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바하'의 매력, '곡성' '검은 사제들'에 비추어 보니

홍종선 / 2019-02-27 11:55:19
'검은 사제들' 장재현 감독이 선보인 새로운 색채의 구마영화
이정재, 26년차 '연기의 결' 톡톡…'사바하' 속에서 등불 역할
괴물 박정민+진선균‧정진영‧이다윗‧이재인‧오윤홍 등 호연 빛나
▲ '영화'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화의 정석을 따라 만들어진 '사바하'. 영화 '사바하'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오랜만에 영화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화를 봤다. 재미있는 영화는 많고 가끔 진정성 있는 영화를 만나 고맙기도 하지만, 제작부터 배급까지 단번에 쭉 뽑아지는 가래떡 같은 영화들이 많은 상황에서 한 올 한 올 실을 뽑고 그 실들을 씨실 날실 삼아 천을 직조하듯 영화의 정석을 따라 만들어진 영화를 보니 기뻤다. 특별히 전문적 지식이 없어도 영화를 보는 순간 누구라도 느낄 수 있게 한 켜 한 켜 정성을 담아 재료들을 쌓고 장작을 넣었다 뺐다 불 조절 해가며 쪄낸 시루떡처럼 차진,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 제작 ㈜외유내강·케이필름,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 딱 1주일이 됐다. 필자가 영화를 본 날로부터는 9일. 이렇게 만족스럽게 영화적인 영화를 얼른 소개하지 못 하고 시간을 보냈다. 개인적으로 대게 후기는 원 작품의 매무새를 따라간다. 쉽고 재미있는 영화는 글도 수이 써지고 난삽한 영화는 글도 어지럽다. 잘 만든 영화를 보고 나면 겁부터 난다. 이 영화에 대해 과연 내가 제대로 예비 관객 분들께 전할 수 있을까. 영화만큼은 아녀도 그 100분의 1이라도 잘 써야 하기에, 글의 천을 잘 짜야 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 잘 쓰고 싶고, 내가 느낀 영화의 진정성을 오롯이 관객께 전해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서다.

오늘도 잘 쓸 자신이 생겨서 글을 시작하진 못했다. 개봉일로부터 7일이 지났는데 이 영화가 가진 내공과 매력에 비해 관객의 선택을 덜 받았다는 생각에, 더 이상 미룰 명분이 스스로에게 없어 일단 컴퓨터를 열었다. 때로 글에는 발이 달려 내 생각보다 잘 달린다, 엉뚱한 데로만 가지 않도록 고삐를 잘 잡고 함께 달려 볼까.
 

▲ 사이비종교를 소재로 삼아 보다 친숙하면서 신선하다는 점이 영화의 매력이다. 영화 '사바하'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바하'의 가장 큰 매력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익숙하면서 신선하다는 점이다. 가족이 가족을 죽일 만큼 무섭도록 타락한 세상에 도대체 신은 어디 계신지 묻는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 악귀를 숨기기보다 내쫓아 도리어 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구마행위를 보여준 '검은 사제들'('사바하' 감독 장재현의 전작)처럼 종교적 색채를 지녔는데 접근 대상과 방식이 다르다.

'곡성'은 특정 종교를 배경에 깔기보다는 종교의 원형이라 할 인간을 살피는 선한 하느님과 인간의 약한 마음을 파고드는 사악한 사탄의 대결을 보여 주었다. 섣불리 누구의 승리로 끝내기보다 현실 그대로, 잔혹한 세상에서 인간인 우리가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진지하게 던졌다. '검은 사제들'은 천주교를 배경으로, 정통성을 중시하며 악귀를 존재를 감추려는 쪽과 이단으로 몰리면서도 악귀의 존재를 인정하고 파멸시키려는 사제들 얘기를 다뤘다. 영화 속에서 어둠의 사제들은 사술을 부리는 사탄의 제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사탄을 물리치는 구도자들로 그려졌다. '곡성'은 688만명, '검은 사제들'은 544만명의 사랑을 받았다.

