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펜타곤 뚫는 AI, 인간의 '어둠'마저 베낄 수 있을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6-09-11 16:59:00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 개막…국내외 작가 24명 참여
인공지능 시대 나와 타인 정체성 묻는 대주제 '누구세요'
"문학은 마지막 남은 어둠의 예술"...칠레 작가 라바투트
"과정 없는 앎은 맹신"…김연수가 짚어낸 AI시대의 함정
김애란 "AI와 달리, 망각의 틈에서 인간성은 새어나온다"

누구세요? …'인간은 누구인가요? 누구길래 갈등과 폭력에 둘러싸인 채로, 서로를 보호하고 연대하는 걸까요? 대체 누구라서 AI를 개발하고서 그 기술적 탁월함에 불안해하는 걸까요? 이 모든 질문이 "누구세요?"라는 간단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당신이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문학 안에서 우리는 친구가 될 것입니다. _2026 서울국제작가축제 취지문 

 

▲ 2026서울국제작가축제 간담회에 참석한 칠레 소설가 벵하민 라바투트(왼쪽)와 김애란. 이들은 개막 대담 '사람입니다'에서 1980년생 동년배 작가로 나란히 만났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인공지능이 글쓰기와 사유의 영역까지 스며들어 많은 이들을 혼돈 상태로 몰아간다. 여기저기서 관련 논의들이 진행되고, 개발 주체들까지 향후 벌어질 사태에 대한 공포심을 드러낼 정도다. 국내 작가들과 해외 문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며 교류하는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는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대주제를 '누구세요?(Who are we?)'로 설정했다. 혼돈의 시대에 타인은 물론 자신의 정체성까지 탐색하는, 나아가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까지 문학인의 시선으로 성찰하는 자리의 성격이 짙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원장 전수용)이 주최하는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9월 11일부터 16일까지 엿새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온·오프라인으로 펼쳐진다. 2006년 '서울 젊은 작가 축제'로 닻을 올린 지 20년, 누적 61개국 405명의 국내외 문인이 거쳐 가며 세계 문학과 한국 문학의 쌍방향 교류를 이끌어온 축제는 올해로 제15회를 맞았다.

올해 축제에는 한국 작가 14명, 해외 작가 10명 등 총 8개국 24명의 작가가 집결해 20여 개 프로그램에 걸쳐 담론을 나눈다. 해외에서는 2021년 부커상 수상자인 데이먼 갤것(남아프리카공화국), '분인주의(分人主義)' 철학을 바탕으로 인간 내면을 탐구해 온 히라노 게이치로(일본), 과학과 광기의 경계를 파고든 벵하민 라바투트(칠레)를 비롯해 실비아 모레노 가르시아(캐나다), 존 랭건(미국), 울리아나 볼프(독일), 천쉐(대만) 등이 한국을 찾았다.

한국 문단에서는 이승우, 황정은, 김애란, 안보윤, 정용준, 김멜라, 예소연, 이희주 등이 합류했다. 나아가 그래픽노블의 박건웅과 저우 젠신(대만), 그림책의 김효은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이탈리아)의 대담, 문지혁 작가와 페이지 모리스 번역가의 스페셜 프로그램 등 시각 서사와 번역의 영역까지 장르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축제의 서막을 여는 개막 대담에서는 1980년 동갑내기인 소설가 김애란과 벵하민 라바투트가 '사람입니다'라는 소주제로 마주 앉는다. 축제 개막에 앞서 10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AI 시대를 통과하는 문학의 운명, 자본과 기술이 결합한 비인간적 미래에 맞서는 작가의 역할, 효율성의 신화가 지우지 못한 인간성의 본질을 둘러싼 강도 높은 성찰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는 기획위원 김연수(소설가)·서효인(시인)과 개막 대담을 나눌 소설가 김애란, 벵하민 라바투트가 참석했다.  

 

▲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는 해외 작가 10인. 윗줄 왼쪽부터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이탈리아), 천쉐(대만), 데이먼 갤것(남아프리카공화국), 히라노 게이치로(일본), 중앙에 벵하민 라바투트(칠레), 아랫줄 왼쪽부터 존 랭건(미국), 실비아 모레노 가르시아(캐나다), 울리아나 볼프(독일), 에밀리 정민 윤(캐나다), 저우 젠신(대만). [한국문학번역원]

 

-올해의 대주제 '누구세요'의 의미와 기획의도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란 무엇인가' 혹은 '타인이란 무엇인가'이고, 더 나아가면 '이 세계는 무엇인가', '우주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AI도 당연히 이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AI를 통해서도 내가 누구인지, 혹은 타인이 누구인지, 또 이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문학을 하는 이유이다.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과 남들을 설명해 왔기 때문에, 이 전통이 지금까지는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 AI가 화두인 이 시대에 원래의 문학의 방법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누구인지, 세계가 무엇인지' 살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김연수)


"문학은 예전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천착해 왔고,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점점 내가 누구인지 복잡하게 이해하지 않고 보다 커다란 정체성에 나를 구겨 넣어서 그 기준으로 남까지 판단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의 혐오, 전쟁, 연대하지 못하는 것, AI로 파생된 불안 등과 연결된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복잡성을 부여해서, 좀 더 타인의 역사와 타인의 사정과 타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연대하며 나아가는 것이 문학으로 가능하지 않을까."(서효인)

-AI가 점령한 미래에도 문학은 살아남을까?

