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판매 결코 없지만 총선 코앞이라 걱정”
홍콩H지수(HSCEI)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들이 대규모 손실 위기에 처하면서 은행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손해를 입은 고객의 질책, 사회적 책임 등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부담은 정부가 배상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라임 사태’처럼 금융당국이 “100% 배상하라”고 압박하면 수 조 원대 손실을 은행이 뒤집어쓸 수 있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이 판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중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판매 금액은 총 13조6200억 원에 달한다.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만 9조600억 원이다.
ELS는 주가 움직임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대체로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만 않으면 이익이 난다. 기초자산의 주가 흐름이 양호할 경우 만기(보통 3년)를 채우기 전에 중도상환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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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H지수가 무척 부진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들이 대거 원금 손실 위험에 처했다. [게티이미지뱅크] |
문제는 홍콩H지수가 최근 몇 년 간 무척 부진했다는 점이다. 홍콩H지수 전날 종가는 6103.34로 해당 ELS가 판매된 2021년 평균(1만44) 대비 약 39% 떨어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 등으로 홍콩H지수가 부진하면서 중도상환된 경우가 거의 없다”며 “뿐만 아니라 내년 만기에 자칫 막대한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상품별로는 판매된 시점의 홍콩H지수보다 최근 지수가 50% 넘게 떨어져 이미 'Knock-in(녹인)' 구간에 접어든 사례도 꽤 많다.
ELS가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건 크게 만기 시점만 보는 경우와 녹인 발생 여부와 만기 시점을 같이 보는 경우로 나뉜다.
예를 들어 A 상품은 만기 시점에 기초자산인 주가지수가 35% 이상 하락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B 상품은 주가지수가 3년 내 50% 이상 급락해 녹인 구간에 진입하는 상황을 피하면 원금 손실이 없다. 다만 한 번이라도 녹인 구간에 진입한 적이 있고, 만기 시점에 주가지수가 25% 이상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식이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녹인 구간 진입 ELS 판매 금액은 4조9288억 원에 달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녹인 구간에 진입했다고 반드시 손실이 나는 건 아니지만, 내년 상반기에도 지수가 회복하지 못할 경우 2~3조 원 가량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은행권은 피해 관련 문의 대응 매뉴얼을 보강하고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대응책 마련에 한창이다.
하지만 더 우려하는 건 정부와 금융당국이 은행 측에 불완전판매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상품 판매 시 자필 서명, 녹취, 사전 상품 설명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며 “불완전 판매는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라고 지적하면 은행이 억울해도 손을 쓸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은행들은 라임 사태의 데자뷰가 일어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라임 사태 당시 정부와 금융당국은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란 논리를 들고 나와 은행 등 금융사들에게 100% 배상을 강요했다. 이 때문에 금융사들은 총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유례없는 100% 배상 요구에 대해 "당시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정부가 지지율 관리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란 해석이 있다. 마침 내년에도 총선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은행에게 100% 배상을 강요할 경우 거부할 수도 없는 은행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그는 “특히 국민은행은 ELS 판매 금액이 너무 많아 자칫 1년 간 거둔 이익을 모두 날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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