'사바하'는 좀 더 친숙하다. '곡성'처럼 무섭지 않고 '검은 사제들'처럼 무겁지도 않다. 오래도록 우리 역사에 있어 온 불교를 바탕으로, 호시탐탐 우리 곁을 파고드는 사이비종교를 주요 소재로 삼아 보다 쉽게 영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또 진중한 종교적 탐구를 목적에 두기보다는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이유와 살인자를 추적해 가는 프로파일링 방식을 종교적 배경과 교리에서 차용, 영화적으로 풀어냈다. 덕분에 연쇄살인을 다룬 여느 영화보다 훨씬 더 입체적 인물들(살인자, 조력자, 추적자)이 탄생했고 촘촘한 이야기 구조와 쫀득한 스릴이 신선함 속에서 펼쳐졌다.

그렇다고 영화적 성취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바하'는 종교와 사이비종교의 명확한 선을 스펀지에 물 적시듯 우리에게 일러 준다. 진정 살아있는 신인지 인간을 미혹해 사리사욕을 취하는 사기꾼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어떤 종교적 징표(일테면 영화에서처럼 육손이나 늙지 않는 영생)가 아니라 생명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 스포일러라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영화 속에서 살아있는 신, 종교 그 자체였던 자는 누구도 해한 적 없고 도리어 중생을 위한 자신의 임무를 다한 뒤 스러진다. 종교적 색채 안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풀어내는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대목이며, 특화된 장르로의 발전을 기대하는 이유다.

▲ 영화의 '등불' 같은 존재 이정재. 영화 '사바하'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바하'를 얘기하며 배우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선 이정재, 아니 단연 이정재. '사바하'는 배우 이정재의 영화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관객인 우리는 영화 '사바하' 세상에서 박웅재 목사로 분한 이정재가 찾아가는 곳을 가고 바라보는 곳을 보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오리무중 스토리라인에서 이정재는 우리를 안내하는 등불이다. 캐릭터 힘만이 아니다.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세조), '신과 함께' 시리즈의 염라대왕도 멋졌지만 왕관을 내려놓고 21세기 현실 속으로 뛰어든 박 목사는 오랜만에 배우 이정재의 민낯 연기를 보는 즐거움을 준다. 별다른 분장 없이, 얼굴과 머리카락에 많은 걸 바르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일상복을 입으니 대중에게 한 발 더 다가서는 느낌도 있다. '관상'과 '신과 함께'에서 녹록지 않은 내공을 확인했다면 '사바하'에선 데뷔 26년 차 '연기의 결'이 보인다.

▲ '괴물'이라 칭하고 싶은 배우 박정민. 영화 '사바하'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리고 박정민. 박정민에게는 '괴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 이미 영화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을 통해 연기력의 고점도 보여 주었고 '변산'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를 통해 주연이 가능함을 알리기도 했지만 아직 대중의 인식 안에서는 성장 중인 배우인 것도 사실이다. 비슷한 포지션의 젊은 배우들 중에는 맡겨진 캐릭터를 감당 못 해 되레 기대치를 낮추는 비극을 맛보는 경우도 있다. 헌데 박정민은 무엇을 연기해도 이보다 더 큰 에너지를 가졌는데 맡겨진 그릇에 맞췄다는 느낌을 받는다. 괴물 배우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다. '사바하'에서의 나한 역도 마찬가지다. 가려진 안티 히어로 대신 전면에 나선 인물이기에 결국 영화 속에서 모든 선의 진영에 맞서 팽팽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데, 해냈다. 그것도 다가올 결말에 위배되지 않을 만큼, 히어로가 아닌 안티 히어로만큼의 에너지만 발산했다. 무서운 조절력이다.

▲ '무서운 신예' 이재인. 영화 '사바하'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다윗 역의 이다윗, 금화 역의 이재인은 미래가 총망되는 무서운 신예들이고, 격변하는 영화에 안정감을 주는 해안 스님 역의 진선균과 황 반장 역의 정진영 배우는 고맙기 그지없는 캐스팅이다. 연희보살 역의 오윤홍을 비롯해 이루다 열거할 수 없지만 공들인 캐스팅 덕에 분량 많지 않은 배우들까지 제몫을 해냈다.

영화 '사바하'를 7일 동안 140만 관객이 선택했다. 영화의 매무새를 생각할 때, 앞으로 이런 영화다운 영화들이 계속 우리 앞에 오기를 바라기에 더 큰 사랑을 기다린다. '사바하' 제목대로, 영화 '사바하'의 흥행이 항상 길하여 성취가 가득하기를.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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