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대차대조표·금리 안정·시장 개입 최소화'는 동시에 불가능한가
AI 생산성 효과와 대차대조표 축소는 이론 아닌 현실 통찰력의 문제
인공지능(AI) 기반 생산성 혁명이 통화정책의 새 지평을 열 것인가. 차기 미국 중앙은행 총재 케빈 워시는 그렇다고 본다. AI가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가져오며 나아가 상당한 디플레이션 요인이 될 것이므로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동시에 워시는 지나온 위기 대응 과정에서 비대해진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해왔다. 대차대조표 축소란 중앙은행이 보유한 국채·주택저당증권(MBS) 등 자산을 매각해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고 중앙은행의 시장 영향력을 축소하는 정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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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발 디플레이션과 금리 인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담은 이미지(왼쪽)와 차기 미국 중앙은행 총재 케빈 워시. [챗GPT 생성] |
저금리와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축소, 표면적으로는 성장 친화적이면서도 시장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구상이다. 관건은 이론이 아니라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라는 중앙은행 조직이 축적해온 지적 자산과 경험(institutional memory)을 어떻게 활용하여 이끄는가와 이를 실제 정책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에 있다.
교과서적 거시경제 이론은 생산성 향상이 오히려 실질 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주로 투자와 저축 경로를 통해 발생한다. 첫째, 기업들은 수익 증가를 예상하여 투자를 늘린다. 이는 대출 수요를 늘려 금리를 상승시킨다. 둘째, 가계는 임금 인상을 예상하여 저축을 줄인다. 저축률 감소는 경제 내 대출 가능 자금 공급을 줄여 금리 상승을 부추긴다. 지난달 AI와 생산성에 관한 연설에서 마이클 바 연준 이사는 이러한 요인들이 경제의 균형 상태에서 정책금리를 인상해야 함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필립 제퍼슨 연준 부의장도 최근 몇 주 동안 이러한 교과서적인 견해를 되풀이했다.
일단 워시는 교과서 이론을 주장하는 일부 동료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AI로 인한 생산성 붐이 진행 중이라는 워시의 확신에 동의하더라도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생산성 증가율이 높아지는 세계에서 실질 금리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워시가 금리를 인하하고 싶다면 그리 녹록한 내부 여건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 결정을 지속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된다. 워시는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 시절인 1990년대의 생산성 급증을 예로 들며 데이터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 데이터를 보는 것은 과거에만 집중하는 것이며 인플레이션 없이 더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실제로는 데이터에 매우 의존적이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 따르면 그는 1996년 생산성 증가율이 잘못 측정되고 있다고 지적했을 때 상세한 부문별 수치에 의존했다. 그린스펀은 데이터를 분석하며 동료들을 설득했다. 그린스펀의 남다른 능력은 연준 내부에 축적된 분석력을 토대로 올바른 성찰을 이끄는 역량이었다. AI의 생산성 효과는 아직 측정조차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술 낙관론이 맞는지 과잉 기대인지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그린스펀이 그랬듯이 대전환기의 불확실성 속에서 정책 성공의 관건은 교과서적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 통찰력이며 조직의 지적 자산과 경험을 이끄는 역량이다.
워시는 또한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를 원한다. 연준의 비대해진 대차대조표가 금융 왜곡과 경제적 각인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중앙은행의 반복적 개입이 시장의 자생적 조정 능력을 약화시켰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대차대조표 축소가 수반할 수 있는 딜레마다. 전통적으로 알려진 삼중 딜레마(dilemma)는 고정 환율, 자유로운 자본 이동, 독립적인 통화정책 모두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불가능한 삼위일체(impossible trinity)라고도 불린다. 연준 이코노미스트 버쿠 듀이건-범프와 제이 칸은 올해 1월 발표한 논문에서 새로운 삼중 딜레마를 제시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중앙은행은 소규모 대차대조표(small balance sheet), 안정적인 단기 금리 유지(low volatility of short-term rates), 제한적인 시장 개입(limited market intervention)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워시는 미국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가 다양한 위기 대응 프로그램으로 인해 지나치게 부풀어 올랐다는 견해를 고수해 왔으며 이러한 상황이 경제 및 금융 왜곡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워시는 1년 전 연설에서 면역학자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체계의 반응이 이후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반응을 저해할 수 있는 현상을 면역학적 각인이라고 설명한다며 경제적 각인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전의 정책 선택이 경제를 충격에 더 취약하게 만들고 유기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준이 시장에 개입할 때마다 규모와 범위가 더욱 확대되어 부채가 누적되고 자원이 잘못 배분되며 연준은 이후 더 공격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 정책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듀이건-범프와 칸이 제시한 삼중 딜레마는 워시가 대차대조표 규모를 축소할 수는 있으나 이는 중앙은행의 개입 빈도 증가 또는 훨씬 더 심각한 금융시장 변동성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금융시장 변동성 부족과 중앙은행 안전장치가 금융 레버리지 증가를 부추겨 금융지배(financial dominance) 국면에 이르게 된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간헐적인 시장 변동성은 불편하면서도 전체 금융 시스템에는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마치 통제된 불이 산림 생태계를 적절히 재생하며 통제 불가능하고 위험한 대형 산불 위험을 완화하는 것과도 같다. 칸과 듀이건-범프의 연구가 말하듯이 대차대조표 이슈에 관한 컨센서스는 없으며 현실에서 쉬운 선택지는 없다. 대차대조표 규모가 커지면 금리 안정성이 높아지고 개입 필요성이 줄어드나 중앙은행의 구조적 영향력은 확대된다. 반대로 대차대조표 규모가 작아지면 영향력은 제한되지만 보다 적극적인 유동성 관리가 필요하거나 금리 변동성이 커진다.
워시 차기 연준 의장이 직면한 진정한 시험대는 지금부터다. AI 생산성 낙관론이 맞는지 대차대조표 축소가 필요한지는 단일한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앙은행의 힘은 개인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항해자로서의 중앙은행이 오랜 기간 축적해온 정책의 성공과 실패의 기억까지를 담은 조직의 지적 자산과 경험에서 나온다. 이를 통찰력 있게 살피며 이끄는 능력이 우리 시대 각국 중앙은행 총재 리더십의 본질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러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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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저서: 우리 시대의 금융경제 읽기(박영사, 2025년) △ 2025년~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법무대학원 교수,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KPI뉴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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