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가격 인상 자제령'에 속앓이하는 식품·외식업계

유태영 기자 / 2024-05-07 17:25:11
정부, 1년 동안 식품·외식업체에 '가격 인상 자제령'만
롯데웰푸드, 마지못해 가격 인상 시기 한 달 미뤄
고유가·고환율·고인건비 등 가격 인상 요인 '수두룩'

"서민들이 느끼는 외식물가 부담이 여전히 큰 상황이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지만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 및 관련 협회에서 당분간 가격인상을 자제하는 등 밥상물가 안정을 위해 최대한 협조해달라."(양주필 식품산업정책관, 2023년 4월 21일 물가안정 간담회)

"최근 일부 가공식품과 외식업계의 가격 인상 움직임은 민생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업계도 제조 혁신, 기술 개발 등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 인상 요인을 최소화해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협조해 달라."(한훈 농식품부 차관, 2024년 5월 3일 식품·외식업계 간담회)

지난 1년 간 정부는 줄기차게 주요 식품·외식업계 관계자들을 한데 모아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했다. 한 두개 업체가 가격을 올릴 기미라도 보이면 '물가 안정'을 내세우며 기업을 압박했다.

정부의 압박에 최근 초콜릿 업계 1위인 롯데웰푸드는 당초 지난 1일부터 초콜릿 제품 가격을 평균 12% 인상키로 했다가 한 달 뒤인 6월로 미뤘다. 정부 입장에선 한 달이라는 소중한 성과를 얻었고 업체 측에선 물가 안정기조에 동참한다는 '큰 그림'이 그려졌다.

 

하지만 조삼모사일 뿐이다. 소비자들은 비웃는다. "결국 가격 올렸네."


식품·외식업계는 가격 인상요인이 너무 많다고 주장한다. 유가는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모두 뛰었다. 인건비도 코로나 이후 너무 올라 가격인상 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00원 안팎을 오가며 기업에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4·10 총선 이전에도, 이후에도 한결같은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가격 인상 자제'다. 모든 것이다 올라도 완제품 가격만은 올려선 안된다는 논리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에서 유독 식품, 외식업계 관계자를 자주 불러모아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달에 밀가루 가격을 인하한다고 해서 기대했지만 업체에게 판매하는 가격은 그대로여서 원가 부담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식품·외식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얘기한다. 한 전문가는 "외식 물가가 지나치게 비싸지면 국민들이 외식을 줄일 것이고, 식품 가격이 비싸지면 대체 식품을 사게 돼 가격이 조정된다"며 "그런데 무리하게 찍어누르기만 하니 풍선효과만 나타날 뿐"이라고 비판한다.


풍선효과의 대표적인 예가 '슈링크플레이션'이다.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용량을 줄이는 방법이다. 정부는 이마저도 '슈링크플레이션 자제령'을 통해 해결할 모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3일 슈링크플레이션 행위를 근절하는 내용을 담은 '사업자의 부당 소비자거래행위 지정 고시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제품을 제조하는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용량·규격·중량·개수 등을 축소하는 행위를 '부당한 소비자거래행위'로 명시했다. 앞으로 과자, 아이스크림, 우유, 라면, 김치, 주류 등 가공식품과 함께 비누, 샴푸, 치약, 로션, 화장지, 주방·세탁세제 등 생활용품도 반드시 변경 사실을 알려야 한다. 몰래 용량을 줄여 판매하다가 2회 적발되면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실효성은 있을까. 식품분야 전문가는 "기업 입장에선 미리 알리기만 하면 되니 큰 부담이 되진 않는다"며 "오히려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면죄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에 대책을 세우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찍어누르는 게 답이 아니란 것만은 분명하다.

 

▲유태영 경제산업부 기자

 

KPI뉴스 / 유태영 기자 t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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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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