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압력에 금리 인하 어려울 듯
트럼프 '저유가·저금리 제조업 부흥' 난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충수'를 둔 듯하다. 뚜렷한 명분도, 명확한 전략적 목표도 없이 저지른 '미국-이란' 전쟁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그의 경제 구상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전쟁으로 촉발된 유가 급등은 물가 상승과 금리 인하 지연으로 이어지고, 이는 제조업 비용 부담을 키워 트럼프가 구상했던 '저금리·저유가 기반의 제조업 부흥 전략'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일 대비 4.6% 오른 배럴당 87.25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4.8% 뛴 배럴당 91.98달러를 기록했다. 전쟁 전 배럴당 60달러대이던 국제유가가 지금은 80~90달러대다. 지난 9일(현지시간)엔 장중 120달러 근처까지 치솟기도 했다.
![]() |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뉴시스] |
유가는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미국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4%로 시장 전망에 부합했으나 3월부터 유가 급등 영향으로 물가상승률 확대가 우려된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스티븐 브라운 북미 지역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원유 가격이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3월 물가상승률이 2.9%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경기에도 '붉은 신호등'이 켜졌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월 비농업 일자리 수가 전월 대비 9만2000명 감소했다. 시장 전망치(5만 명 증가)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실업률 역시 1월 4.3%에서 2월 4.4%로 상승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물가가 오르면서 경기는 침체되는 현상)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 우려가 커지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금리를 내리기 힘들어졌다. 베스 해먹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미국 통화정책 포럼'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3.50~3.75%)으로 한동안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연준은 당분간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며 "시장에서도 금리인하 기대감이 약화됐다"고 진단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올해 내내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4분기에 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내세웠던 제조업 리쇼어링이 오히려 어려워지는 환경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해외로 나간 제조업 공장들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 관세를 위법으로 판단한 후에도 새로운 관세를 도입하는 등 관세에 집착하는 이유다. 해외에서 들여온 상품에 관세를 물려 국내 제조품 가격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이러한 경제 구상을 실현할 또 다른 수단은 저유가와 저금리였다.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을 저유가로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동시에 기업 물류비와 생산 원가 절감을 꾀하겠다는 것이었다. 저금리도 기업 이자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앞으로 1년 뒤 연준 기준금리가 1.00% 이하로 내려가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전쟁을 도발함으로써 스스로 이러한 여건을 무너뜨린 꼴이다. 고유가는 물가를 올리고 기업 비용을 증가시켜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김영익 교수는 "전쟁은 제조업 리쇼어링에 마이너스"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고용과 소비에 모두 악영향을 끼쳐 경기침체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내에서 유가가 낮은 편인 텍사스 주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들이 여럿"이라고 말했다.
저유가, 저금리는 '평화'를 전제로 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이치를 잊은 모양이다.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 결국 평화라는 사실을.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