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러시아 제재에 국제유가 폭등…유류세 인하폭 축소 섣불렀나

안재성 기자 / 2025-10-24 17:20:15
美, 러시아 에너지기업 로스네프트·루코일 제재
인도 등 수입선 변화 전망…공급 부족에 유가 추가 상승 전망
국제유가 오름세인데 유류세 인하폭 축소…"소비자가 뛸 듯"

러시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 확대로 국제유가가 폭등했다. 러시아는 하루 평균 7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제3위 산유국이라 제재가 계속될 경우 유가가 더 뛸 전망이다.

 

2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일 대비 5.6% 폭등한 배럴당 61.79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도 5.4%나 뛴 배럴당 65.99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재무부가 갑자기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로스네프트(Rosneft)와 루코일(Lukoil)을 제재 명단에 올린 것이 유가를 끌어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해결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조만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갖기로 했던 정상회담을 전날 돌연 취소하더니 제재 카드를 꺼내 들었다.

 

▲ 미국 텍사스주 미들랜드의 석유 굴착기와 펌프 잭. [AP 뉴시스]

 

전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폭격을 가해 어린이를 포함한 7명이 사망했단 소식이 전해진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강공 선회 배경으로 꼽힌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푸틴 대통령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협상 테이블에 임하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상황에 실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간 평화 협상을 위해 러시아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 재무부는 로스네프트와 루코일 두 기업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모든 법인들의 자산도 동결하기로 했다. 아울러 두 기업과 거래하는 전세계 모든 에너지기업, 정유사, 무역회사, 해운·보험사 등에게 다음달 21일까지 거래를 취소하라고 주문했다. 원유시장에 큰 파장이 불가피하다.

 

제재 후폭풍은 금융 시스템까지 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외신들은 두 기업과 거래하는 제3국 은행이나 무역상, 해운사에도 세컨더리 제재가 적용돼 달러화 결제망 등 서방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차단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도 같은 날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금지를 포함한 제19차 대 러시아 제재 패키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로스네프트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고르 세친이 이끄는 국영 기업으로 민간 기업인 루코일과 함께 러시아 최대 석유 생산 기업이다. 두 기업의 원유 수출량은 러시아 전체 수출량의 절반에 가깝다. 석유와 가스 사업 세금은 러시아 연방 예산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기에 두 기업 제재가 러시아 재정에 미칠 파장은 상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러시아가 세계 3위 산유국이라 국제유가에 끼치는 영향도 막대하다. 데이비스 옥슬리 캐피털 이코노믹스 최고 기후·원자재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제재는 세계 석유 시장을 공급 부족으로 전환시키기에 충분한 수준의 충격"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 3년 간 러시아산 원유를 싸게 수입해온 중국과 인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의 주요 국영 에너지 기업들은 이미 두 러시아 기업으로부터 석유 구매를 유보했다고 한다. 올레 한센 삭소뱅크 원자재 전략 책임자는 "중국, 인도 등 주요 러시아산 석유 구매자들이 서방의 금융 제재에 직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구매처를 물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독립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 강관우 대표는 "공급 측면에서 문제가 생겼다"며 "단기 이슈로 그칠 수도 있으나 제재가 지속되면 유가가 더 뛸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넘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폭 축소가 너무 섣불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2일 정부는 당초 이달 말 종료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를 2개월 연장하면서 인하폭은 다소 줄였다.

 

휘발유의 유류세 인하폭은 기존 10%에서 7%로, 경유 및 액화석유가스(LPG)부탄은 15%에서 10%로 각각 축소됐다. 이에 따라 휘발유의 리터당 유류세는 738원에서 763원으로, 경유는 494원에서 523원으로 각각 인상됐다. 그만큼 소비자 가격도 올랐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폭 축소가 너무 빨랐다"며 "국제유가는 폭등세인데 세금도 더 늘었으니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유류 가격은 꽤 오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30대 직장인 A 씨는 "주유소들이 국제유가가 내릴 때는 느리게 움직이지만 올라갈 때는 바로 반영한다"며 "벌써 서울 시내에 휘발유는 물론이고 경유 가격까지 리터당 2000원을 넘긴 주유소가 여럿"이라고 지적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12월엔 유류세 인하를 재차 연장하는 동시에 인하폭을 다시 확대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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