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그대, 마음에 불을 싸질러버리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6-04-03 17:22:16
구례장터 미역장시 장진희 시인 첫 시집 '불을 놓아'
전국 오일장, 마을회관 유랑하며 할매들과 나눈 사연
시대를 잘못 만난 '애비에미' 사연 극복하는 씻김굿
"우리네 근본 심성 잃고 헤매면서 시들도 비비꼬여"

긴 겨울을 나는 산골/ 아이도 젊은이도 없는 마을/ 영감도 먼저 가버린/ 기름값 무서워 더욱 썰렁한 집을 나와/ 할매들 마을회관에 오골오골 모여 있었다// 바닷가 마을에서 미역 다시마 싣고/ 방방곡곡 산골짝 마을마다 찾아가는/ 나는야 미역장시/ 작년에 왔던 각설이, 아니 미역장시,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할매들 반겼다 _ '유랑장사' 부분 

 

▲ 곡성 보성강변 마실길에서 만난 장진희 시인. 장터와 마을을 유랑하며 길어올린 이야기와 어두운 성장기를 첫 시집에 '씻김굿'처럼 풀어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매화 산수유 한꺼번에 터져 나와 향과 색이 넘치는 봄날, 구례장터 노점에서 미역을 파는 장진희 시인을 만났다. 꽃을 보고 파장 무렵 들렀을 때, 시인은 진도 산 '안 짠 미역귀'와 '미역장시 시집'이 나란히 놓인 좌판을 막 거두고 있었다. 시인은 이마 위로 내리는 봄날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좌판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고향 진도에서 자연산 돌미역을 떼어다가 2.5톤 트럭에 싣고 전국 마을회관 할매들을 찾아다니는 유랑장사를 하면서, 남쪽에서 북쪽 동두천까지 안 다닌 곳이 없었다. 요즘은 구례 장날만 나오지만, 이전에는 인근 5일장도 모두 찾아다녔다. 미역을 팔면서 할매들 이야기를 들었고, 푸지게 퍼주는 '동냥 사랑'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그이는 시로 써서 지인들에게 안부 겸 편지 형식으로 보냈다.

이른바 등단 같은 건 거치지 않았지만, 이미 '동네 시인'으로 알려져 여기저기서 행사가 있을 때면 그를 부르곤 했다. 그렇게 모인 시가 300여 편. 지난해에는 섬진강변 시인 6인 중 한 사람으로 합동시집을 냈고, 드디어 그이가 쌓아온 시들이 이번 주 생애 첫 시집으로 세상에 나왔다. 4부로 구성된 55편에 산문 두 꼭지를 첨부했다. 이 시집 '불을 놓아'(솔)는 이제 구례장터 미역장시 좌판에도 진설된다.

-오래 품어 온 시들을 늦게 펴낸 것 같다.
"시는 혼자서 그냥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를 쓰면 친구들에게 편지나 전화 안부 대신 시를 보냈다. 아주 아름다운 답장들이 왔다. 재밌고 좋았다. 사람들이 작은 모임이 있을 때 시인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동네 시인이 되어 그냥 살았다."

-어쩌다 시를 쓰게 됐는가.
"대학시절 문학회를 함께 했던 선배가 만날 때마다 '너는 어찌 시를 살기만 하고 쓸 생각은 안 하냐'고 타박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그 선배가 내준 숙제를 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실 소설을 쓰려고 했다. 소설은 진득하게 앉아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렇게 살다보니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시를 먼저 쓰기 시작했다. 소설도 써볼 생각이다." 

 

장진희 시인은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살다가, 숭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출판사 생활과 대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울에서 살았다. 30대 초반 숨이 막힐 것 같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무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살았다. 신문이나 TV, SNS 모두 끊고 논밭에서 살았던 이 시기 7년이 돌아보면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말한다. 무주를 떠나 고향인 진도에 내려가 대안학교와 초등학교 교사로 살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너무 안쓰러워 그마저 그만두고 전국을 유랑하는 '미역장시'의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보성강 죽곡 마을에서 진돗개 '화양'과 살고 있다.

