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 한국 혼란 장기적으로 낙관, 되치기 극복하며 나아가
대학에 갇힌 비평가들, 자신의 이론으로 감동 근원 찾아야
"평화·민주주의, 분단 상태에선 불완전…민족문학 유효"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온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84) 영남대 명예교수가 비평 활동 60년을 기념하는 평론집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창비)을 펴냈다. 9년 만에 상재한 이 평론집에는 1960~70년대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문인들의 궤적을 같이 따라오며 곁에서 지켜본 그들의 삶과 문학세계와 함께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국립한국문학관 초대 관장 등을 역임하며 품어온 사유들을 명징하게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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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 비평 활동을 기념하는 노작을 펴낸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 [KPI] |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최인훈론'으로 당선 된 이래 꾸준한 비평활동을 이어온 염무웅은 1967년부터 '창작과 비평' 편집에 참여해 예리한 안목으로 걸출한 문인들 원고를 발굴했으며 독재 시기를 관통하며 시대의 파랑 위에서 한국문학을 지켜보았다. 대표적인 진보 지성으로 꼽히는 그는 작금 한국문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황망한 계엄 사태로 연말연초 혼돈에 휩싸인 이 나라의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청년시절 4.19를 겪은 이래 유신독재와 광주항쟁을 거쳐 군사독재 터널을 지나오면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 역사를 관통해왔는데, 작금의 계엄 사태로 인한 혼란한 양상을 어떻게 보는가.
"4·19는 시골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겪어서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만한 수준이 못됐다. 그래도 그 후 차츰 4·19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굉장히 중대하다는 걸 느꼈는데, 벌써 65년째 접어들었다. 프랑스의 19세기와 비교하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서 왕정을 무너뜨리고 왕을 심지어 처형까지 해 가면서 공화정을 이룩했지만, 다시 왕정복고가 되고 다시 또 공화정, 그 후에는 파리코뮌까지 엎치락뒤치락 하는 과정을 100여 년에 걸쳐 거치면서 19세기 말 드레퓌스 사건을 끝으로 드디어 이제 더 이상 왕정복고의 가능성은 없어지고 공화정의 전통이 확립됐다. 우리의 경우도 4·19를 시발로 해서 5·16으로 되치기를 당하고 그 다음에 10월유신도 일어나고, 민주화가 될 뻔하다가 '서울의 봄'에서 또 되치기 되는 이런 과정을 쭉 보면, 민주주의를 향하는 힘과 그것을 저지하는 어떤 반동의 힘 사이의 싸움이 60년 이상 이어진 셈이다. 작금의 사태가 지금 마지막 고비일지 아직 한두 번 더 싸워야 될지 그건 잘 모르겠다. 장기적으로는 낙관적인데, 당장 단기적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비관적 요소가 많다. 제 생전에 좋아지리라는 기대는 더 이상 이제 안 하는데, 그래도 앞으로 30~50년 후에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비평 활동 60년을 맞은 소회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신춘문예에 당선돼 취직이 어렵던 시절 신구문화사 편집부에서 일하다가 1967년부터 '창작과비평' 편집에 참여해 당대 많은 문인들을 만났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일도 했고 1970년대 후반에는 대학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가기도 하면서 고생을 하긴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적응을 어느 정도 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여름 서너달에 걸쳐서 이번 평론집에 실린 글들을 집중적으로 다시 죽 읽으면서 눈을 좀 혹사했더니, 아주 잔 글씨는 읽을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이 책이 내 생애 마지막 평론집이라는, 이제 글 쓰고 읽는 일은 마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젊은 시절에 비해 오늘날 평론가들은 흔히 대학에 자리 잡고 학문으로서의 문학 연구에 종사하는 수가 많아졌다. 이 현상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문학 공부가 대학제도 안에 진입한 결과 그만큼 비평의 수준이 향상되고 독자들도 평론에서 많은 배움을 얻는가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나의 지나친 억측이기를 바라지만, 오늘날 한국 비평은 다수가 대학이 요구하는 학술논문의 틀에 갇혀 문학 독자로부터 아예 외면받거나 아니면 반대로 단순한 해설 차원으로 전락하여 작가들 뒤를 쫓는 데 급급하지 않은가 의심스럽다. …이 책에 수록된 평론에서 내가 감히 시도한 것은 그런 소외 상태로부터의 '비평의 구출'이었다. _ '책을 내면서'

-요즘 평론가들은 대학이 요구하는 틀에 갇혀서 독자로부터 외면받거나 단순한 해설 차원으로 전락했다고 썼다. 이러한 비평을 '구출'하는 핵심 지향점은?
