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비용 절감 넘어 문제 발견과 해결 능력을 확장해야 혁신
"인공지능(AI) 붐인가, 버블인가?"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AI 인프라 투자를 감행하는데 비해 실제 수익성과 생산성 개선은 미진하다는 'AI 회의론(거품론)'이 대두되고 있다. 그 영향에다 미국 중간선거 민주당 압승 여파로 미국 뉴욕증시와 한국 코스피 시장도 줄줄이 급락세다.
과연 AI 생산성 향상은 장밋빛 신기루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도입 과도기만 지나면 다시 경기상승에 불을 붙일 것인가. 빅테크 창업자와 금융계 거물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갈린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얀 르쿤 AI학자, 짐 코벨로 골드만삭스 러서치 담당은 거품론자에 속하고 샘 올트먼 오픈AI 창업자, 제프리 힌튼 노벨상 수상자, 래리 핑크 블랙록 CEO는 낙관론자로 분류된다. 그만큼 AI 혁명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전대미문의 문명 패러다임 체인저이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 등 주요 기술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구축 및 AI 반도체 수급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클라우드 및 검색 광고 등 기존 사업에 AI를 얹는 부가적 서비스 외에, AI 전용 또는 제품 그 자체로 창출하는 독립적 AI 서비스의 매출 전환 속도가 시장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 이에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주요 투자은행(IB)과 S&P 등 시장분석 기관들은 "AI 도입에 따른 업무 생산성 증대 효과가 초기 기대만큼 폭발적이지 않으며, 투자금 회수(ROI) 기간이 과도하게 길어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내놓으며 투자심리가 경색되었다.
여기에 미국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하면서 AI데이터센터 건설에 제동이 걸린 것이란 공포가 가세했다. 이에 따라 나스닥 지수가 일일 최대 5.5% 넘게 급락하고,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 또한 폭락세를 보였다. 주로 기술주 중심의 매도세가 폭락장을 이끌었다. 인텔은 실적 부진 및 AI 인프라 투자 대비 불확실한 현금흐름 전망으로 주가가 하루 만에 28%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반도체 가치사슬도 흔들리고 있다. 엔비디아, AMD 등 AI 핵심 반도체주 역시 4~10% 이상 하락하며 10월 한 달 동안 미국 기술주 시가총액 약 2조 달러(약 2700조 원)가 증발했다.
한국 증시(코스피·코스닥)도 이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 증시의 AI 반도체 충격이 한국 시장으로 고스란히 전이되며 코스피가 급격한 변동성을 나타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하루에 수조 원 규모의 매도 물량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닉스'도 직격탄을 맞았다. AI 고대역폭메모리(HBM) 핵심 공급처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심으로 대형주들이 폭락하며 지수 전체를 끌어내렸다. 전문가 집단 분석에 따르면 향후 증시는 AI 인프라 확충 단계를 넘어, 기업들이 실제로 AI를 통해 수익과 실질 생산성을 증명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밸류에이션 재평가(Re-rating) 과정을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과학기술 동네에서 이 같은 풍경은 낯설지 않다. 1970~1980년대 컴퓨터가 기업에 도입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1987년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가 "컴퓨터 시대는 어디에나 보이지만 생산성 통계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유명한 '솔로의 역설'을 제기했다. 당시 기업들이 대규모로 컴퓨터를 도입했지만, 경제 전체의 생산성 지표에는 뚜렷한 향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 기술 혁신이 눈에 띄게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은 통계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21세기 초 기업 현장에서는 AI 도구가 회의록을 자동으로 정리하고, 코드 작성과 번역도 돕고, 고객 응대까지 처리한다. 개인들도 누구나 챗GPT, 제미나이 같은 AI 챗봇을 손쉽게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단위의 생산성 지표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아직 AI 혁신의 효과를 뚜렷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AI 생산성의 역설'이다.
"왜 생산성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첫째, 측정 방식의 한계다. 즉, 기존 생산성 지표가 AI의 질적 효과를 포착하지 못해서다. 둘째, 전환 비용이다. AI 도입 과정에서 학습·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셋째, 사회적 저항이다. 제도·문화의 변화가 기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최초 질문에 대한 내 전망부터 말씀드리면 단기적으로 거품을 정리하겠지만 큰 상승 곡선은 여전히 올라간다고 본다. 그래서 질문 자체가 우문(愚問)이다. 붐인가, 버블인가를 물을 게 아니라 어떻게 거품을 극복하고 상승을 이어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새 질문에 대한 답도 말씀드린다. 침체냐 번영이냐는 AI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에 달렸다. AI를 시간과 비용 절감용 도구로만 보는 기능적 시각은 진정한 생산성 향상에 이르지 못한다. AI를 새로운 문제점 발견과 해결능력 확장이란 창조적 태도로 받아들여야 혁신(innovation)이 탄생한다.