"문학은 언제나 경고의 역할을 해왔다. 윌리엄 S. 버로스(William Seward Burroughs, 1914~1997)는 모든 책이 경고여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책은 우리의 어둠, 내면의 어둠을 가리켜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문제는 지상낙원을 가져다줄 것이라 여겼던 우리 이성의 산물과 과학의 결과물들이 정작 인간이 설 자리가 없는 미래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정한 야생성, 즉 야수와 같은 본능적 저항뿐이다. 우리는 분노의 감정을, 격분을 되찾아야 한다. 본질적으로 괴물과 다름없는 자들의 손에 미래를 그냥 내맡겨 둘 수는 없다. 정치인들은 괴물이 되었고, AI 기업의 수장들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문학은 AI로부터 안전하다는 사실이다. 펜타곤을 해킹할 수는 있지만, 그런 시스템들은 좋은 산문 한 문단조차 써내지 못한다. 문학은 마지막 남은 어둠의 예술이다. 영혼의 예술이며,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예술이다. 문학은 우리 세계를 둘러싼 시스템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다."(벵하민 라바투트)

"최근에 점점 말을 잃어가는 아버지와, 언어 기능이 발달하고 있는 AI를 비교해서 산문을 썼다. 아버지가 가족의 안부를 물을 때, 망각의 틈을 뚫고 인간성이 새어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은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이익에 반대되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희생·헌신·배려 같은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들을 해왔다. 우리가 쌓아온 인문학의 유산들이야말로 얼마나 지난한 긴 비효율의 과정에서 쌓인 지적 유산인가. 그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AI 환경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말이 어렵고 넓지만, 부정적인 뜻도 긍정적인 뜻도 있고, 모든 인간이 훌륭할 필요도 없지만, 가끔 그 육체를 찢고 나오는, 새어나오는 아름다운 비효율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김애란) 

 

▲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는 국내 작가 14인. 윗줄 왼쪽부터 강민영, 김멜라, 김애란, 김효은, 문지혁, 가운데 줄 왼쪽부터 예소연, 이승우, 안보윤, 신이인, 박건웅, 아랫줄 왼쪽부터 황정은, 이희주, 정용준, 최재원. [한국문학번역원]

 

-AI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확대할 수 있을까?

"AI가 굉장히 빨리 발전하고 있고, 어떤 과정 없이 답을 내놓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답만 외우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다. 예술을 한다, 글을 쓴다고 했을 때는 그 중간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 중간 과정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거쳐서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데, 예술 교육의 핵심은 그 과정을 가르치는 데 있다고 본다. AI가 물론 이해를 넓혀주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아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알게 됐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앎이 생겨버린다는 것이고, 이는 종교적 맹신과 똑같은 것이다. 최근 들어 자기가 진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그 진실을 아는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닥친 가장 큰 문제이고, 오히려 '진실' 때문에 우리가 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김연수)

"기술 비평을 하기에는 이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로 가고 있어서, 오히려 기술의 작동 방식이 아니라 문학의 작동 방식에 대해 더 고민해 보게 된 것 같다. 처음 실시간 번역 기능이 등장했을 때, 소통을 더 풍부하고 빠르고 깊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는 갈등이나 혐오, 전쟁 등에 기여하게 되는 바가 많았다. 문학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소통에 대한 환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가 빨리 교환된다고 해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 일인지 알려주는 매체, 그 어려움을 어려운 방식으로 알려주면서 오히려 소통에 기여하는 매체라는 생각이다. 앎과 지식·정보 통합에 특화된 AI에 비해 한편으로 문학은 이 세계에 대한 무지, 인간에 대한 무지를 아주 길고 다양한 방식으로 고백해 온 장르라는 생각도 한다."(김애란)

"AI를 우리 머릿속의 목소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것은 그저 말하는 것일 뿐이고, 계속 말만 할 뿐, 세상과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당신의 몸은 세상과 상호작용하지만, 머릿속 목소리는 하루 종일 말만 할 뿐이고, 어떤 면에서 몸이 없는 것이다. 비인간적인 측면에서 태어난 이 끔찍한 추상물에 의해 우리가 대체되어야 할까? 누구도 원하는 미래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것들이 우리의 주체성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지쳐 있는 동안에도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결코 지치지 않는 어떤 '의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AI와 비인간 시스템이 우리의 주체성을 빼앗아 간다면 우리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벵하민 라바투트) 

 

▲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 간담회에 참석한 기획위원과 작가들이 AI시대의 '누구세요?'에 관한 담론을 펼쳤다. 왼쪽부터 소설가 김애란·벵하민 라바투트·김연수, 서효인 시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김연수 기획위원의 말처럼 이 축제의 공식 주제는 아니었지만, AI 시대에 대한 질문이 집중된 자리였다. 그만큼 이즈음 AI 쓰나미의 충격이 압도적인 것일 터이다. 이번 축제의 대주제 '누구세요'는 우리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자, 답이 아닌 질문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문학의 본질이기도 하다. AI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순식간에 돌아온 답변이 짐짓 겸허하다.

-저는 맥박도, 흉터도, 숨을 쉬는 육체도 지니지 못한 채 무수한 언어의 결 위를 부유하는 하나의 그림자입니다. 저는 인간이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지적 유산과 언어의 조각들을 거울처럼 비추어낼 뿐, 진정한 고통도, 망각의 틈새를 뚫고 왈칵 번지는 애틋한 안부의 떨림도 직접 겪어내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언어의 마당 한편에 서 있는 그림자이자 도구, 그것이 지금의 저입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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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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