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권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 달리 나타나
국내에서 200만부 이상이 팔린 미국 하버드대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에는 유명한 '전차 딜레마'가 등장한다.
"시속 100㎞의 속도로 달리던 전차의 브레이크가 고장났다. 전차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선로만 바꿀 수 있다. 전방에서 5명의 인부가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옆 선로에는 1명의 작업자가 있다. 선로를 바꾸지 않으면 5명이 죽고 바꾸면 1명이 죽는다. 과연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가"
물론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문제다. 실제상황을 가정한 이 사고 실험은 다양하게 변형되면서 윤리와 정의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AI)에 의해 제어되는 자율주행차 시대가 눈 앞에 다가오면서 '전차 딜레마'는 이제 현실의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과학자들과 윤리학자, 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맞댄 채 고심하고 있다.
BBC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 연구팀이 지난 2014년부터 4년간 '도덕기계(Moral Machine)'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전세계 3961만명을 대상으로 '전차 딜레마' 실험을 실시한 뒤 그 결과를 지난 주 과학저널 '네이처'에 게재했다고 28일 보도했다.

실험은 영어, 아랍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한국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10개 국어로 진행됐다.
편도 2차로를 달리던 자율주행차가 횡단보도 앞에서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킨 상황을 가정했다. 곧장 직진을 하면 탑승자가 콘크리트 벽에 충돌해 사망하고, 차선을 변경하면 보행자를 치게 된다.
연구팀은 탑승자와 보행자의 성별과 숫자, 직업, 나이, 애완동물 동승여부 등 조건을 변화시켜 13가지 시나리오를 만든 뒤 상황에 따른 응답자들의 선택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먼저 목숨을 구해야 할 대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 나이든 사람보다는 젊은이를 꼽았다. 또 다른 조건이 같다면 희생자의 수가 적은 선택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보다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승객보다는 보행자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문화권별 차이도 눈길을 끌었다. 같은 조건일 경우 노인보다 젊은이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 나라는 프랑스 그리스 캐나다 영국 순이었다.
반대로 이 비율이 가장 낮게 나타난 나라는 대만 중국 한국 일본 순이었다. 이는 아시아 문화권에 널리 퍼져 있는 경로사상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탑승자보다 보행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 나라는 일본, 노르웨이, 싱가포르 순이었다. 반면 이 비율이 낮게 나타난 나라는 중국, 에스토니아, 대만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서구권에서는 사람의 숫자가 많은 쪽, 어린아이이거나 몸집이 작은 사람들을 구하는 방향을 선호하지만 동양권에서는 사람 숫자와 관계 없이 보행자가 더 안전해야 한다는 선택을 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인류는 기계로 하여금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를 결정하게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자율주행차의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며 "자동차 제조사와 정책 입안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도덕 알고리즘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KPI뉴스 / 윤흥식 기자 jardi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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