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도래 따라 노년 개념 재정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연륜과 경험으로 무장한 '실버 인플루언서'가 뜨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대중문화의 흐름에서 제외됐던 노년층이 트렌드를 이끄는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은퇴 후에도 삶을 즐기며 자아실현을 하고 있는 지구촌의 '액티브 시니어'들은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는 수동적인 노인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벗어던졌다.
이들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능숙하게 다루며 대중문화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싸'가 된 시니어…SNS 통해 젊은 세대와 소통
액티브 시니어들은 단순 소비자나 문화 향유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젊은 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SNS를 통해 창의성과 개성을 드러내며 대중문화의 중심부를 공략하고 있다.
특히 패션·뷰티 업계에서 액티브 시니어의 약진은 주목할 만하다. 젊음이 곧 아름다움이었던 뷰티 업계까지 침투한 액티브 시니어는 기존 공식을 뒤집고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며 노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
2014년 '우연의 아이콘(Accidental Icon)'이라는 이름의 패션 블로그를 개설한 66세의 린 슬레이터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패션 리더로 떠올랐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슬레이터의 차별화된 패션 감각에 대중은 열광했다. 미국 포드햄 대학교 사회봉사대학원 교수였던 그는 패션위크가 열리고 있는 곳 근처에서 약속을 기다리던 중 우연히 찍힌 사진이 유명세를 타면서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트렌드를 이끄는 시니어 인플루언가 된 슬레이터는 미국의 저명한 패션 매체 '리파이너리29'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인플루언서가 되어 '나이듦'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꿨다. 인플루언서는 내가 속한 곳의 문화를 바꾸도록 영향을 미친다"며 그 순기능을 강조했다.
슬레이터는 '나이'를 부각시키는 작업을 거부하며 노화에 대한 인식도 바꾸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잡지 '패셔니스타'와의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구시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뷰티·패션 회사가 '노화 방지'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나를 캐스팅한다면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12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16만 명의 페이스북 팔로워를 거느린 아이리스 아펠 역시 패션계를 주름잡는 핫한 실버 스타이다. 아펠은 커다란 뿔테 안경과 화려한 액세서리 등 과감한 패션 사진을 SNS에 공유하며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고 있다.
과거 디자이너로 백악관 인테리어 작업과 다양한 디자인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아펠은 97세가 된 올해 지젤 번천, 케이트 모스 등이 소속된 대형 모델 에이전시 IMG와 정식모델 계약까지 체결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아펠은 최고령 바비 인형 모델이 되기도 했고, 최근엔 아이스크림 브랜드 매그넘(Magnum)의 최신 국제 캠페인 얼굴로 발탁되는 등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71세가 된 트리샤 커스던은 SNS를 활용해 메이크업 노하우를 선보였다. 커스던은 지난 2013년부터 매주 자신의 블로그에 메이크업과 관련된 글을 올렸고 유튜브에도 관련 동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했다. 자신이 직접 출연하거나 비슷한 연배의 나이든 모델을 대상으로 메이크업을 시연한 동영상들은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인기에 힘입어 커스던은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한 뷰티브랜드 '룩 패뷸러스 포레버(Look Fabulous Forever)'를 출시했다.
인플루언서로서 커스던의 신념은 확고하다. 커스던은 2018년 영국 매체 '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노화 방지란 문구는 근본적으로 모욕적이다"라며 "이러한 문구를 화장품에 붙여 70대 여성으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을 막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한 "미용 산업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연결시켜 모든 것을 젊은 고객에게 초점을 맞춘다"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커스던은 노화를 감추기보다는 노년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방법들을 SNS에 공유했고 그 결과 대중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
SNS를 통한 시니어의 약진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본인이 촬영한 사진을 SNS에 올리며 일본 전역에 열풍을 일으킨 92세의 니시모토 키미코는 '셀프 포트레이트' 전문가다. 그는 72살에 카메라를 들었고 74살부터 포토샵을 쓰며 본인이 직접 연출하고 편집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할머니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르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듯한 유쾌한 사진에 젊은 층은 반응했다.
덕분에 2017년 신주쿠에서 '함께 놀아볼까요'란 제목으로 개인 전시회를 개최했고 사진집도 출간했다. 니시모토 키미코는 거동이 쉽지 않음에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는 SNS뿐 아니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다양한 창구로 소통한다.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8%를 차지하는 일본에서는 책을 통해 젊은 세대와 대화한다. 사토 아이코가 쓴 <90세 뭐가 경사라고>는 100만부 이상 팔리며 2017년 일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시바타 도요가 98세에 낸 첫 시집 <약해지지 마>는 150만부 넘게 팔리는 등 100세 전후 작가들이 쓴 '아라한(around hundred) 책'이 큰 열풍을 일으켰다.
전통적인 노인의 모습을 탈피한 액티브 시니어들은 이제 젊은 세대에게 훈수를 두는 '꼰대'가 아니다. 젊은이들과 문화를 공유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중문화의 선두 주자이다.
60대, 이제는 노년 아닌 '중년'으로 바라봐야
국제기구인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International Institute for Applied Systems Analysis)는 지난해 '노인(老人)'의 나이 기준을 재정의했다. IIASA는 인간의 기대수명이 길어진 만큼 이제는 60~65세,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나이까지도 중년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수명을 고려하면 지금 60대는 과거의 40~50대 정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 기준이 달라진 만큼 액티브 시니어의 성장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73년 전 버스 안에서 캐스팅 된 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세계 최고령 현역 모델 카르멘 델로피체는 최근 미국 패션전문지 하퍼스바자와의 인터뷰에서 "105세가 되면 직업을 바꿔보겠다"고 말했다.
꿈을 꾸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한국도 2017년 고령화 사회를 지나 '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초고령 사회가 멀지 않았다. SNS에 힘입어 사회에 진출하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KPI뉴스 / 임혜련 기자 ih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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