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섣부른 희망이나 절망은 진상을 가린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4-12-13 16:35:08
등단 30주년 소설 선집과 새 소설집 나란히 펴낸 강동수
청·장년기 통과해온 시대와 정서 족적 담은 '수도원 부근'
다양한 주제 돋보이는 새 소설집 '공 마에의 한국 비망록'
"한국사회 격변 지켜보며 함께 고민할 화두 소설로 쓸 것"

소설가 강동수가 등단 30주년을 맞아 새 소설집 '공 마에의 한국 비망록'과 단편 선집 '수도원 부근'을 나란히 펴냈다. 1994년 문단에 나와 부산에서 기자로 복무하다 은퇴 후 대학 강단에도 서고, 문화행정가의 일도 해내면서 틈틈이 생산한 작품들이다. 세상 복판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사회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희망도 절망도 섣부르게 드러내지 않고, 투명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들이 포진돼 있다. 

 

▲ 등단 30년을 맞아 선별한 단편들과 새 소설집을 나란히 펴낸 소설가 강동수. [작가 제공]


'몽유시인을 위한 변명'(1997), '금발의 제니'(2011), '언더 더 씨'(2018)에 이어 펴낸 4번째 소설집 '공 마에의 한국 비망록'(강)에는 표제작을 포함한 7편이 수록됐다. 등단 무렵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보다 숙성되고 진화된 상태로 이어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표제작의 마에스트로 공형준은 부당해고 당한 고국의 음악인들을 위해 서명해달라는 프랑스 한국인들의 요구가 불쾌하다. 감히 '예술 천민'들을 자신 앞에 들이민다는 사실 자체에 불쾌감을 느꼈다. 그는 "나처럼 국제적 명성을 가진 희귀한 음악 천재와 악보도 제대로 읽지 못해 쩔쩔매는 그 숱한 예술 천민을 동급에 놓는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모욕"이라면서 "내가 왜 그 무능한 자들의 밥벌이를 위해 내 이름을 팔아야 하는가"라고 중얼거린다.

30년 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몽유시인을 위한 변명'에도 예술의 본질을 천착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행세하는 문인들 노는 자리에 어릿광대처럼 나타나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인물 '피구득'이 급기야 원로급 시인의 수상 뒤풀이 자리에서 폭행을 당한다. 피구득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죽은 듯이 매를 고스란히 맞고 있었는데, 시인은 그런 그의 모습에 더욱 분노가 치미는지 빈 맥주병까지 거머쥐고 "이 기생충 같은 자식은 불구덩이에 처넣어야 돼"라고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예술과 예술가를 대하는 문제의식이 30년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한 작가의 세계관은 세월이 흐르면 조금 변하기도 하겠지만 저층에 있는 고갱이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예술가의 지나친 엘리트 의식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동시대 우리의 삶과 동행을 해야 한달까, 이런 측면이 예술 활동의 궁극적 의미가 아닐까. 예술을 한다고 하는 이들이 보이는 선민의식은 거꾸로 천민의식의 다른 측면이라는 생각도 한다. 등단작의 '몽유시인'을 조소하는 사람들의 천민의식은 거꾸로 이번 소설집의 세계적인 예술가에게서도 엿보인다. 나르시시즘의 자기만족이라고 할까, 엘리티즘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진정한 삶의 의미나 예술가의 자세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예술 한다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은 주변에서 가끔 목도하기도 하고, 스스로도 경계하는 편이다. 허위의식이나 숨어 있는 천민의식, 이런 것들을 폭로하고 같이 한번 성찰해보자는 취지로 썼다."

-등단 30년을 맞는 소감은?
"나름대로는 우리 사는 세상을 관찰하고 작품으로 만든다고 했는데, 작가 노릇을 30년 동안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기자의 삶이나 문화행정가의 삶도 보람 있는 시간이었지만, 작가로서 작품활동에 전념하는 데는 지장이 있지 않았나 싶다. 좀 더 치열하게 작품활동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제 남은 시간들은 좀 더 의미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 

 


-소설을 통해 담아내고 싶은 고갱이는 무엇인가.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그 사람들의 고통이나 희망 좌절 같은 것들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드러내보고 싶었다. 신문사 기자 노릇도 하고 논설실에 오래 있어서 저널리즘 글쓰기를 좋아한다. 소설 쓰기와 저널리즘 글쓰기가 두 기둥이다. 하나는 엄정하게 세상을 관찰하는 형식이고, 또 하나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세계라서 조금 다른 듯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시대에 같이 호흡하는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는 역할이 아닌가 싶다. 작가라는 게 결국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신 옮겨주는 팔자 아닐까."

