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친정엄마랑' 속 할머니, 알고 보면 남자
나몰라패밀리 기획‧제작 감동코미디 포항서 공연
후배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또 다른 남자, 서경석

이 사람의 직업을 무엇이라 해야 할까. SBS 공채 개그맨으로 시작해 전국 어느 무대건 해외 길거리건 개그를 할 수 있는 데라면 어느 곳이든 달려가며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다 결국 아내를 위해 중국집에서 일했던 남자. 지금은 대학로 연극무대에 선다. 명실공히 주연배우다.
그래도 여전히 개그맨, 아니 뼛속부터 개그맨이라 부르고 싶은 김용현을 처음 만난 건 지난 11월14일 채널A의 아침을 여는 종합정보프로그램 '김현욱의 굿모닝'에서였다. 요즘 핫쇼 공연으로 대학로를 꽉 잡고 있는 나몰라 패밀리(개그맨 김경욱, 김태환, 고장환)가 출연했던 날이다. 한창 재미있는 토크와 댄스가 어우러진 노래도 곁들여졌던 때, 한 할머니가 무대에 난입했다. 몸매며 표정이며 목소리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까지, 그냥 할매였다.
알고 보니 할머니의 정체는 놀랍게도 남자. 나몰라 패밀리의 후배로 매일 저녁 대학로를 뜨겁게 달구는 핫쇼 전에 공연되는 '친정엄마랑'에서 할머니를 연기하는 배우라고 했다. 그때까지는 연극배우라 생각했고, '친정엄마랑' 역시 본공연 전에 분위기를 띄우는 사전무대 정도로 생각했고, 주인공 친정엄마의 엄마쯤 되는 할머니 역의 배우인가 보다 싶었다.

부쩍 추워진 날씨를 뚫고 대학로를 찾았던 날, 찬바람을 잊게 하는 몇 가지 놀라움과 감동을 맛봤다. 먼저 '친정엄마랑'은 사전무대가 아니라 90분짜리 정식 공연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딸 유영이의 엄마였다. 친구들이 엄마인 줄 모르고 "너네 할머니니?"라고 묻는 그런 외모의 엄마.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건 웃기기만 하는 개그 공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SBS 공채 8기 출신의 남자개그맨 김용현이 친정엄마를 연기하고, 12기 최백선이 남편부터 사위, 사돈마님에 이르는 1인 7역의 멀티맨을 맡았는데, 정석 연기를 한다. 김용현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남자인 줄 모를 만큼 천연덕스러운 할머니 연기로 때로 웃음, 때로 눈물을 자아내고, 최백선은 진지하게 남녀노소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중심에 딸 역의 이유영 배우가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코미디극에 정극 연기의 무게감을 드리웠다. 세 사람다 어쩜 그리 연기도 노래도 잘하는지, 3인의 앙상블 속에 '친정엄마랑'은 표 값이 아깝지 않는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친정엄마랑'에는 도망간 배꼽을 찾아야 할 만큼, 허리가 아플 만큼 웃어야 하는 장면과 '나 이렇게 웃다가 울어도 돼?' 싶을 만큼 눈물 나는 장면이 있다. 눈물 대목은 스포일러라 감춰 두고, 배꼽 빼는 장면만 힌트를 드리자면 지난 2008년 웃찾사에서 황영조, 현병수와 함께 김용현이 선보여 당시 꽤나 인기를 끌었던 '건강택시' 코너가 옮겨졌다. 10년이 흘러서일까, 장은 제대로 맛이 들어 10대부터 50대까지 허리를 꺾어가며 웃는다.

