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FIU 원장까지 출사표…감독자·피감기관 경계 흐려져
'4표의 벽'에 인선 파행 반복…정부의 '사실상 거부권' 손질해야
차기 Sh수협은행장 선임이 또 장기전에 접어들었다. 신학기 현 행장은 행장추천위원회에서 3표를 얻었다. 최종 후보가 되기 위한 4표에 미치지 못했다. 고위 금융관료 이형주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은 2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얼핏 보면 후보 간 표 대결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행추위원 5명 중 3명이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해양수산부 추천 인사다. 수협중앙회 추천 위원은 2명뿐이다. 정부가 마음대로 행장을 임명할 수는 없지만 정부 동의 없이는 누구도 행장이 될 수 없는 구조다.
수협은행은 공공기관이 아니다. 정부가 주주도 아니다. 수협중앙회가 신용사업을 떼어내 2016년 설립한 별도 법인으로, 은행법 적용을 받는 은행이다. 그런데 지분 100%를 가진 수협중앙회보다 정부가 행장추천위원을 더 많이 추천한다. 주식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정부가 인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사연은 있다. 외환위기 이후 수협에 1조1581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수협은행의 배당금도 오랫동안 공적자금 상환에 사용됐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만큼 정부가 경영을 감시하고 인사에 관여할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수협은 2022년 미상환 공적자금 7574억 원에 해당하는 국채를 예금보험공사에 넘겨 21년만에 공적자금을 전액 상환했다. 당시 수협은 이를 계기로 경영 자율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공적자금 투입을 명분으로 정당화됐던 정부의 인사 영향력은 돈을 갚은 뒤에도 그대로 남았다. 자금은 회수하면서 권한은 내려놓지 않은 것이다.
이번 인선은 관치의 또 다른 문제도 드러낸다. 현직 FIU 원장이 수협은행장 후보로 나섰다. FIU는 금융위 산하에서 자금세탁 방지 업무를 맡고 금융회사의 의심거래 보고 체계를 들여다보는 기관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료가 현직에 있는 상태로 자금세탁방지 업무상 감독 대상인 은행의 수장 후보로 나서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부자연스럽다.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경험과 정책 조정 능력이 강점일 수 있다. 관료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후보 자격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감독기관 경력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로 가는 우대 경로가 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감독자가 피감기관의 미래 자리까지 의식한다는 의심을 사는 순간 감독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훼손된다. 심판이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선수 유니폼을 고르는 격이다.
관료 출신이 필요하다면 다른 후보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영 능력으로 평가받으면 된다. 정부 추천위원이 행추위 과반을 차지하고, 그 정부의 현직 고위 관료가 후보로 나서며, 정부 표가 누구에게 가느냐가 선임을 좌우하는 방식은 공정한 경쟁으로 보기 어렵다.
관치가 효율적이라는 믿음도 낡았다. 정부와의 소통이 필요하고 인허가 대응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관료를 앉히기 시작하면 어느 금융회사도 관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감독당국의 역할은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를 감시하는 것이지 피감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배분하는 것이 아니다.
행추위가 번번이 4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재공모와 재논의를 반복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주주와 정부가 서로 거부권을 쥔 기형적인 구조가 합의보다 교착을 만들어낸다. 2017년과 2020년, 2022년에도 비슷한 파행을 겪었다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로 봐야 한다.
수협은행은 이제 자산운용을 넘어 증권·캐피탈·디지털자산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관료의 후광이 아니라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킬 경영 능력과 책임성이다. 잘못된 인선의 책임은 주주가 지고, 경영 결과도 주주가 평가하는 것이 시장 원칙이다.
정부는 감독자로 돌아가야 한다. 수협중앙회도 최대주주로서 인선 결과에 책임지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공적자금 시대의 유물인 행추위 구조부터 손질할 때다. 정부가 지분 한 주 없이 은행장을 사실상 결정하고, 감독자가 선수로 자리를 옮기려는 풍경은 금융 선진국을 말하는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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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순열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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