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절단으로 사적 복수를 실행하는 이들의 철학적 미스터리
모든 순간과 순간의 기억을 사랑하기 때문에 쓰는 작가의 여정
"소설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연대"
'서울 도심, 청계천에서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잘린 왼쪽 손이 발견됐다. 중국 관광객이 아침 산책길에 발견했다. 경찰과 미스터리사건 전담반은 손의 주인을 찾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
소설가 백가흠은 10년 만에 내놓은 장편 '아콰마린'(은행나무) 서장에서 비극의 첫 문단을 이렇게 예고한다. 비극은 되살아나서 다시 죽기를 반복하는데, 그 비극은 현재에 저항하기 위해 부활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소설은 이제 본격적으로 잘린 손의 주인과 되풀이되는 폭력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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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담 뺑덕' 이후 10년 만에 새 장편을 펴낸 소설가 백가흠.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이 사건을 맡은 팀은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이 모인 '미스터리 전담'(미담반)이다. 오십대 중반 베테랑 형사 '케이' 팀장에게 25년 전 맡았던 사건의 범인 아들이 찾아온다. 아버지가 감옥에서 죽으면서 그를 찾아가보라고 했다는데, 죽은 이는 억울하게 슈퍼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복역 중이었다. 케이를 포함한 '그들'이 저지른 일이었다. 다른 이들은 승승장구했는데 당시 초짜 경찰이었던 그는 아직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케이를 중심으로 미담반에는 각기 사연을 품은 김세영, 차세영, 한채연, 정형배 등이 합류해 손뿐 아니라 발까지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에 전시되는 기묘한 사건의 실체를 쫓기 시작한다. 단순히 사건의 윤곽만 접하면 범상한 추리물처럼 보이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25년차 소설가 백가흠이 5년 동안 붙들고 씨름한, 반복되는 부조리를 끊어내는 '혁명'에 관한 이야기다. 철학과 신화와 문학이 만나는 지점의 대중적인 서사를 표방한다.
장편과 함께 지난해에 이어 산문집 '왜 글은 쓴다고 해가지고'(난다)도 나란히 펴냈다. 글쓰기에 관한 백가흠의 철학과 개인적인 소회, 그가 읽었던 텍스트들이 흥미롭게 진설돼 있다. '작가가 안 됐으면 목수가 되려고 했다'는 그는 '사랑하기 때문에 쓴다'고 썼다. 대구에서 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살고 있는 그를 전화로 만났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장편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가.
"전체적으로는 어떤 사적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좀 다른 방법을 한 번 얘기해 보고 싶었다. 근대의 시작인 동학 관련 소설을 준비해오다 5년 전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됐는데, 아직도 우리는 근대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 신분 계급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다른 계급들이 계속 끊임없이 그 자리를 노리는 또다른 근대의 양상이다. 하나의 권위주의적인 권력이 사라지면 또 다른 권력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 다른 이들을 핍박하는 어수선한 시절이다. 동학으로부터 지금까지 120~150년이 걸렸지만, 인문학적인 시간으로 보면 정말 찰나의 순간일 수 있다. 반복되는 어수선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절단의 모티프가 상징적이다. 손과 발을 자르는 자극적인 행위의 의미는?
"용서가 됐건 복수가 됐건 진정한 단절은 그렇게 손과 발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 같은 것이어야 한다. 진정한 화해는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너무 무르게 용서와 화해에 좀 성급한 면이 있다. 만약 누군가에게 사적 복수를 제대로 한다면 그런 방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손발을 자른다기보다, (반복되는 악습을) 끊어내는, 확실한 단절을 상징하는 거다."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후회와 반성, 참회의 과정 같은 거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손을 자른 이유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반장님도 해보세요. 잘라내보면 그 후회나 반성의 존재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없애보면 있었던 게 드러나지요.' _'아콰마린'
-'사적 복수'는 이즈음 콘텐츠의 트렌드 같은 느낌이다.