강동수의 문장은 단정하고 명료한 편이다. 신문 기자를 오래 해서 단문에 가깝지만 행간에 흐르는 애수와 연민은 그가 어김없는 소설가임을 웅변한다. 기자 출신 답게 주제 측면에서도 개인의 내면을 파고드는 서사보다는 사회적 이슈가 많은 편이다. 이번 소설집은 특히 주제가 다양하다.

'편의점은 살아 있다'는 도심의 낮과 밤 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편의점 곳곳에 설치된 CCTV의 시각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형식을 통해 도시의 일상과 세태를 그려낸다. '심연과 괴물'에서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을 화두로, 젊은 시절 운동권 친구가 독재에 저항하다 실수로 애먼 사람을 죽게 만든 일화와 부모를 방화로 죽게 만든 소년의 이야기를 병치한다. 그는 "악과 싸우다가 스스로 악이 되는 잘못된 행태가 항상 우리 삶에서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우리가 항상 경계를 하고 또 성찰해야 될 문제"라고 말한다.

각기 상처를 안고 길을 걷는 남녀를 등장시킨 '올레에서 만난 사람'은 다시 예술가의 삶을 반추하며 치유를 향해 나아가는 소설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남자는 '글을 쓴다는 짓이야말로 언제 어떻게 삐끗해서 베일지 모르는 칼날 위의 숭어뜀'이라고 곱씹는다. 최근작인 '집'에서는 교사인 부친을 따라 이사를 다니면서 셋방살이를 해야 했던 일화들과 드디어 집을 가졌을 때 어머니가 말없이 어깨를 들썩이던 풍경을 자전적으로 풀어낸다.

'도롱뇽의 꿈'에서 가출팸 소년이 높은 빌딩을 맨 몸으로 오르며 무모해 보이는 꿈을 향해 비상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노다지'에서는 매장된 금을 찾아다니는 탈북자 사연도 담아낸다. 강동수의 소설들은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낙관도 절망도 배제한 채 묵묵히 직시하며 나아가는 이들을 그려낸다. 이러한 태도를 두고 평론가 구모룡은 '비관주의라는 희망'이라고 갈파했다.


▲ 강동수는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낸 최근 사태처럼 격변하는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소설의 화두를 찾아낼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 제공]

 

-섣불리 타협하지 않고 '신뢰도 희망도 사랑도 없는 세계'를 펼치는 배경은?
"세상을 바라보고 껴안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낙관적인 대목을 찾아서 위안을 얻고 그걸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방식도 있을 것이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 문제들에 대해 쉽게 답을 내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방식도 있다. 쉽게 화해의 제스처를 내보이는 건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소설에서는 항상 화해나 희망을 섣불리 이야기하지 않고 주저하는 편이다."

-이제 소설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다.
"세상을 좀 더 여유 있게, '각성된 단순함'으로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모해 나가는지 관찰자의 시선에서 더 들여다볼 작정이다. 작금의 비상계엄 사태가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아직은 한국사회가 완성되지 않고 다이내믹하게 격변해나가는 양상을 객관적으로 폭넓게 지켜보면서 그 속에서 정말 우리 시대가 생각해야 될 화두를 뽑아내 소설 작업을 하고 싶다."

지난 여름 아내와 북구를 포함한 유럽 8개국을 소설 취재 겸 다녀온 강동수는 입양아 문제를 다룬 새로운 장편을 도모하는 중이다. 그는 "지난 삼십 년 동안 뭘 하고 살았는지 되돌아보면, 산삼을 캐겠다 큰소리치며 산에 올랐다가 도라지 몇 뿌리 빈 바랑에 담아 온 무능한 심마니의 심사가 된다"고 썼다. 이어지는 말.

'다시 읽어보니 얼굴이 붉어질 만큼 미숙하고 부족하다. 담장 너머 뻗어난 길가의 꽃을 몰래 꺾다 들킨 아이 같은 심정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 또한 내가 걸어왔던 발자국인 것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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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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