선구적으로 혁신한 바둑 세계의 AI 전환을 돌아보자. 이세돌 9단이 패배하기 전에는 선배 기보를 연구하고 1대1 도제식 지도를 받으며 혼자 생각하는 연구가 프로기사의 주 업무였다. 그러나 바둑 AI는 인간이 두지 않던 자리에서 승리수를 뽑아내는 새 포석을 개발했다. 인간 포석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승리의 가능성 공간도 확장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전에는 두지 않던 3.3선 침입, 5선의 어깨 짚기 같은 새 전법이 보편화됐다. 초기에는 AI 포석을 달달 외우기만 하던 프로들이 이제 실시간 승률을 계산해주는 그래프를 보며 자신의 판단과 기계의 계산을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훈련하고 있다. '더불어 업무(With AI)'가 보편화된 것이다. 신진서 9단은 "바둑 세계가 더 넓어졌다"고 말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지금 기업은 전면적인 업무의 AI 전환(AX)을 시도 중이다. 마치 우리나라 개화기에 양반들이 한복을 벗고 새로 입은 양복에 맞춰 상투도 자르고 몸가짐도 바꾸는 식이다. 하지만 양복을 입는다고 하루아침에 개화가 이뤄지진 않는다. 서구식 제도와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서 합리적·이성적 행동이 가능해져야 한다. 업계는 주로 AI 생산성을 업무 투입 시간과 비용 같은 양적 지표로 측정한다. 10시간 걸리던 일을 1시간에 마쳤다, 1억 원 들던 비용이 5000만 원 절감됐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 측정 기준은 산업화 시대의 효율성에 불과하다. AI는 지식과 지능의 혁신 파트너이다. 업무를 정의하는 방식과 진행 프로세스, 결과에 대한 평가가 모두 달라져야 한다.
초기의 AI라 할 수 있는 자동차 내비게이터를 예로 들어보자. 개별 운전자는 지능형 교통안내 서비스로 인해 편해졌다. 굳이 지형을 외우지 않아도 되고, 해외에서 처음 가는 길도 척척 찾아가게 되었다. 우버처럼 차량공유 사업도 생겨났다. 하지만 교통 시스템에 전면 도입된 내비게이터 플랫폼이 도시의 고질적인 교통정체를 줄이진 못했다. 너도 나도 가장 빠른 길로 몰려들고, 신규 운전자 수도 늘어나면서 통행 흐름의 최적화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이 지금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업의 AX는 개별 근로자와 회사 조직 전체에서 무엇을 해결해야할 문제로 설정하느냐, 여기에 어떻게 AI를 가장 효과적으로 접목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어떤 회사로 변신하려는가를 고민하는데서 출발해야한다. 자동차 공장에서 조립 공정 단계를 100개에서 70개로 줄이고 싶은지, 가전 마케팅팀에서 개인화된 무저항(frictionless) 고객밀착 SNS 접목 서비스를 신설해 디지털 유입 수요를 늘리고 싶은지 등의 비즈니스 목표에 따라 달라진다. 공정 개수를 줄이려면 AI와 함께 의논하며, AI 로봇 친화적으로 작업장 환경을 바꾸어나가야 한다. 가전 소비자의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려면 소셜미디어에서 절친처럼 그들과 소통하고 자사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추천해야 한다.
기업은 아예 생산성이란 용어의 정의 자체를 바꿀 각오로 모든 과거 업무 습관을 뿌리부터 되짚고 재설계해야 그 다음 단계로 이행할 수 있다. 여기서 혁신론의 선구자 조지프 슘페터가 1942년 설파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과정을 되짚어보자. 새 혁신은 기존의 낡은 생산 방식, 제품, 시장 구조를 파괴하고 대체한다. 그는 다섯 가지 유형을 예시했다. 한 번도 못 봤던 새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신제품 개발, 전에 없던 새로운 제조·판매 공정을 도입하는 새로운 생산 방식, 접근 못했던 지역이나 국가의 신규시장 개척, 원자재나 부품의 새로운 공급원 발굴, 기존 독점을 파괴하거나 새 독점 형태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산업조직의 형성이 그것이다. 한두 가지는 이미 나타났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혁신은 단순한 과학 기술의 발명(invention)이 아니라, 실제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는 과정 전체를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AI 혁명은 아직 미완의 혁명이다. AI 생산성의 역설을 깨는 자가 진정한 혁명을 완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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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을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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