"시대 분위기 탓일까. 그렇지만 내 소설은 이미 5년 전 구상한 작품이다.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무너진 공적 시스템에 대응하는 어떤 연대를 생각했다. 한두 명 혹은 몇십 명이 하면 사적 복수라고 하겠지만, 100만 명이 하면 그건 혁명 아닌가. 단순한 추리물로 쓴 건 아니다. 취조 장면이나 서로 주고받는 대화 안에서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사유를 담고 싶었다."
'아콰마린'에는 '넷 중 첫째' '셋 중 첫째' '둘 중 첫째' '하나의 하나' 같은, 분노를 지닌 이들이 다수 등장한다. 넷, 셋, 둘, 하나는 이 소설에서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인물 외에도 무수하게 배면에 널려 있을 '피해자'들을 상징한다. 백가흠은 "복잡해 보이지만 이들은 그냥 돌아보면 보이는 존재들"이라며 "정말 평범한 이웃, 동료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이번 소설에는 국가 공권력의 상징적인 폭력으로, 진범이 나타났는데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무시했던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이나 간첩 조작사건 '오송회' 를 연상케하는 상징적인 국가 폭력이 배경으로 깔린다. 백가흠은 두번째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를 준비하면서 "억압적인 시스템이나 무책임하게 자행된 국가 폭력으로 한 개인이 어떻게 몰락할 수 있는가에 내 문제 의식은 초점이 맞춰졌다"면서 "개인에 대해 무관심한 국가 시스템이 개인의 인생을 어떻게 파편화하는가 하는 고민이 소설 주제가 된 것"이라고 산문집에 밝혔다. 오래 지녀온 문제의식이 이번 장편에 이르러 구체적으로 반영된 셈이다.
-산문집에서 '소설은 책임자는 사라지고 없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연대'라고 정의했다.
"소설을 쓰고 나면 작가는 소설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오게 된다. 아무리 내 소설을 보살피고 싶어도 불가항력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소설을 읽고 공감한 사람들이 소설을 계속 살려놓는 느낌이다. 처음 시작은 내가 했지만 소설이 완성된 순간 작가는 완전히 사라지고, 뭔가 책임을 지고 싶어도 변명도 할 수가 없고 이미 그걸 읽고 공감한 사람들끼리 전해주고 나누면서 이 책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책임져 주는 연대감이 형성되는 것 같다."
-'이 모든 순간과 순간의 기억을 사랑하기 때문에, 쓴다'고 썼다.
"글쟁이들은 이미지로 기억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과정은 잘 기억이 안 나고 찰나적인 이미지들로 기억이 채워져 있다. 그러다 보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 스틸컷 같은 사진들을 가지고 주로 글을 쓰는데, 잘 떠올려 보면 그 순간이 충격적이고 슬프고 이런 면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감정은 정말 사랑하는 마음인 것 같다. 왜 이게 떠오르지, 생각하는 순간 참 좋아하고 사랑하는 느낌, 이걸 쓰면서 살아가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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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가흠은 "타인의 고통을 처음 이해한 순간이 내 소설의 시작이었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작가란 타인의 고통을 재현하는 사람이다. 작가의 탄생은 이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말이다. 공감한 독자들은 작가를 기억하게 된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고해성사로 이루어진 작품은 작품이 남지만 타인의 고통을 재현한 작품은 작가가 남는다. 우리가 아는 리얼리즘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하여 내게 리얼리즘은 그 맨처음 '참나'의 접점으로 '영원'을 꿈꾸게 해준 그 '감'에 대한 제공자들이다. _ '글은 왜 쓴다고 해가지고'
장편 '아콰마린'속 인물들의 전후 행동 맥락은 감춰진 부분들도 많다. 독자들은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시종 긴장한 채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데, 끝까지 풀리지 않는 부분도 있다. 백가흠은 "작중인물들을 모두 살려놓은 것은 후속작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서 "연재 당시 썼던 많은 에피소드들을 축약했는데 독자들 반응을 봐가며 이어지는 속편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보았던 맨 처음의 푸른빛, '아콰마린' 속 희망.
희망은 혼자에겐 위험한 것이지만 같은 희망을 품은 여럿에게는 위험한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혼자서 희망의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건 희망이 아니라, 그러니까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희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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