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바이오 지식재산(IP) 주권이 위험하다

KPI뉴스 / 2025-09-04 11:08:02

중국이 우리나라 국민의 유전체 정보를 정밀 분석해 자국의 바이오 정보 자산으로 편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유전체(genome)란 생명체가 가진 유전 정보의 총합으로, 쉽게 말해 '생명의 설계도'에 해당한다. 사람의 세포 안에는 데옥시리보핵산(DNA)라는 긴 실처럼 생긴 분자가 있는데 여기에는 키, 눈 색깔, 혈액형, 심지어 성격까지 결정하는 정보들이 들어 있다. 바로 이 DNA에 담긴 모든 유전 정보의 모음을 유전체라 부른다. 과학자들은 특정 유전체의 분석을 통해 개인 간 식별뿐 아니라 질병에 걸릴 위험, 약물에 대한 반응 등 민감한 건강 정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보건 안보 측면에서 섬세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

  

▲ 바이오 지식재산 관련 이미지 [챗GPT 생성]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세계 5위의 유전체 정보 분석업체 '노보진'은 최근 한국에 노보진 코리아 지사를 설립하고, 한국인의 질병 위험성 등 생체 정보를 파악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노보진 한국 지사는 우리나라에 분석에 필요한 설비 등 일체의 물적 장비를 자체 보유하지 않아 자칫 한국인의 바이오 데이터가 우리나라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유출될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우려된다.

만약 한국인의 고유한 생체 정보가 해외의 유력 바이오기업으로 흘러나갈 경우, 코로나19 사태 같은 대규모 보건위기가 터졌을 때 백신 등 국민의 생명을 지킬 치료수단을 글로벌 빅파머의 독점적 공급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의료 종속국'으로 전락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한마디로 보건복지 주권을 지키는 바이오 독립국은 물 건너간다는 얘기다. 인공지능(AI) 주권을 지키는 '소버린(sovreign) AI'가 현재 세대의 임무라면, 바이오 지식재산(IP) 주권 수호는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책임지는 차세대 과업이라 할 수 있다.

지난 6월 전액출자 방식으로 서울에 설립된 노보진 코리아는 우리나라 병원과 연구소를 대상으로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서비스 업무의 20~30% 할인 공세에 나서며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다. 국내의 유사업체 관계자는 "노보진 코리아는 국내 영업·마케팅만 담당할 뿐, 유전체 분석은 중국 본사에서 한다"며 "우리나라 국민들의 소중한 바이오 정보가 중국으로 통째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모순의 배후에는 국내업체를 역(逆)차별하는 당국의 제도적인 맹점이 자리 잡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전체 분석 기업은 의료기관을 통한 위탁 분석만 허용되고, 소비자 직접 의뢰(DTC) 유전자 검사의 경우 피부·비만 등 일부 항목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반면 해외기업은 자회사를 경유하는 우회적 방식으로 직접 소비자와 접촉하고, 유전정보를 수집해 해외에서 분석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당국에서 이 같은 모순을 조기에 포착하고 제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면서 "단순히 국내산업 보호를 넘어 국민의 생체정보 주권을 지킨다는 의식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21세기 AI 시대는 데이터가 가장 귀중한 자원이다. 만약 국내 데이터 자원이 해외기업에 의해 수집돼 독점적인 응용 서비스 사업으로 역수출된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인구 규모가 큰 대국은 자국민에서 비롯된 데이터를 영토 내 서버에만 저장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해외 클라우드로 데이터가 유출되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국가 데이터 주권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실시하고 있는 자국 보호무역과는 차원이 다르다. 관세를 무기로 해외의 수출기업에게 미국 내 일자리 창출 지사를 설립토록 강제하는 보호무역은 힘을 앞세운 폐쇄주의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 주권은 우리가 글로벌 오픈소스 진영에 동참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할 기본권이자 디지털경제의 토대이다. 자칫 바이오 IP 주권을 기술 민족주의와 혼동할 우려가 있다. 기술 민족주의는 한나라의 국경을 넘나드는 과학기술의 특성을 무시하고 폐쇄적인 국산 기술만을 강조하는 풍조를 말한다. 과거 독일이나 일본의 권위주의 정부 시절, '순수한' 기술을 강조한 나머지 갈라파고스 고립에 빠진 아픈 경험이 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의 국제적 협력에는 손을 벌리고 과감하게 접근하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헌법적 가치에는 칼같이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생체 정보는 특히 국민의 생명과 밀접한 핵심 자산이란 점에서 해외로의 유출은 막고, 고유의 기술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공무원에게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 노성열 논설위원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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