연극이 끝난 뒤 친정엄마 김용현을 만났다. 먼저 한 명의 관객으로서 좋은 연극과 연기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직업은 어쩔 수 없어서 궁금한 점부터 해소했다. 예전 두 사람은 없는데 '건강택시' 코너 아이디어를 써도 되나요?
"황영조, 현병수 두 분께 가장 먼저 연락을 드렸어요, 흔쾌히 아이디어 사용을 허락해 주셨고요. 현재 병수 형은 MBC '뽀뽀뽀 모두야 놀자'의 메인 MC를 맡고 계시고, 영조는 두바이에서 여행 인솔자를 하고 있어요. 저보다 다 상황이 좋아서(웃음) 기분 좋게 허락해 주신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김용현의 당시 상황은 어땠길래, 개그맨 형과 친구가 응원을 보낸 걸까.
"지난겨울까지 서경석 선배가 운영하시는 중식집에서 매장 관리부터 주방 보조일까지 하고 있었어요. 2010년부터 웃찾사에서는 제 자리를 만들기 어려웠고 개그맨 오경주, 이광득과 황영조, 저까지 4명이 의기투합해 '4륜구동' 팀을 만들어 전국을 돌며 개그 공연을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어요. 오경주, 황영조와 함께 셋이 결과적으로는 유럽여행이라 해야 할 유럽 버스킹을 시도했지만 뾰족한 결과를 얻진 못 했고요. 그때부터 각자 나이에 맞게 상황에 맞게 가장 노릇을 해야 하다 보니 젊은 혈기를 주머니에 깊숙이 넣어둔 채 해산했지요. 그게 2015년 즈음이에요."
"사실 4륜구동 전국 투어 떠나기 전에도 서경석 선배께서 당시 선배가 운영하시던 스크린골프장에 와서 사무 보면서 아이디어 짜라고, 재기할 때까지 도와주시겠다고 말씀을 주셨어요. 그때는 아직은 더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만 받았었는데, 동고동락해 온 개그팀이 흩어지고 나니 다시 선배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 당시엔 중식점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본부장 자리를 제안해 주시더라고요. 한 가정을 책임지자면 심부름만 해서는 힘든 상황인 걸 생각하신 거죠. 근데 본부장이라는 게 그냥 폼 잡고 있는 자리는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매장관리부터 인력관리, 사람이 빌 때는 그 자리도 대신 메워야죠. 특히 주방에 자리가 빌 때 차질 없는 게 제일 중요하다 싶었어요. 그때부터 조리사 자격증 따고 중식점 주방장 보조로 들어가 불요리 배우고 저 역시 준비했죠. 그렇게 영원히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김용현의 지나온 이야기를 넋을 놓고 계속 들었다. 큰 성공이 아니라 해도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순간도 멋있고,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세월도 멋지다.

"평안한 나날의 어느 날, 고장환 선배가 연락을 줬어요. 형, 나몰라 패밀리에서 연극을 기획하는데 형이 하면 잘할 것 같아. 아, 안주머니에 꽁꽁 숨겨두었던 열정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몇날 며칠을 고민하다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했죠. 그런데 아내가 '오빠가 원하던 일이잖아. 오빠는 아니라고 해도 다 느끼고 있었어. 오빠는 무대에 설 때 가장 빛나. 나도 벌고 있잖아. 걱정 말고 도전해 봐!' 말해 주는데. 아내랑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한 고비는 넘었는데, 경석 선배님께 입이 떨어지질 않는 거예요. 저 힘들 때마다 손을 내밀어 주셨는데 저 하고 싶은 것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려니 정말 죽겠는 거예요. 그런데 너무 대단하신 분인 게 공연 시간 전까진 일하면서 도전해 보는 건 어떠냐고 말씀 주시는 거예요. 가장 노릇 계속하라는 말씀이시고 혹여나 도전이 실패할 때를 대비해 제게 기회를 열어 주시는 말씀인 거죠. 기왕 해보는 일, 전심전력투구 하겠다고 사양 아닌 사양을 하고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너무 감사해서요."
그렇게 힘겨운 고비를 넘어 다시 찾은 무대. 서경석에 이어 김용현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는 선배들 나몰라 패밀리. 어찌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있겠나. 나몰라 패밀리 선배들과 아이디어 짜고 극본 만들어서 배우들과 합을 맞추며 연습, 드디어 무대에 올렸다. 서울 공연은 지난달 30일로 막을 내렸고 이번엔 포항으로 무대를 옮겨 오는 14일부터 새해 1월6일까지 관객을 맞는다.
포항에선 1인 7역 멀티맨 역을 SBS 14기 개그맨 양종인이 맡는다. 서울 공연에서도 최백선과 더블 캐스팅이었고, 김용현의 말로는 양종인의 연기엔 웃음 포인트가 많은 게 장점이다. 특히 사돈마님 역할 때 관객들이 크게 웃는다는 귀띔.

인터뷰를 마치며 다시 한 번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그저 가볍게 웃기는 공연이 아니라 진한 감동까지 주는 연극이라고 관람 소감을 전하니 진짜냐고 되묻고 되물으며 연신 감사하단다. 감사한 건 이쪽인데. 마지막으로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장면이 가장 좋은지 물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경상도 사투리를 제다로 알지 못해 그대로 옮길 순 없지만 김용현의 살가운 말투를 독자께 전하고 싶어 적는다.
"공연 다 끝나고 포토타임 갖잖아예. 한 분 한 분이 오시믄서 진짜 친정엄마 만난 거 맹키로 동네 아지매 만난 거 맹키로 손을 꼭 잡으믄서 연극 재밌었다꼬, 엄마한테 지금 전화 드릴라 한다고, 엄마랑 다시 보러 오겠다고 할 때 그때가 제일 좋십니다. 진짜 숨이 턱 찰 때까지 연기하거든예, 힘을 하나또 남기지 않아예. 근데 그 잡아 주시는 손에서 힘을 받아예. 다시 충전~되는 거지예. 그 힘으로 다음날 공연을 다시 준비합니다."
오는 14일 무대를 여는 '친정엄마랑'의 포항 공연. 포항은 김용현에게 각별한 곳이다, 바로 고향이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곳에서 아들 어깨 한 번 쫙 펼 수 있을 만큼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기를 희망한다.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