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 좋아한다…동시대 가장 훌륭한 작가"
차기작은 부산에서 촬영…"내년 봄에 다시 만나길"
'스승' 구로사와 기요시 신작서 각본, "애제자 아냐"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일본 게스트 중 꼭 만나봐야 할 인물을 꼽자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되겠다. 단골손님인 오다기리죠나 고레에다 히로카츠는 이제 식상하지 않은가. 1978년생인 하마구치 류스케는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감독 중 하나다. 올해 3월에 국내서 개봉한 '아사코'(2018)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고, '해피 아워'(2015)는 제68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며 낭트, 싱가포르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하마구치 감독이 BIFF와 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해부터다. 당시 '아사코'가 초청됐지만, 감독의 내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올해 BIFF에 처음 방문한 하마구치 감독을 지난 10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이번 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서 심사위원으로 나섰다.
"영화광이었던 문학도였다"
하마구치 감독은 태풍 때문에 귀국 일정을 당겼다. 하마터면 UPI뉴스와의 만남이 불발될 뻔했다. "영화 주인공 '아사코'처럼 (인터뷰를 안 하고) 돌아갈까 봐 두려웠다"라는 기자의 농담에 감독은 크게 웃었다. 영화에서 아사코는 연인을 두고 옛날 남자친구에게 잠시 눈을 돌리는 '변심의 아이콘'이다.
마라톤 같은 심사 일정에 지친 기색이 다분했지만, 영화 이야기를 꺼내자 눈빛이 달라졌다. 인터뷰가 끝나고 '한국영화 100년 특별전'을 본다며 직접 표를 꺼내 들기도 했다.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광이었던 문학도"다웠다. 하마구치 감독의 '픽'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1989)과 '오발탄'(1961)이었다.
지난 6월 서울서 '하마구치 류스케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한국에 골수팬이 많다"고 묻자 "문화가 비슷해서 그런 거 같다"며 멋쩍어했다. 좋아하는 한국 감독으로는 홍상수를 꼽았다. "동시대에서 영화를 만드는 작가 중에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부산은 10년 전 처음 방문하고 이번이 세 번째다"라는 그는 "바다가 있어서 그런지 서울보다 개방, 해방(open)적인 느낌이다"고 말했다.
"재해 그 자체를 담을 순 없다"
그가 와이드앵글 중에서도 다큐멘터리 부문의 심사를 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마구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재난 이야기'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난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연작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각각 '파도의 소리''(2011), '파도의 목소리: 신치마치'(2013년), '파도의 목소리: 게센누마'(2013), '노래하는 사람'(2013)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재난 다큐멘터리의 숙명에 대해 "재해 자체는 찍을 수 없다. 카메라 들이밀어서 다시 일어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어떤 일이 발생할 것 같을 때 카메라를 들기 시작해 사건의 전 과정을 담는다. 하지만 재해는 흔적만 만날 수 있을 뿐 순간을 담을 수는 없다. 이때 그는 "재해 후에 무엇을 찍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의 '겸양(modest)'에 대해 강조했다. 이번 심사에서 "이미지와 사운드를 얼마나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뤘는지를 집중적으로 봤다"고 전했다.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에게서 카메라 잡는 법을 배웠다는 하마구치 감독은 "카메라는 현실을 담는 도구 그 이상이다. 그러므로 촬영이란 행위는 위험(danger)하기도 하며, 위험성(risky)이 따르는 일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난을 인간사에 대입하기도 했다."세상이 복잡한 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어난다는 것이다"며 "다만 내 행동이 좋은 결과를 낳을 거라 믿고, 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재해 후에 우리가 대처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일관계는 재난 상황 아냐"
하마구치 감독은 재난의 상흔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그는 "살아남은 이들에게서 피해자의 이미지를 거두려고 노력한다"며 "각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재해가 피해만을 남긴 것만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으며 계속해서 '껍질'을 벗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명 '재난전문가'로 불릴 수 있는 그에게 작금의 한일관계는 '재난'으로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아니다"였다. 재난, 재해에는 "돌이킬 수 없는 뉘앙스가 있다"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한일관계 경색은 명백히 인간이 일으킨 문제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개인과 개인이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인 한일관계 개선의 방법의 하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는 "묵묵히 영화를 만든 것밖에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렇지만 하마구치 감독은 한일을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차기작 계획을 묻자 그는 "아직 자세한 정보는 알려줄 수 없지만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부분이 있다"라고 귀띔했다. 사실 그의 생애 두 번째 부산 방문은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년 봄 크랭크인에 앞서 시나리오 작업 차 들렸다고 한다.
"나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지구의 끝까지'는 올해 BIFF 초청작 중 하나다. 아쉽게도 그는 새 작품을 찍고 있어 사제간의 만남은 불발됐다. 하마구치 감독은 지난해 해당 작품의 각본에 참여해 결과물만을 기다리고 있다. "스승 영화에 참여할 정도면 애제자 아니냐"라는 질문에 "다른 제자들도 다 나처럼 한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난 6일 BIFF '살인의 추억' 스페셜 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봉준호 감독은 히치콕을 이을 유일한 존재"라고 극찬했다. "그렇다면 본인은 누구를 이을 것인가"라고 묻자 하마구치 감독은 "그건 나를 바라보는 관객의 몫"이라고 대답했다.
KPI뉴스 / 김혜란 기자 kh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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