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두환이 '영웅'으로 둔갑하지 않으려면

김당 / 2019-02-19 14:33:26
인간은 잘 속는 망각의 동물…가해자 전두환과 이근안이 '영웅' 둔갑
망각과 단절의 역사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한국판 反홀로코스트법' 필요

 

▲ 김당 정치·외교 에디터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의 국민영웅이다. 박항서 감독이 한창 뜰 때는 베트남 사람들이 전두환 사진을 보고 '우리의 영웅'이라고 엄지 척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베트남과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군인 전두환은 베트남전이 한창인 1970년 '월남 백마부대'로 유명한 보병9사단의 연대장으로 참전했다. 제29연대(박쥐부대)의 전두환 대령은 무공을 세웠지만, 베트남에게는 가해자다. 단순한 이미지의 오류로 가해자(전두환)가 영웅(박항서)으로 둔갑한 셈이다.


블랙 코미디 같은 웃지 못할 실화도 있다. 고(故) 김근태 의원 생전의 일이다. 김근태를 고문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장기간 도피해 화제가 되었을 때다. 한 시민이 그의 손을 반갑게 부여잡고 이렇게 얘기했단다. "이근안씨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고문 피해자인 김근태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망각의 현실 앞에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잘 속는다. 그래서 "거짓말도 반복하면 진실이 되고,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잘 속는다. 선동적 이슈를 만들면 거리의 군중을 장악할 수 있고 군중을 장악하면 국가를 장악할 수 있다"고 공언한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라는 괴물과 히틀러라는 미치광이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대표적 전쟁범죄인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도 그 시작은 미약했다. 심지어 이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 사건의 시작은 '합법적'이었다. 1928년 당시 나치당은 바이마르공화국 국민의회에서 겨우 12석이었다. 하지만 실업자가 급증해 나치의 선전선동에 동조하는 세력이 폭증하는 가운데, 나치당은 1932년 선거에서 270석(득표율 37.2%)을 차지해 제1당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 이듬해 수상이 되어 합법적으로 집권한 히틀러는 수권법을 제정해 독재권을 장악했다. 이어 히틀러는 집권 6개월 만에 '나치 돌격대'를 앞세워 자신이 반대하는 모든 정치세력을 '합법적'으로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전쟁범죄와 집단광기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나치 범죄를 부인하거나 옹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독일의 '홀로코스트 부인금지법'은 집단광기를 막지 못한 과오에 대한 뼈아픈 반성의 산물이다. 뿐만 아니라 인종과 민족, 종교 등 특정 그룹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혐오발언)도 처벌 대상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도 인종주의와 외국인혐오 행위를 법으로 처벌한다. 역사적 범죄를 부인하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할 경우 희생자와 가족들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소수자를 상대로 한 범죄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독일의 이런 태도는 같은 전범국가임에도 난징학살과 군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하면서 끊임없이 역사 왜곡을 시도하는 일본과 대비된다. 홀로코스트 부인금지법이 없는 일본에서는 재일한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와 혐한(嫌韓)·증오범죄가 실제적 위협으로 이웃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5·18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투입된 살인폭동으로 폄훼하고, 광주학살의 최고책임자인 전두환을 영웅으로 미화한 지만원씨를 국회에 초청해 멍석을 깔아준 한국당 국회의원들의 '5·18망언'을 계기로 '한국판 홀로코스트 부인처벌법' 제정 움직임이 활발하다.


처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특별법은 다른 헌법 가치이자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반인륜 범죄 등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부인왜곡하는 행위를 이제는 사적인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으로 가지고 와서 관련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가해자인 전두환과 이근안이 '영웅'으로 둔갑하는 망각과 단절의 역사가 더는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KPI뉴스 / 김당 정치에디터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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