 

▲ 구례장터 좌판에서 미역과 함께 시집을 파는 장진희 시인. 왼쪽에 합성한 첫 시집도 좌판에 진열할 예정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당신 말마따나/ 모실집을 얇어지고 산천은 뚜까지는 시절이 오니/ 찹쌀 파는 할매/ 오랜만에 장에 납시었다/ 어그적어그적 찔룩짤룩 걸어서/ 겨우내 간수했던 고구마 한 자루,/ 농사 지은 찹쌀 한 자루 가지고 나왔다// 장이나마나 디럽게 안되네/ 막걸리나 한잔 받아 묵세/ 어이, 진도보지 일루 와보지!/ 자자, 잔대보지!/ 안주도 묵어보지!/ 구릿빛 얼굴에 박아넣은 쇠이빨 드러내며/ 너털너털/ 우스매소리를 찌큰다 _ '순천 아랫장 찹쌀 할매' 부분

-할매들 이야기가 푸짐하다.
"남도 시골장은 물론 전라남북도와 충청도, 동두천까지 5일장을 돌아다녔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워서 사람들이 장터에 별로 안 나오는데, 처음에는 장터만 돌아다니느라 고생했다. 언젠가 너무 힘들어서 마을에 차를 세워놓고 인근 구경을 다니다가 할매들과 어울린 뒤로는 한여름이나 겨울에는 마을회관을 돌았다. 그렇게 전국 할매들과 잘 놀았다. 원래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게 생겼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장사하면서 성격이 엄청 좋아졌다. 할머니들과는 긴장관계가 없다. 처음 본 나에게 며느리 흉도 보고 무슨 말이든 하니까 무장 해제가 돼서 나도 말을 잘하게 된 거다. 그 할머니들의 심상을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역을 사든 안 사든 다 내 새끼처럼 나를 챙겨주고 어디 한 군데라도 가서 더 팔라고 자기 딸처럼 안쓰러워해줬다. 장사하고 긴장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받으러 다니는 느낌이었다. 이런 '동냥 사랑'을 얻고 살았다."

-할매들의 '동냥 사랑'은 우리네 심성의 유구한 바탕인 것 같다.
"그런 과정이 큰 감동이었고, 그러다 보니 열심히 다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본 DNA가 그 할매들의 심성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본적으로 안쓰러움을 느끼고, 내 새끼 니 새끼 안 따지는 그런 보살심이 원래 있는 것 같다. 내가 만난 그 할매들이 말하자면 최후의 원주민이다. 이제는 그 심성들을 잃어가니까 사람들이 헤매고, 시들도 헤매는 것 같다. 이상하고 어렵고 비비꼬이고…"

-전라도 사투리를 시에 자주 진하게 사용한다.
"점잖은 언어로 시를 쓰려고 하면 잘 안나오는데, 나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로 얘기를 하면 내 속이 잘 꺼내지는 것 같다. 물론 분위기에 따라 표준어로 쓰기도 하지만 전라도 말, 내가 쓰던 말이어야만 표현되는 그런 시들이 있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안 쓰던 말을 만나면 반갑다. 할매들이 도서관인데 점점 사라지고 있다."

죽곡 마을 그의 방에는 상패 하나가 놓여 있다. '오매 오진 상' 수상 내역. "광주역사민속박물관과 전라도닷컴이 항꾸네 여는 제11회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에 역부러 나와서 귄있고 이삐고 따숩고 재미진 이야기를 들려주신 님께 이 상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전라도 사람들의 삶과 맘을 담은 전라도말을 사방간디에 꽃낭구 씨맹키로 퍼뜨려 주시오 잉!" 


