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이틀 푹 쉬고 난 개운함

홍종선 / 2018-09-22 08:59:05
임순례 감독과 김태리, 문소리 등 좋은 배우에 감사
거기 있어 준 자연에 감사, 감사하고 감사한 영화

영화가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해서 밥 먹을 준비를 하고 플레이버튼을 눌렀다. 자신만의 작은 숲을 만들어가는 혜원, 다양하고도 실험적인 엄마의 밥을 먹고 자란 혜원이 만들어내는 건강하고 먹음직스런 음식에 침은 고일지언정 허기까지 겹치는 낭패를 경험하고 싶진 않아서였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나이 탓인가. 다른 게 가슴 깊이 쑤욱 들어온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혜원이 계산 틈틈이 먹는 인스턴트 식품에 비하면 왕후의 밥상이라 할 포장도시락을 앞에 두고 "감사합니다"를 말할 때 울컥. 늦었지만 나도 한 끼의 먹거리 앞에서 "감사합니다"를 되뇌었다. 밥 한 숟가락 입에 넣다 말고 도로 뱉어 도시락을 버릴 때 다시 울컥. 이 시대 청춘들의 고단한 삶이 비릿한 맛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보면서 몇 장의 반성문을 썼는지 모르겠다. 한 그릇의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저 자연의 땅과 물과 햇볕에서 시작해 구체적 식감을 지닌 식재료로, 만든 이의 사랑과 고뇌와 정성이 보태져 요리로 밥상에 오를 때까지 보태진 모든 이의 노고에 감사함을 잊은 지 오래라는 자성은 사치라 하겠고. 당장 나는 혜원의 엄마처럼 그렇게, 마음으로 몸으로 빚어낸 음식으로 아이를 어른으로 성장시키고 있는 건지 부끄러웠고, 인생 길에서 넘어졌을 때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땅과 햇볕의 힘 가까이에서 아이를 키우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아니, 무엇을 해 주지 못한 것보다 혜원의 엄마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삶으로 보여 주고 있는지 의문이 일었다. 리틀 포레스트는 반성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를 먹고 소화하게 하는데, 내게는 그게 '되돌아봄'이었을 뿐이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리틀 포레스트의 가장 큰 미덕은 이야기 진행, 카메라 움직임, 화면의 흐름, 인물들의 감정 속도가 느려서 내게 생각을 시간을 계속해서 주었다는 것이다. 그 느림의 미학 속에서 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눈 안에 가득한 자연의 색과 소리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정신없이 살고 있는 내게 힐링을 준 것도 좋았지만, 임순례 감독이 찍어 놓은 그 쉼표 위에서, 쉼표와 쉼표 사이에서 계속해서 나 자신과 내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느릿한 모든 영화가 해낼 수 있는 성취가 아니다. 느리되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시킬 줄 아는 임순례 감독의 탄탄한 연출 힘, 남의 얘기가 아닌 내 얘기로 느끼게 하는 임 감독의 공감 능력 덕분이다.

자연의 일년 사계절을 모두 담아내서일까. 2시간 남짓 영화를 보았을 뿐인데 이틀은 푹 쉰 것 같은 개운함이 나를 감싼다. 이제 뭘 좀 해 먹고 슬슬 움직이고 싶은 느낌.

영화 속에서 혜원이, 김태리가 말한다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계절의 변화에 맞춰 네 번 촬영을 시작하고 네 번 마칠 줄 아는 감독과 이를 함께 기다릴 줄 아는 좋은 배우들. 임순례, 김태리(혜원 역), 문소리(혜원엄마 역), 류준열(재하 역), 진기주(은숙 역)에게 감사하다. 엄마의 편지를 혜원에게 배달해 준 우체부(박원상 분)에게 감사하고 맛있는 밥상을 차려 주신 혜원이네 고모(전국향 분)께도 감사하고 혜원이에게 닭을 던져 주신 동네 할아버지(조석탑 분)도 감사하다. 우리 음식이 이토록 맛있고 건강했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식을 만들어 주셨을 분(진희원 푸드스타일리스트)께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늘 거기 있어 아름답고도 엄숙한 풍광을 우리에게 허락한 자연에 감사하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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