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 트럼프 협박이 소환한 '전략 폭격' 망령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6-04-09 16:30:14
트럼프, 이란 겨냥해 "석기시대" 표현 거듭 동원
앞서 미국 공군 지휘관 커티스 르메이가 쓴 표현
석기 시대로 되돌리겠다는 것은 전략 폭격 의미
전략 폭격, 민간인 희생자 양산…효과는 불분명

"석기시대"가 근래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란을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일(현지시간) 발언 때문이다. "석기시대"는 이날만이 아니라 다른 날에도 이란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등장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이란의 군사 시설만이 아니라 발전소, 교량 같은 사회 기반 시설까지 무차별 공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파괴해 이란을 문명화 이전 상태로 만들기 전에 굴복하라는 협박이었다. 

 

▲ 지난달 3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 이후 치솟는 연기 뒤로 해가 지고 있다. [AP 뉴시스]

 

"석기시대"가 미국 역사에서 전쟁과 관련해 사용된 적이 있는 표현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시기에 미국 공군 참모총장이던 커티스 르메이가 회고록에서 이 표현을 썼다. 적국인 북베트남을 폭격해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석기시대로 되돌리겠다는 것은 전략 폭격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전략 폭격은 적의 전쟁 수행 능력이나 전의를 없애기 위해 주요 도시, 생산·교통·통신 시설 등을 폭격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육해군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특정한 목표에 대해 행하는 전술 폭격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전략 폭격에서는 민간인이 주요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국제법 위반이자 전쟁 범죄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전략 폭격론자 기준으로 보면 무고한 민간인은 없었다. 상대국 민간인은 적의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강대국들은 비판을 무시하고 전략 폭격을 거듭 실시했다.

2차대전 때 미국, 영국, 독일 등이 그러했다. 각국의 전략 폭격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대규모로 발생했다. 하룻밤 사이에 약 10만 명이 사망한 1945년 3월 미군의 도쿄 폭격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이 시기 미국의 일본 전략 폭격을 지휘한 사람이 커티스 르메이다.

미국에 커티스 르메이가 있었다면, 독일과 보복 폭격을 주고받은 영국에는 '도살자'로 불린 아서 해리스 공군 폭격사령부 사령관이 있었다. 아서 해리스의 영국 공군은 전략 폭격의 일종인 지역 폭격을 택했다.

군수 공장, 주거 밀집 지역 등이 있는 특정 시가지를 한 묶음의 표적으로 간주해 무차별 폭격하는 방식이었다.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공장 노동자를 비롯한 민간인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이 방식을 택한 영국이 미국과 합동으로 전개한 폭격 작전으로 인해 1943년 함부르크, 1945년 드레스덴 등 독일 도시 곳곳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전략 폭격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재연됐다. 커티스 르메이는 2차대전뿐 아니라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도 전략 폭격을 밀어붙였다. "석기시대"라는 표현을 쓴 커티스 르메이가 미군에서 전략 폭격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진 이유다.

이처럼 전략 폭격은 주요 전쟁에서 활용됐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많이 붙는다. 전략 폭격만으로는 적국을 굴복시켜 전쟁을 끝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효과가 불분명한 것과 달리, 전략 폭격이 민간인 희생자를 양산했다는 점은 명확하다. 발전된 기술을 활용하면 민간인 피해 없이 표적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는 주장이 그간 거듭 나왔지만, 현실에서는 늘 그렇지 않았다. 이번 미국·이스라엘-이란전쟁 초기에 이란의 한 초등학교 폭격으로 170여 명이 사망한 것과 같은 일이 여러 전쟁에서 반복됐다.

전략 폭격 실행으로 전쟁이 길어지고 전선이 확대되면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아들이 투자한 드론 업체 같은 곳이 큰돈을 벌 기회가 늘어난다.

전략 폭격을 당한 국가에서 극단적 세력이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이 강화된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전쟁 시기 미군 폭격으로 초토화된 이후의 북한 역사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미국과 이란이 8일(한국 시간) '2주간 휴전'에 합의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협상은 쉽지 않을 것이고, 전략 폭격의 망령을 소환한 사람이 '문명 파괴'를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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