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타협의 시간이 왔다

류순열 기자 / 2018-12-10 14:33:43
일자리 감소는 최저임금 인상만이 아니라 고령화, 4차산업혁명 여파
일찍이 유럽선진국은 대타협 지혜로 위기 극복
한국경제, 대타협 기회 놓치면 모두 역사의 패자될 것
▲ 류순열 경제 에디터
택시기사들은 요즘 잔뜩 화가 나 있다. 출퇴근길에 그들의 성난 목소리를 듣게 된다. "택시기사들 다 등 돌렸어요.", "다시는 문재인 안찍을 겁니다."…. 묻지 않았는데도 험구를 쏟아낸다.


화근은 카풀(승차공유)이다. "택시 죽이는 카풀을 몰아내자.", "카풀삭제법을 처리하라." 성난 그들의 목소리는 광화문 광장에서, 국회앞에서 날선 구호로 울려퍼진다. 카풀은 그들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이다. 성난 그들 앞에서 정치인이 맞장구친다. "카카오 카풀이 택시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상황인데 문재인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고.

 

생존을 위한 그들의 외침은 정당하다. 표심을 좇는 정치인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번지수를 잘못짚었다. 저항한다고 되돌릴 수 있는 흐름인가. 카풀은 시작일 뿐이다. 작금 진행 중인 4차산업혁명은 산업현장 곳곳에서 수많은 일자리를 없앨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얻기 위해 치러야할 '산통'이다.


인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산업혁명의 과정은 언제나 고통스러웠다. 그 거대한 흐름에 역행하려는 시도 또한 늘 실패했다. 1차 산업혁명기인 18세기말 노동자들은 공장에 침입해 직물기계를 부쉈다. 이른바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다. 증기선이 출항했을 때는 뱃사공 길드가 배에 올라 난동을 부렸다.


그렇게 신기술에 대한 저항 운동은 꾸준히 일어났지만 문명의 진보를 막지는 못했다. 특정 이해집단의 기득권을 보호하자고 보편적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4차산업혁명도 인류를 놀라운 신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미국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한계비용 제로사회」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거의 무료로 나누는 경제의 시대로 인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퇴조와 '협력적 공유사회'의 도래를 예견한 것이다. 카풀도 그런 흐름의 한 조각이다.


일자리 증발이 경제주체들에게 위협인 것은 분명하다. 당장 3분기 저소득층의 소득감소는 일자리 감소에서 비롯됐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만이 아니다. 인구고령화, 산업혁명에 따른 구조적 변화는 보다 근본적이다.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하고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해법일 수는 없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박살내자"는 시대착오적 선동도 마찬가지다.


해결의 실마리는 양보와 타협이다. '광주형 일자리'에 희망을 거는 이유다. 노·사·민·정 합의로 노동자 임금을 줄이는 대신 주택·교육·의료를 지원해 실질임금을 높여 주는 정책. 일찍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스위스 같은 유럽 선진국이 가르쳐준 지혜다. 이들 나라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극심한 노사갈등에 시달렸다.


이들을 구한 건 대타협이다. 자본가와 노동자는 대결구도의 이분법을 버렸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공동체가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에서 서로 통큰 양보를 했다. 노조가 임금인상, 극한투쟁을 자제하는 대신 정부는 세금을 더 거둬 복지를 강화했다. 대결로 치닫는 이분법 사회에서 양보를 바탕으로 한 대타협 사회로 전환한 것이다.


이제 한국경제도 대타협의 시간을 맞았다. 타이밍을 놓친다면? 모두 역사의 패자가 될 것이다.

 

KPI뉴스 / 류순열 경제 에디터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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