"대학에 재직하는 평론가들은 대부분 대학이 요구하는 논문을 쓰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서구 이론을 인용해서 한국 작품에 적용하니까 한국 독자들로서는 이해가 쉽지가 않고 그렇다고 서유럽적 기준에서 세계적 보편성이라는 기준에서 보더라도 의미 있는 글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어디에도 쓸모 없는 꼴이다. 시집마다 일종의 사용 설명서 같은 해설이 붙는다. 그것도 미학적인 성취를 제대로 잘 소화하고 있느냐 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작품을 읽을 때 감동을 받는다면 그 감동의 근원을 찾아야 되는 것 아닌가. 감동의 근원을 이론과 연결시키는, 한국 문학 나름의 이론이 전개되어 왔다. 일제 시대에는 가령 최재서, 백철, 임화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아주 엉성하지만 당시의 문학을 자기 나름으로 이론화 하는 세계가 있는데, 해방 후 50년대 60년대의 비평가들이 일제 시대에 이루어진 비평 이론을 계승해서 발전시킨 게 아니라, 그건 무시해 버리고 실존주의 같은 걸 공부해서 그걸 거기다가 그냥 덧붙였다. 우리의 이론, 우리의 현실, 우리의 문학 작품을 토대로 한 이론을 만들어내지 않고 서구에서 만들어진 기성 이론을 갖다가 한국 문학에 적용한 것 같다. 문학 이론도 한국 현실에 바탕을 둔 한국 작품을 기반으로 해서 그것으로부터 이론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론과 실제 작품 간의 유기적인 연결이 잘 안 돼 있다는 생각이다. 제대로 비평이 되자면 그 작품을 읽어서 그 작품 자체로부터 이론이 만들어져 나와야 한다. 저 나름으로는 그것이 민족문학론이었다."
-1990년대 이후 민족문학론은 위기를 맞았고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배타주의와 독선을 걷어내면 '민족'은 여전히 지금 고리타분한 개념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배경은?
"외국 이주민들을 우리가 민족 개념으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런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니까, 예전의 민족주의 개념으로는 민족을 정의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사람들이든 또는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든 순혈주의적 민족 개념을 배타적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우리가 미국 중국 일본 같은 나라들과 호혜평등하게 친선 관계를 유지해야 하지만,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을 찾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평화와 민주주의가 지금 같은 분단상태에서는 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민족문학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평론집은 1960~70년대 등단해 한 시대를 함께 흘러온 문인들의 작품과 삶에 대한 글의 비중이 높다. 이들이 지닌 문학정신의 공통 빛깔을 찾는다면?
"임화 김수영 김지하 김남주 이런 분들에게 공통된 어떤 게 있다면 모두 '전위적'이라는 생각이다. 전위란 건 기성 문단이나 사회 체제에 단순히 순응하지 않고 비판하고 저항하는 정신인데, 이 아방가르드 정신이 문학예술로 나타날 때는 미학적인 실험문학으로 나타나고, 정치적인 분야에서는 저항과 비판적인 문학으로 나타난다. 임화나 김수영, 김지하나 김남주는 다 각각 색깔이 다르긴 하지만 크게 공통된다면 그런 점 아니겠는가. 한국 시 전체의 좌표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다른 흐름들도 있지만, 제가 그 많은 것을 다 다룰 수는 없고 특별히 주목한 것은 저항시의 맥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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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무웅은 "모든 진정한 에술에는 희생이 따르는데 희생은 흉내로 되는 게 아니다"고 썼다. [KPI] |
-문제는 '시 쓰는 사람의 체질과 능력에 맞는 최대치가 정직하게 작품에 투입됐는가 안 됐는가가 난해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요체'라고 썼다.
"사실 정직을 강조한 건 김수영 시인이다. 본인 자신도 난해시를 쓰면서 가짜 난해시를 공격했다. 고통스러운 것을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쉽게 안되는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진짜 난해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인 자신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말하자면 정직함이 없이, 자기의 역량과도 관계 없이 그냥 시적인 방법론만 몇 가지 익혀서 말장난 하는 시를 비판한 것이다."
책 머리글을 쓰던 중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는 그는 "한강의 작품은 한세기 넘는 우리 근대문학의 축적 위에서 이룩된 비범한 성취임이 분명하다"면서 "한편으로 선배 작가의 역사의식을 계승하면서도 다른 한편 고유의 여성적 시선으로 인간 삶의 심연을 파고들어 선배들을 뛰어넘는 문학 자체의 내적 혁신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이번 평론집 3부에는 그가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제'라고 언명한 민족문학(론)과 소설 '임꺽정'의 언어에 대한 논란, 남북작가대회 성사에 즈음한 글, 한국문학과 세계의 만남, 한국작가회의 40년, 국립한국문학관에 대한 글들을 포진했다. 명징하고 논리적인 글들이 큰 설득력을 발휘하는 원로 평론가의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은 곡진하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원로의 후각.
'이상은 겉만 흉내 내서 사람들을 속인 가짜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의 글에서는 화약 냄새가 풍겨요. 그런데 이상을 모방한 사람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 시가 많아요. 모든 진정한 예술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희생은 흉내로 되는 게 아니에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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