짐짓 명랑하고 잘 웃는, 거칠 것 없어보이는 시인의 성장기 내력은 어둡다. 아버지는 빨치산 토벌대였고, 산으로 간 남자의 아내를 진도로 보쌈해 와 그를 낳았다. 그는 "시국치리를 잘못한 탓에/ 고운 목숨들 사나워져/ 애비는 에미를 패고/ 에미는 새끼들을 패고// 후려패고 싶은 것이 사실은/ 이놈의 세상이었음을 알았다면/ 어린 새끼는 그토록 독기 품고 살지 않았을 것을/ 고스란히 울어주었을 것을"('노랑 저고리 붉은 치마')라고 썼다. 시대를 잘못 만나 거칠어진 이들에 대한 연민이 아프다.

애비는 술로 죽었다 애비를 묻던 날 상여소리 매김소리 따라 한정없는 "관세음보살" 받는소리 들으며 마음속 묘비명을 외었다 술꾼에 난봉꾼 여기 잠들다// 아이답지 않은 아이, 청춘답지 않은 청춘은 죽은 애비 나이가 되도록 위태로웠다 세상은 여전히 낯설었다 시국치리 잘못한 에미의 딸 또한 시국치리를 잘못한 것이다 딸의 아들보다도 더 어린 애비에미도 그때 위태로워서 그랬을까 삶이 낯설었을까 하필 갈라놓은 땅에서 태어나서 _ '애비는 토벌대였다' 부분

 

▲ 보성강변 매화밭 장진희 시인. 그는 "온전한 시가 하나도 없다"면서 "쪼물락쪼물락하다가 풋내나는 열무지처럼/ 고치고 고치다 떡이 되어버린 그림처럼/ 더 망치기 전에 살살 버무려 담았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죽은 이들과 화해에 이른 과정은?
"아버지는 평생 숙제였다. 사회 역사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인간이란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꿈에서 아버지의 영혼을 '씻기는' 과정이 계속 이어졌다. 맨 마지막 꿈에는 환한 얼굴이었다. 부모 자식인데 왜 사랑이 없겠는가. 살아생전 너무 힘들게 하고 돌아가신 뒤 꿈으로 만남이 이어졌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만 화해를 하는 게 아니라, 돌아가신 다음에도 영혼끼리 화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에 대한 애증의 감정도 돌아가실 때까지 잘 안 없어졌다. 94세에 돌아가셨는데 마지막에 엄마의 이쁜 모습만 남도록 애를 썼다. 엄마 가신 뒤에도 49일 동안 매일 씻겨드렸다. "

진도는 망자를 보낼 때 영령을 '씻겨서' 보내는 의식인 씻김굿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장 시인은 부모를 그렇게 씻겨 보내는 의식을 나름대로 치른 셈이다. 이번 시집 말미에는 두 편의 산문이 수록돼 있거니와 그 중 한편이 진도 씻김굿 전 과정을 친근하게 서술한 '씻김 받고 꽃상여 타고— 가난이 살려낸 것들'이다. 그는 "당골은 단 한 사람 망자를 위해, 망자의 이름을 골백번도 더 부르며 지극정성으로 풀어주고 달래주고 빌어준다"면서 "살아생전 어느 누가 이렇게도 극진하고 이렇게도 절절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었던가, 이토록 안쓰러워 애를 끓였던가…… 죽어서야 이런 호강을 다 하는 망자는 이제 원도 한도 없을 것 같다"고 썼다.

지나온 어둠까지 시로 모두 독자들에게 드러냈으니, 이번 시집은 자신을 위한 씻김굿이기도 하다. 그는 나이 들어서 시를 쓰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속에서 회오리 불길이 솟구쳐 그 당시에 시를 썼다면 지금처럼 가라앉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속에 이는 불길이 사그라드니, 바깥에 불을 놓아버리고 싶은 것들이 보인다고 했다. 시의 본령이 무엇인지 새삼 곱씹게 만드는 시인의 '선동'.

그대// 마음에 불을 싸질러버리세/ 낙엽도/ 검불도/ 쓰레기조차/ 화르르 화르르/ 태워버리세// 심지 곧은 나무들 살아남은/ 검게 순정한 땅 위로/ 연둣빛 싹/ 올라오거든/ 그렇게/ 새로 사랑하세 _ '불을 놓아' 부분

 

KPI뉴스 / 곡성=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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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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