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인터뷰③] "미성년 연출한 여성감독은 신인인가요?"

홍종선 / 2019-04-12 17:00:44
외국인 영화관계자 "험악한 '황해' 면가가 이 영화를 연출?"
감독 김윤석 "염정아-김소진 '사각의 링'에 올리기만 했다"
관객 두고 혼자 달리기? "참여가 중요, 빨리 태우려 했다"

또 하나 궁금한 것이 있었다. 영화 '미성년'(제작 영화사 레드피터, 배급 쇼박스)의 주인공은 여자 넷이다. 대원의 바람, 미희의 마지막 사랑이 엇나가며 네 명의 여자에게 불어 닥친 인생 폭풍, 일생일대 위기에서 네 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캐릭터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감정과 다르게 대처하는 태도를 밀도감 있게 보여 준다. 여자 넷의 이야기인데 어찌나 여자를 잘 아는지 만일 김윤석이 연출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봤다면 감독이 여성인가 생각할 정도였다고, 다소 엉뚱한 질문을 했다.

김윤석은 "저는 그런 것들을 봐 왔어요. 어떤 영화들이 빛나는 순간에 보여지는 것들. 그런 것들을 보는 눈이 있겠죠"라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어쩜 그리 여자를 잘 아느냐보다 앞서는 것은 캐릭터와 영화가 빛나는 순간이라는 것이고, 많은 영화들에서 그런 순간들을 보며 인간과 여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는 말로 들렸다.

"그리고 제가 모르는 것들은 네 명이 다 여성이잖아요, 이보람 작가도 여성이고요. 내 생각은 이런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죠. 감추지 않고 다 드러냈어요, 잘 모르겠으면 모르겠다, 함께 풀어나갔죠." 

 

▲ 영화 '미성년' 촬영 현장 [쇼박스 제공]


"어떤 외국분이, 영화 관계자가 이 영화를 봤대요. 그리고 물었다더군요. '이 여성감독은 신인인가?'. 해서 우리 쪽 관계자가 얘기를 했대요. 영화 '황해' 봤느냐, 거기 '면가'로 등장하는 배우다. 깜짝 놀라더라는 거죠. 그래서 여기 '미성년'에 출연도 했다 말하니, 누구냐고 묻더래요. 남편 권대원이다 하니 또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 듣고 감독 크레딧을 뒤로 빼야겠다 했죠. (웃음)"

김윤석이 연출했다는 사전 정보 없이 '미성년'을 봤을 때 영화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감독을 여성이라고 단정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지만 '신인인가?' 궁금증이 돋았다는 대목에도 귀가 쫑긋했다. 신인 그 이상의 무엇을 본 것이리라. 족발이 칼보다 무섭게 보이게 만들었던 면 씨 사내가 우유부단의 극치 권대원과 동일 배우라는 사실이 주는 재미도 만만찮았을 것. 

 

▲ 김윤석 [쇼박스 제공]


감독 김윤석은 기회가 될 때마다 배우들을 극찬한다. 배우들도 "너무나 자상한 감독이었다" "첫 작품에 출연하게 돼 영광이다" "배우로서 성장하는 기회였다"고 입을 모은다. 카리스마 김윤석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장면들이다.

"염정아 씨는 굉장히 소탈해요. 절제력이 있는 분이고요. 제가 좋아하는 건데 (부럽다는 듯) 유연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어요, 수위에 맞는. 그리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에요. 배려심이나 존중심을 가지고 프라이드를 지키는 사람. 그것이 영주의 모습과 닮아 있어요. 영화 '오래된 정원'의 윤희를 보며 느꼈죠. 자유롭지만 자존감이 높아서 소중한 것을 위해 몸을 다 던질 수 있는 사람. 윤희가 나이 들어 결혼했는데 남편이 외도를 한다면…이라는 상상이 '미성년'이 된 거죠. 영주는 남편의 외도를 자신의 실패로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 면이 배우 염정아와 어울려요. 저 또한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캐스팅 제안을 드린 거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흔쾌히 출연해 주셨어요."

"소진 씨는 안에 소녀가 있어요. 김소진이 웃으면 다 무장해제가 돼요. 웃음이 너무 천진난만해요. 그러나 자기 고집도 세고요. 정말 연극할 때 보면 빈틈없이 연기해요, 정확한 딕션(발음)으로. 연극무대에서 더 빛이 나는 배우죠. 영주 못지않은 꾸미지 않은 매력이 있어야 했어요. 소진 씨가 제격이죠."

