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이지만 법에 의해 신분을 보장한다. 국가공무원법 등 법률은 공무원의 여러 가지 의무도 규정하지만 심대한 잘못이 없는 한 직무의 안정적인 계속성을 지켜주고 있다. 이는 직업 공무원에게 민의를 대변할 권한을 위임함과 동시에, 정권교체 등 외부 변화에 관계없이 본래의 대국민 봉사 임무를 소신 있게 수행하라는 주권의 명령이다.
과거 이 지상명령을 망각한 일부 공무원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작태를 부린 적은 있으나, 민주화와 지방자치가 심화되면서 이제 옛 이야기로 치부되고 있다. 국회의원 같은 선출직 공무원은 물론, 장관과 동사무소 말단직원에 이르는 임명직 공무원도 '머슴'의 본령을 잊지 않는 게 요즘 대한민국이다.
실제로 전국 어디를 가거나 대민행정의 편리함과 헌신적인 서비스 마인드에 감탄하는 미담이 넘쳐흐른다. 우리나라가 경제 선진국뿐 아니라 정치행정 선진국임을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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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을 2025년부터 공직유관단체로 지정한 후 해당 단체로부터 행정소송을 당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한 이미지. [KPI뉴스] |
이런 마당에 정부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음실련)을 2025년부터 공직유관단체로 지정한 후 해당 단체로부터 행정소송을 당해 논란이 되고 있다. 힘없는 예술인들이 중앙부처를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하는 걸 보면 얼마나 억울해하는지 짐작이 된다.
두 협회는 작곡가, 작사가, 가수, 연주자 등 음악인들이 저작권 신탁업무 관리를 위해 스스로 결성한 민법상의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순수한 민간단체이다. 한눈에 봐도 공직유관단체 깜이 아니다. 공직유관단체는 공공기관과 지방 공사 및 공단 등 공공성이 큰 기관이나 단체를 말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예를 들면 한전, 한수원 등 공사·공단 형태의 공기업은 공직유관단체이지만 원자력산업협회는 아니다.
쉽게 말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을 받거나 정부 업무를 위임받아 대행하는 곳이 공직유관단체이다. 국민 혈세가 들어가고 공무원이 할 일을 대신 하니까 공무원과 같은 수준의 청렴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다. 음저협, 음실련에는 단 한 푼의 국가예산도 투입되지 않는다. 음악인들이 생업으로 벌어들인 저작권 수입만으로 관리되고 있다.
문체부가 두 협회를 공직유관단체로 지정한 명분은 저작권집중관리단체의 투명성 확보이다. 저작권집중관리단체란 창작예술인의 저작권을 대신 관리해주고 그 수익을 모아 배분해주는 민간 기구를 말한다. 한국의 K-컬처 파워가 강해지면서 음저협, 음실련 등 저작권집중관리단체의 외형이 커지자 협회 내부 운영을 문제 삼으며 공직유관단체로 협회를 탈바꿈시키려는 것이다. 정향미 문체부 저작권국장은 "특허나 다름없는 창작자의 귀중한 권리 보호를 대신하라고 국가가 지정해 맡겼는데, 협회 일부 임원들이 이를 사익으로 전용하는 나쁜 전례가 있었다"며 "협회의 업무 전반을 민간 자율영역으로 보는 시각은 큰 오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중에는 문체부 퇴직 고위관료들이 등 따시고 배부른 협회에 낙하산으로 내려가기 위한 사전 수순이라고 소문이 흉흉하다. 음저협은 저작권 징수 수입이 최근 몇 년 새 2배 이상 늘어날 만큼 급성장했다. 산자부 공직유관단체처럼 전직 차관이나 국실장이 협회로 오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되면 협회 임직원들은 공무원에 준(準)하는 청렴 의무를 져야 한다. 임원은 재산공개를 해야 하고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과 부패방지법의 적용을 받아 취업제한, 이해충돌방지 등 불이익을 받는다. 공무원만큼의 공적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과연 두 협회가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가. 투명성 강화란 취지는 이해하지만, 민간자율에 맡겨야 할 사적 자치의 영역에 공권력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관치 회귀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좋게 봐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나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창작예술인은 공무원이 아니다. 공인으로서 일정한 윤리적·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과 별개로, 법정 공무원과 같은 수준의 법적 의무를 부과 받는 신분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중앙부처가 민법상의 사단법인을 공직유관단체로 지정해 공무원에 준하는 책임과 의무를 강제하려는 행위는 재량권 남용의 과잉 행정에 해당한다. 마치 윤석열 대통령이 법에 규정된 비상대권을 행사한다며 요건에 맞지 않는 계엄령을 실시하려다가 즉시 국회에 의해 해제당하고, 이후 그 위법행위에 대한 대가로 탄핵과 재판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만약 문체부가 저작권법상 명시된 저작권위탁관리업무에 대한 허가와 감독 권한에서 벗어난 월권으로 치닫는다면 비슷한 경로를 밟아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창작예술인들의 내부자정(自淨)도 필요하다. 문체부는 최근 음저협의 2024년도 운영 전반에 대해 업무점검을 실시하면서 무려 55건의 개선명령을 내렸다. 반박과 소명이 따르긴 했지만 대부분 임직원의 불투명한 예산집행에 관한 건들이었다. 연간 4000억 원대의 회원 저작권료 징수와 배분을 대행하는 기관인 만큼, 덩치에 걸맞은 시스템 정비가 요구된다. 외부에 트집 잡히지 않을 정도의 선진화된 운영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전문경영인 제도 도입도 그 대안 중 하나다.
문체부 역시 민간협회에 대한 관리감독이란 본래의 권한에 맞게 행정권을 절제해야 한다. 문체부는 이번 업무점검 개선명령을 협회에 전달하면서 관련 보도자료를 일제히 언론에 공개했다. 다분히 행정소송에 대한 감정적 대응으로 보일 소지가 크다.
게다가 업무점검에서 이사회는 '임원 직무정지 및 해임에 관한 규정' 등을 참고하여 조치 여부를 결정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이 또한 과도한 인사 개입이다. 협회는 한국저작권위원회나 한국저작권보호원처럼 장관이 임면권을 가진 법상 단체가 아니다. 민간기구의 장(長)을 정부가 교체하라고 명령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산악회, 동창회 회장을 장관이 임면한다고 상상해보라. 협회 예산이 방대해 운영에 다소의 공익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적정한도에서 자율 정화되도록 행정 지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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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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