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강타한 아프리카 돼지열병…전 세계 '비상'

임혜련 / 2019-09-30 13:40:14
중국발 돼지열병, 북한·한국 등 아시아 국가로 확산
사재기·가격급등…글로벌 육류 공급 파동 조짐

치명적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한국을 휩쓸고 있다.


지난 9월 17일 경기도 파주의 한 돼지농장에서 국내 첫 ASF가 발병한지 10일 만에 27일 강화 하점면에서 9번째 확진 판정이 내려졌다.


파주에서 발생한 ASF는 연천군 백학면(2차), 김포시 통진읍(3차)과 파주시 적성면(4차)에 이어 24일 강화 송해면(5차)과 불온면(6차), 삼산면(7차) , 강화읍(8차)로 퍼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ASF 첫 발생 후 살처분 대상이 된 돼지 수는 10만 마리에 육박하고 있다. ASF가 확산일로에 돌입하자 방역 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1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의 한 양돈농장에서 다목적방역방제차량이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아프리카, 유럽 거쳐 아시아 강타…작년 8월 중국 상륙

ASF는 현재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행 중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rld Organisation for Animal Health·OIE)에 따르면 2018년 6월 이후 적어도 36개 국가, 3개 대륙에서 ASF가 발병된 것으로 보고됐다.

아시아는 그간 'ASF 청정지역'이었지만 지난해 8월 중국 랴오닝성에서 ASF가 발견된 이후 9개월 만에 중국 내 31개 성·직할시·자치구로 퍼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중국 남부의 광시(廣西) 자치구에서도 ASF 발병이 보고됐다.

중국 농업농촌부는 ASF의 여파로 중국 돼지 두수도 3분의 1 이상 급감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기준 중국에서 살처분된 돼지는 1억 마리에 이른다.

CNN,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이 같은 현상이 돼지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중국 사회의 안정화를 헤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돼지고기 파동으로 인한 서민들 분노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양돈가에 보조금 지원, 냉동 돈육 방출 등 ASF 근절을 위한 조치를 마련 중이다. 정부는 지난 24일에도 국가 비축분 냉동 돈육 1만t을 시중에 풀기로 결정했다.

ASF는 중국에서 발생한 뒤 인근 아시아 국가로 빠르게 확산했다. 베트남에서는 지난 2월 확진 판정이 내려진 후 63개 주로 급속히 퍼졌으며 이를 막기 위해 47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세계에서 7번째로 돼지고기를 많이 수입하는 국가인 필리핀도 이달 9일 ASF 양성 판정을 받았다.

북한은 ASF를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가 5월 말 OIE에 발병 사실을 알렸다. 이후 6월 노동신문은 전국적인 차원의 방지 대책을 예고했다.

신문은 농장을 소독하고 돼지고기와 가공육의 판매를 제한하는 등 예방 조치를 실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ASF는 이미 북한 전역으로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은 24일 평안북도의 돼지가 전멸했다고 국회 보고를 통해 공개했다.

이외에도 한국을 포함해 몽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의 아시아 국가들이 ASF 확진 판정을 받았다.

미얀마,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태국은 아직 ASF 발병 사례를 보고하지 않았지만, 최근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에서 돼지 200마리가 살처분됐으며 이 돼지들의 조직 샘플이 연구소로 보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태국 정부는 '예방 절차'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ASF는 유럽에서도 유행(outbreak) 중이며 동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는 수년째 퇴치하지 못해 풍토병으로 진행 중이다.


특히 불가리아의 피해는 심각하다. 불가리아는 전체 돼지 사육 두수의 20%에 해당하는 16만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한 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불가리아 당국은 ASF가 발발한 농장의 반경 20km 내에서 야생 멧돼지 서식밀도를 줄이고자, 멧돼지 포획에 86달러의 포상금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불가리아가 확산 방지에 실패했다며 불가리아 내 사육되고 있는 모든 돼지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약 20억 달러(약 2조 3976억)의 경제적 손실을 낳을 수 있다며 우려를 보였다.

이밖에도 벨기에, 헝가리, 라트비아, 몰도바, 폴란드,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의 유럽 국가에서 ASF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짐바웨이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ASF를 앓고 있다.

▲ 아프리카 돼지열병 추가 확산으로 돼지고기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25일 오전 서울의 한 백화점 식품매장에는 돼지고기가 진열돼 있다. [뉴시스]


ASF 여파로 돈육 가격 폭등…소고기·닭고기도 영향

전 세계에서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국가인 중국에서는 ASF의 여파로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돼지고기 도매가는 77% 올랐으며 가격 상승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포브스는 돼지고기 부족이 글로벌 육류 공급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지난달 돈육 수입량이 전년 동기 대비 76%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돼지고기 가격도 요동치고 있다. WSJ는 유럽에서 돼지고기 소매가격이 평균 5%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인들의 '육류 사재기'는 돼지고기뿐 아니라 대체재인 소고기, 닭고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WSJ에 따르면 브라질 가금류의 중국 수출량은 전년 대비 31% 급증했고 닭고기 소매가격은 16% 올랐다.

태국에서도 중국으로 수출되는 가금류가 전년 대비 8배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식량가격지수에 따르면, 올해 돼지고기·닭고기·소고기·양고기 가격은 10% 상승하며 201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헤파린(heparin)' 등 돼지를 원료로 한 의약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에선 이미 헤파린 공급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돼지의 장기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드는 헤파린은 심장마비 환자들에게 중요한 약물이며 수술 도중 혈전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한다.

미국병원약사회(ASHP, American Society of Health-System Pharmacists)에 따르면 독일 건강관리 그룹 프레제니우스(Fresenius SE)의 자회사인 헤파린 생산 업체는 이미 원료 부족으로 약물 할당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 23일 오전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의심 신고가 접수된 경기도 김포시의 한 돼지농장에서 방역 관계자가 가검물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봉투를 들고나와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ASF 유전자 구조 복잡…백신 개발 쉽지 않아

1921년 케냐에서 처음 보고된 ASF는 발견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아직 치료제가 없다.

유럽 국가들을 비롯해 미국, 중국, 베트남 등 세계 각국이 ASF에 대응할 백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 유전자가 복잡한 구조로 이뤄진 만큼 개발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 농무부 차관인 그레그 아이바흐(Greg Ibach)는 지난 5월 미 바이러스 확산 이유를 파악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ASF는 치료제나 백신을 찾기 어려운 질병으로 입증됐다"며 "효과적인 백신 개발에 8년이 소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백신이 개발돼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철저한 차단방역(biosecurity)과 살처분이 유일한 예방 방법이다. 전 세계 국가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ASF를 근절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KPI뉴스 / 임혜련 기자 ih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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