"저는 두 사람이 만나기만 하는 장면만 만들어 주면 됐어요, 연출이 필요 없었어요. 두 사람 공통점이 있는데 딕션이 정확해요. 두 사람이 함께하면 굉장하게 되겠다 싶었죠, 너무나 달라서 더욱요. 저는 아주 신나게 보고 있었어요, 현장에서."

 

▲ 영화 '미성년' 촬영 현장 [쇼박스 제공]


배우들 칭찬만 하는 그에게 배우들이 감탄해 마지않은 연기 디렉팅을 전하며, '감독 김윤석'의 몫도 어서 들려주라고 압박했다. 멋쩍어하며 답을 한다.

"그 분들이 딱 두 번 만나잖아요. 제가 또 배우잖아요. 편안하게 해 주지만 '사각의 링'에 들어가게 구성을 해놨잖아요. 시나리오 읽었을 때 본인들도 알았을 것이고 촬영할 때는 더더욱. 저는 그렇게 사각의 링만 만들어 두 배우를 무대 위로 올린 거예요."

"(두 번 가운데) 특히나 병실 장면 같은 경우, 저런 만남과 장소만 제공이 되면 우리 배우들이 얼마나 뛰어난 연기자들인지 보여 줄 수 있겠다, 자신했죠. 외국영화들에서 많이 보잖아요. '캐롤'이나 '블루자스민' 등에서 취조할 때 보면 정말 잘하거든요. 상황 설명에 시간 뺏기고, 중요한 거 보여줄 시간 뺏기고, 초점 빗나가 있고, 이렇지 않잖아요. 우리는 타이트한 얼굴 표정이 이 영화의 무기였어요. 베스트 신이에요. 그 다음이 미희와 대원의 통화. 영주의 고백성사는 타이트한 클로즈업의 롱테이크인데 이 영화의 집중, 무엇을 보여 주고자 했는가를 말로 설명하지 않고 신으로 보여 주죠. 미학이라고 하면 미학을 담은 장면입니다."

영화로 봐야 제 맛이다. 염정아와 김소진의 불꽃 튀는 만남, 김소진과 김윤석의 통화, 그리고 염정아의 고백성사. 대원의 통화 대사와 영주의 고백성사는 김윤석이 썼다. 영화 초반 "엄마 어디 갔어?" 딸이 물으면, 아빠가 "성당 갔어" 복선을 미리 깔았다. 영주가 말한다, "제 딸이 고3인데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보다 참담할 수는 없다. 영주가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이 고백성사에서 드러난다. "(미희에게 닥친 불행이) 하나님이 내린 천벌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기도. 그 다음 세상을 덮는 흰 눈이 온다. 

 

▲ 김윤석 [쇼박스 제공]

영화 '미성년'의 가장 큰 장점은 관객을 두고 영화 혼자 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 나를 '미성년호'에 태운다. 감독 김윤석이 주는 장면에 대한 힌트들을 내가 알아채고 감독 김윤석이 심어놓은 웃음의 포인트를 내가 찾아내는 방식으로 관객을 참여시킨다. 일단 '미성년호' 배에 올라타면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 웃기 시작하면 웃음을 참기 힘들 듯 웃음보가 터져버린다. 즐거운 경험이다.

"관객 분들을 빠른 시간 내에 태우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발견의 기쁨, 함께하는 기쁨을 같이 느끼고 싶어서요. 계속 참여하게 하는 게 중요했어요. 사건 딱 하나 가지고 가잖아요,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처한 사람들에 집중하는 얘기니까요."

"저는 제가 신인감독이다, 라는 걸 잘 알아요. 신인감독이잖아요. 신인감독이기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가 뛰어나는 평가는 욕심이죠. 색깔이 뚜렷하다, 개성이 뚜렷하다, 라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사람을 다루고 드라마를 다루는 방식이 뚜렷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평범한 이야기와 사람, 너무 흔해서 놓쳤던 것에서 얘기를 찾고 싶어요. 신발이 왜 저렇게 자꾸 나오지? 이거 하나로 가볼게! 물론 실패할 수도 있어요. 저의 장점과 단점이 다 드러날지언정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못 만들었다는 얘기를 용기 있게 들어야겠다"는 패기로 감독 출사표를 던졌다는 김윤석.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미성년'에 평단이 아닌 관객이 주는 평가가 듣고 싶다. 직접 확인해 주려는 관객들의 발길과 눈길이 소중하다.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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