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원주 레지던시 작가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폭력과 부패, 소설로 담아내
장르문학과 순문학 경계에서 폭력을 성찰하는 문체
"한국 사회 밑바닥 흐르는 고통의 주파수 감지된다"
깊은 사유나 비극적 성찰이 없는 잔혹한 오락거리들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실제 벌어지는 죽음과 고통의 무게를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은 채, 감상적이고 상투적인 클리셰로 포장해 죄책감 없이 즐기도록 만드는 '작품'들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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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한국 작가들과 더불어 집필 중인 아일랜드 작가 팀 맥가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아일랜드 출신 팀 맥가완(Tim MacGabhann·38)은 폭력에 대한 단순한 묘사를 넘어서서 인간의 신경계와 육체로 파고드는 언어로 그 비극성을 증언해온 작가다.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과 권력의 부패를 심층 취재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하드보일드의 건조한 리듬에 서정의 날을 세운 문체, 절망 속에서도 무표정한 유머를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범죄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되 폭력을 볼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긴장이 문장을 지배한다.
1988년 아일랜드 킬케니에서 태어난 팀 맥가완은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영문학과 프랑스어를 공부한 뒤 2013년 멕시코로 건너갔다. 로이터,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 등에 기고하는 프리랜서 르포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마약 카르텔의 폭력, 정치 권력과 자본의 부패, 강제 실종과 원주민 탄압이라는 가혹한 현실을 목격했다.
저널리즘 기사의 틀은 현장의 고통과 인간 내면의 절망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취재원이 살해 위협으로 증언을 번복하고 기사가 무산되는 좌절 속에서 그는 픽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탄생한 장편 데뷔작 'Call Him Mine'('그를 내 사람이라 불러다오'.2019)은 멕시코에서 살해당한 동료이자 비밀 연인이었던 사진기자 카를로스의 죽음을 파헤치는 기자 앤드루의 추적기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올해의 스릴러'로 선정되며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이어 발표한 후속작 'How To Be Nowhere'(2020)에서는 파리로 도피해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약물 중독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실종된 동료를 찾기 위해 다시 멕시코의 지옥도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회고록 '더 블랙 풀(The Black Pool: A Memoir of Forgetting. 2025)'은 멕시코 최전선에서 겪은 취재 트라우마, 알코올과 마약 중독, 2014년 멕시코시티의 시위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이를 통해 단주 모임에 나가며 회복의 길로 들어선 자전적 궤적을 담았다.
언론계와 평단으로부터 '장르 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문체'로 호평을 받으며 입지를 다진 그의 작품은 아직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다. 2026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원주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돼 박경리의 숨결이 깃든 토지문화관에서 집필 중인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서울 같은 메가시티가 아닌, 산으로 둘러싸인 토지문화관에 첫발을 디뎠을 때 느낌은?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짙은 안개 속에서 위압적으로 불쑥 솟아오른 도시의 모습이었다. 마치 프린터 인쇄 오류로 긁힌 자국처럼 솟은 거대한 마천루들, 붉은빛을 뿜는 비행 경고등, 그리고 긴 다리 주변을 감돌던 묘한 보랏빛 광채가 그것이다. 차 안에서 자다가 깨어나보니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소나무 향, 비에 젖은 흙과 나무 냄새, 젖은 돌의 숨결이 감도는 공간이었다. 토지문화관에서 눈을 뜰 때면 이토록 넘쳐나는 아름다움을 대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덜컥 겁이 날 지경이다. 보랏빛 테두리를 두른 푸른 하늘을 향해 멀리 뻗어 나가는 산 능선의 굴곡, 그리고 이른 아침 안개를 배경으로 천천히 서예 붓글씨를 쓰듯 서 있는 소나무 줄기들의 풍경은 제가 늘 머릿속으로 꿈꿔왔던 무엇이었다. 그것은 '잡념이 모두 사라진 삶'의 이미지인데, 늘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를 소진해 가면서까지 그러한 상태에 가닿으려 애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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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박경리 동상 앞에 선 아일랜드 작가 팀 맥가완. 그는 "아일랜드와 한국의 역사적 상흔은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폭력과 카르텔, 부패가 만연한 멕시코의 취재 현장으로 뛰어든 배경은?
"현장에서 목격한 것들을 과장해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가해질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 파괴와 말살의 모든 양상을 뼈저리게 일깨웠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말한 '사회적 살인' 형태는 너무나 다양하다. 개인이 개인을 직접 칼이나 총으로 해치는 물리적 행위만이 살인이 아니다. 살인, 빈곤, 심리적 고통은 모두 하나의 연속선상에 놓인 폭력이다."
-기사로 담아낼 수 없었던 현실의 비극과 인간의 내면을 허구의 서사로 풀어내야 했던 이유는?
