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종료 앞두고 유족 간절한 호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종료를 앞두고 경남 양산지역 '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 유족이 1950년 당시 상황을 증언해 줄 지역민을 애타게 찾고 있다.
희생자 유족은 "가족의 아픔을 넘어, 잊힌 역사를 복원하고 억울한 희생자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며 양산시내에 현수막을 내걸어 제보를 호소하고 있다.
| ▲ 양산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유족이 양산초교 인근에 걸어놓은 현수막 [유족 제공] |
일제강점기 일본에 강제징용을 당했던 김홍(1923년생) 선생은 해방 이후 고향인 양산시 북부동 현재 양산초교 인근에 삶의 터전을 잡고 이발소를 운영하던 1950년 보도연맹 소집에 응했다가 '불귀의 객'이 됐다. 당시 '독립할아버지'로 불리던 마을 어르신(최만척)의 만류에도 김홍 선생은 "죄가 없으니 별일 없을 것"이라고 나섰다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김홍 선생의 부인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갓난아기를 시댁에 맡기고 1952년 재혼하기 위해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는데, 당시 재판 기록에 적힌 이혼 허락 사유는 '전쟁 직후 실종'이었다. 결국 이때 기록이 보도연맹 학살 희생자가 아닌 단순한 전쟁 실종자로 분류되는 근거를 제공하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이후 양산지역 유족회에서 공사 중 발굴된 유골들을 모아 위령비를 세워 안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 위령비가 철거되면서, 김홍 선생을 비롯한 희생자들의 생물학적 확인 방법은 불가능하게 됐다.
우리나라 근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함께한 김홍 선생 부부의 외동딸은 친적집을 전전하며 힘겹게 성장한 뒤 가정을 꾸려 살다가, 2017년께 요양원에 입원해 있던 어머니를 극적으로 상봉한 뒤 기구한 가정사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3개월 뒤에 노모를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다.
김홍 선생이 양산지역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됐다는 정황은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충분히 확인됐다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문제는 김홍 씨가 아직도 사망이 아닌 '전쟁 실종자'로 기록돼 있는데다 '보도연맹'에 소환됐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증언해 줄 지역민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조사 사실을 2022년께야 알게 된 유족들은 뒤늦게나마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 확보에 나섰지만, 사건 조사 종료 시점을 얼마 남기지 않은 여태까지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다.
김홍 선생의 외손자인 박성원(대구대 교수) 씨는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상주를 방문해 족보를 백방으로 찾으러 다녔으나, 허사였다"며 "사망 기록된 족보 자료와 학살 당시 상황을 증언할 주민을 찾는 일이 절실하다"고 하소연했다.
박 씨는 "위원회 (보도연맹 관련) 조사 종료 시점이 설 명절 직후에 종료된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라며 △1950년대 양산 북부리에 살았던 할아버지(김홍) 가족(김병구·김홍길) △당시 '독립할아버지'로 일컬어지던 최만척 가족(아들 최국명) △1950대 양산초교 인근 이발소 등을 기억하는 지역민들의 제보를 간절히 호소했다.
한편 '보도연맹(국민보호선도연맹) 사건'은 6.25 전쟁이 시작된 1950년 7~8월 전국에 걸쳐 한국전쟁 시기 가장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은 전쟁 범죄로 일컬어진다.
'보도연맹'은 전쟁 이전에 남한 내 공산주의 세력 약화를 위해 과거 좌익에 몸 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가입시켜 만든 단체로, 전쟁 이후 20만 명가량(양산지역 700여 명)의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좌우 이념대립 속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제정에 따라 설립된 진실화해위원회(1기)는 4년 2개월에 걸친 보도연맹 학살 사건 조사 기간 동안 4900여 명의 희생자를 확인했다. 그 뒤를 이어 2020년 12월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원회 또한 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피해 사례를 수집해 오고 있는데, 활동 시한이 1년 연기된 끝에 올해 5월 26일까지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양산지역 주민은 700여 명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97명, 제2기 위원회에서 19명 등 총 116명이 피해자로 인정됐다. 이들 유족들은 이를 바탕으로 국가에 피해보상을 받았거나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KPI뉴스 / 최재호 기자 choijh1992@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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