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절부터 인공지능(AI) 시대에 이르기까지, 테크 기업은 디지털 세상에 한번 발을 들여놓은 소비자가 접속을 끊고 나갈 수 없도록 중독적(addictive) 기술을 도입해왔다. 이는 얼마나 많은 고객이 서비스를 사용하느냐 하는 머릿수도 망(網) 크기 측정에서 핵심 지표이지만, '체류시간(Time on Service)'이야말로 이용자 충성도의 가장 큰 가늠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테크 기업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인 광고비를 광고주와 협상할 때 체류시간은 맨 처음 살펴보는 항목이었다. 테크 기업 퇴사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용자가 플랫폼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온갖 육체적, 심리학적 유혹 전략을 총동원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중독 기술이 '초월 신경증'과 '아첨 의존증'이다.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마비시키는 디지털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마음 단련에 힘써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자존을 지켜야한다. 양대 디지털 중독인 초월 신경증과 아첨 중독증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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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세상과 초월 신경증, 아첨 의존증 관련 이미지. [챗GPT 생성] |
1990년대 인터넷이 대중화하면서 웹브라우저를 통해 사이버 월드로 들어온 초창기 디지털 유목민은 끝없이 펼쳐지는 광대한 가상세계에 넋을 잃고 방랑을 멈추지 못했다. 한 고개를 넘고 나면 또 다른 풍경이, 이 페이지에서 다른 페이지로 장을 새로 펼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보의 바다가 무한히 이어졌다. 검색을 하든 게임에 빠지든 네티즌은 읽고, 채팅하고, 넥스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며 밤을 꼴딱 새기 일쑤였다.
무한우주의 아득한 공간에서 내 위치를 잃어버린 채 어지럼증에 시달리는 현상이 바로 '초월 신경증'이다.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hypertext)에 초월(hyper)이란 명칭이 붙은 이유다. 도서관을 채우고 있는 종이책과 달리, 디지털 텍스트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서가를 돌아다니며 내게 필요한 책을 골라 읽는 좌표 찾기도 인터넷 공간에서는 무력하다. 디지털 도서관이 얼마나 큰지, 내가 도서관 어디쯤 있는지, 몇 번째 서가에서 찾는 책을 발견할지 당최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 용어를 만든 아티스트 김홍식에 따르면 사이버 스페이스 안에서 인간은 모든 정보를 내 마음대로 통제·소비할 수 있다는 '초월 감각'에 빠진다. 저자는 초월 감각으로 인한 전지적(全知的) 착각, 혹은 반대로 초월 감각이 모든 것을 진정으로 통제할 수 없음을 순간순간 느끼면서 경험하는 불능적(不能的) 좌절, 그리고 무한히 반복되는 착각과 좌절의 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초월 신경증으로 명명했다.
초월이란 새 경험은 인간에게 두 가지 영향을 미쳤다. 자신이 신이 된 듯, 과도한 자신감이 그 첫째다. 디지털 과대 망상증에 걸리게 만드는 것이다. 알고 싶은 지식은 다 알 수 있다, 나는 모르는 게 없다는 오만에 휘감긴다. 그 결과, 사이비 전문가들이 난무한다. 여기에 음모론까지 가세하면 전통적인 전문가 집단을 프레임에 포획된 편향 지식의 앞잡이로 싸잡아 비난하는 불신 지옥에 빠진다. 이게 디지털 세상의 확증편향 효과이다.
개인이 나만의 더 작은 우물 속으로 파고들면서 개구리 소리만 연못에 가득해진다.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나 홀로 사회로 파편화된다. 외로운 개인은 끼리끼리 뭉치며 팬덤을 형성함으로써 패거리 소속감에 안도를 느끼려 한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패거리 간의 분열로 공동체는 양극화한다.
가상공간에서는 스스로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는 한편, 현실에선 아무것도 되는 게 없는 못난이로 자각하는 순간 좌절이 생긴다. SNS의 화려한 소셜 셀럽과의 비교우위 경쟁과 포모(FOMO) 공포로 우울증에 빠진다. 자포자기하며 수동적 삶을 영위하는 인구가 늘수록 공동체의 통합성은 저하한다.
초월의 두 번째 영향은 판단력을 상실한 채 멍 때리기로 무력화하는 현상이다. 디지털 콘텐츠는 인간의 주의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현란한 색채와 사운드, 빠른 이미지 전환을 특징으로 한다. 15초, 30초짜리 광고 CF나 댄스 클럽처럼 제정신을 못 차리게 강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기법이다. 그러면 뇌가 과잉정보 처리의 과부하에 걸려 마비 상태가 된다. 멍하게 만드는 것이다. 판단력이 흐려진 식물 뇌로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무한 체류의 디지털 감옥에 갇힌다. 자기 발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독재자가 가장 좋아하는 양순한 우중(愚衆)으로 변하는 것이다.
과거 히틀러, 스탈린 같은 폭군들이 화려한 의식과 압도적인 선전으로 군중을 세뇌시켜 사지(死地)로 몰고 가던 수법이다. 의도적인 사상 주입을 자체적으로 해독하는 문해력과 탄탄한 비판 정신 없이는 그저 마케팅과 통치의 수단으로 휘둘리기 십상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아첨 중독증과 이를 벗어나는 방안에 대해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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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을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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