"매우 현실적인 결정이었다. 당시 석유 회사들에 의해 쫓겨나는 원주민 공동체, 그 공동체에 공포와 물리력을 행사하는 과정의 회색지대를 취재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Call Him Mine'을 관통하는 실제 사건의 바탕인데, 당시 기록했던 방식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장에서 마주했던 극심한 공포와 결핍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니고 있던 유머 감각과 굳은 의지를 글 속에 온전히 담아낼 방법을 몰랐다. 두려움에 떨며 덫에 갇힌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증언하겠다고 나섰다가도, 현지에서 직면하게 될 살해 위협 때문에 자연스럽게 진술을 번복하곤 했다. 로이터의 담당 편집자는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의 탈세 활동에 관한 금융 탐사보도로 긴급 차출돼, 결국 기사는 사장되고 말았다. 저널리즘 영역에서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던 터라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후속작('How To Be Nowhere')에서는 첫 작품에 담겼던 일말의 낙관주의마저 완전히 뒤집어엎고 싶었다.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로서 목격하도록 강요받는 끊임없고 격화되는 파괴 행위들에 극도로 분노해 있었고, 개인적인 마음의 응어리도 컸다."
-극도의 마초이즘과 폭력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동성의 사랑과 상실, 온전히 애도하지 못하는 자의 고통을 누아르 장르와 결합한 배경은?
"처음 글을 쓸 때는 두 인물이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저 시신으로 누워 있는 젊은 학생 위로 두 남자가 서서, 어떻게 하면 이 청년에게 원래의 얼굴을 되찾아줄 수 있을까 고뇌하는 장면에서 시작했다. 취재를 마치고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는 차 안의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제 작업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인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가만히 지켜본다. 카메라를 설치해 두면 그들이 자신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제게 말을 건넨다. 마초이즘과 퀴어라는 정체성이 본질적으로 서로 모순된다고 깊이 고민해 보지는 않았다."
-폭력을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으면서 사건 이면에 깃든 비극성을 날카롭게 포착해 내는 문체의 원칙은?
"솔직히 말해 우리가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대다수의 콘텐츠는, 우리 주변에 편재한 사회적 폭력이 반영된 끔찍한 펄프물이거나 자각 없는 키치에 불과하다. 저는 독자들이 원한다고 믿는 것을 제공하되, 그들이 바라는 만큼의 많은 분량으로는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는 모두 매 순간 서로 다른 자극에 노출되어 심리적으로 갈가리 찢겨 있다. 독자의 주의력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다. 저는 인간의 타협 불가능한 근본 조건들, 즉 호흡, 육체, 그리고 덧없음이 남기는 물리적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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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간한 회고록에 멕시코 취재 당시 겪었던 마약·알코올 중독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그 회복의 여정을 고백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며 깨달은 '살아남음'의 의미는?
" '살아남음(survival)'이란 양가적인 단어이다. 나무와 바위를 자주 바라본다. 그것들은 더 거대한 무언가가 들이닥쳐 날려버릴 때까지 그저 그 자리에 우두커니 버티고 서 있을 뿐이다. '생존'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바로 그런 완고하고, 거의 반항적이기까지 한 광물적인 기질이 연상된다. 나를 산산조각 낼 더 거대한 무언가가 닥쳐올 때까지 그저 자리를 지키며 버티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식민 지배와 유혈 분쟁의 역사를 품고 있는 아일랜드와 한국은 공통점이 많다. 한국 사회에 대한 느낌은?
"거대한 역사적 비극의 무게 앞에서 느끼는 아찔한 현기증을 공유하고 있기에, 한국에 대한 연대감을 느낀다. 한국 사회 밑바닥에 흐르는 고통의 특정 주파수와 웅웅거림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이 누리고 있는 극단적인 번영의 수준과,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서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Asian Tigers)'에서 이름을 따온 아일랜드의 경제 호황기인 '켈트의 호랑이(Celtic Tiger)' 시절은 결코 온전한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 호황의 절정기에 저는 더블린의 자살 예방 자선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었다. 한국어 능력이나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을 걷고,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몸짓을 관찰하다 보면 심리적 중압감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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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 맥가완은 "이른 아침 안개를 배경으로 서 있는 소나무 줄기들의 풍경은 늘 머릿속으로 꿈꿔왔던 무엇이었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맥가완은 한국 영화가 자신의 글쓰기에 미친 큰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10대 시절부터 열광한 영화감독으로 박찬욱을 꼽았으며, 박 감독은 그를 전율케 한 창작자라고 높이 평가했다. 박 감독을 향한 애정은 자연스레 황석영 소설 '철도원 삼대'로 이어졌고, 셰이머스 히니를 번역한 김혜순 시인은 아일랜드와의 연관성을 떠나 일찌감치 독립된 김 시인 특유의 시 세계 그 자체를 깊이 사랑했다고 언급했다.
아르헨티나 국가 테러의 암흑기를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을 차기작으로 구상 중인 맥가완은 발칸반도와 남동부 유럽을 가로지르는 현장 취재도 마친 상태다. 그는 매지리 토지문화관 생활에 대해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이 풍경은 남은 생애 동안 내면에 내내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 고요한 풍경 속 맥가완이 소설에 썼던 말.
'세상의 소음은 방심하는 순간 우리를 집어삼킨다. 때로는 가만히 앉아 자신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방식이다.' _ 'How To Be Nowhere'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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