권한 테리사 메이 전 총리는 하원에서 세 차례나 탈퇴조약의 비준을 시도했다. 메이 전 총리는 취임 후 EU와 브렉시트 협상에 나섰고 합의에 성공했다. 그러나 강경 브렉시트 세력과 EU 잔류를 원하는 야당의 반대로 합의안은 하원에서 부결을 거듭했다. 탈퇴조약이 세 차례 부결된 후 메이 전 총리는 결국 임기를 못 채우고 사임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른바 '백스톱(backstop)'이라 불리는 안전장치 문제였다. 영국이 EU를 탈퇴할 시 영국령에 속하는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으로 남는 아일랜드 사이에는 국경 문제가 발생한다.
메이 전 총리는 이에 EU와 영국의 무역 협상이 완전히 타결될 때까지 북아일랜드를 포함해 영국 전체를 EU 관세 동맹에 남을 수 있도록 타협하는 백스톱 조항을 내놨다. 그러나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백스톱으로 영국이 계속해서 EU의 관세동맹에 남게 될 수 있다며 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영국 의회가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마련한 협상안을 거부하며 브렉시트는 10월 31일로 미뤄진 상황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당선됐다. 존슨 총리는 7월 24일 취임하며 백스톱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노 딜 브렉시트까지 공언했다.
KPI뉴스 / 임혜련 기자 ih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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