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이유, 지적만족감 그리고…

홍종선 / 2019-05-17 10:56:39
개봉 11일 만에 '천만 영화' 등극, 16일 현재 1306만명 관람
하재근 "인간적이고 유머 있는 히어로, 쏠림현상 등 인기요인"
우리 역사와 관점 투영, 범 우주적 세계관 담긴 스토리 기대
▲ 한국을 찾은 '어벤져스' 용사들. 조 루소‧안소니 루소 감독, 브리 라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가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열린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의 내한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 22일 만에 관객 1300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초에는 하루 100만 명씩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11일 만에 1000만 고지를 밟았다. 가정의 달 5월이 '어벤져스의 달'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엔드게임' 얘기를 했고, 스포일러 발설에 예민했고, 가족과의 주말나들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예매 버튼을 눌렀다. 우리의 정서를 담은 한국영화도 아니고, 남녀노소 쉽게 볼 수 있는 소재가 아님에도 이토록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보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만이 받은 사랑도 아니다. 지난 2008년 '아이언맨'으로 시작해 햇수로 12년 동안 22편의 마블 영화가 국내 개봉될 때마다 관객들은 높은 충성도를 보였다. 누적관객 수가 1억2000만 명을 돌파했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향한 애정은 특히 뜨겁다. '어벤져스'(2012·797만 명),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1049만명),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1121만명)에 이어 1300만명을 돌파한 '엔드게임'까지 갈수록 흥행 수치를 높이며 누적관객 40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엔드게임'의 16일 현재 관객 수 1306만명. 역대 외화 박스오피스 1위 '아바타'(2009·1348만명)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관객 300만명도 넘기도 어려운 최근의 한국영화 성적표를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다. 한국 관객들이 이토록 마블영화,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한국 팬들의 환호 속에 레드카펫을 밟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영원히 '아이언맨'으로 기억될 진정한 히어로. 


이에 대해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기존의 히어로 블록버스터의 경우엔 천편일륜적으로 무한한 힘을 자랑하고 압도적으로 부숴 승리를 이뤄낸다. 하지만 '어벤져스' 속 주인공들은 히어로지만 사람 같은 느낌이 있다. 마냥 위대하지만 않고 실수도 하고 코믹 코드도 가지고 있어서 인간적이고 가볍고 유쾌한 영웅이야기가 완성됐다. 그런 부분이 이 시대와 맞아 떨어졌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코미디영화를 좋아하는 것과도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영화들이 보통 단편으로 끝났는데 '어벤져스'는 거대한 세계관이 형성된 상태에서 시리즈가 이어지니까 회를 거듭할수록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가 복잡한 만큼 지적만족감을 주고, 나아가 마니아가 되고, 충성도 높은 팬덤이 형성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면서 "우리나라가 쏠림현상이 심한데 '어벤져스'가 헐리우드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다보니 더욱 쏠리면서 엄청난 열기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고뇌하는 히어로가 주는 인간적 느낌, 유머센스를 지닌 유쾌한 영웅이야기, 전 우주적 세계관 아래 펼쳐지는 복잡한 이야기가 주는 지적만족감, 대세로 자리 잡은 콘텐츠에 대한 전폭적 수용. 하재근 평론가가 꼽은 4가지 이유 가운데 지적만족감 부분에 대해 좀 더 주목해 보자.


▲ 영화 '인셉션' 스틸컷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인셉션'(2010·583만 명)과 '인터스텔라'(2014·1030만 명).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소문이 되레 흥행 호재로 작용했던 사례에서도 한국 관객의 지적만족감과 흥행의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먼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드림머신을 타고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거나 심는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신선한 액션영화, '인셉션'을 선보였다. 꿈속의 꿈, 꿈속의 꿈속의 꿈으로 들어갈수록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고 공간을 거꾸로 세울 수도 좌우로 반전시킬 수도 활처럼 휠 수도 있다는 설정이 기본이 됐다. 시각적 충격도 화제였지만 여러 단계에 걸쳐 계속해서 타인의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설정을 두고 한국 관객들은 시간의 변동이 정확히 계산된 것인지 해석했고, 영화 마지막에 도는 팽이의 의미를 두고 지적 설전을 벌였다.


▲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놀란 감독이 '인터스텔라'를 선보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구 멸망의 위기, 새로운 터전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 그 속에서 재확인된 '사랑'이라는 위대한 가치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였지만 한국 관객은 달랐다. 웜이론을 바탕으로 한 우주 공간이동을 천체물리학으로 이해하려 했고, 외계 행성에서 감자를 기르는 게 가능한지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했으며, 우주로 간 주인공이 지구 자신의 집 서재 뒤편에 서서 책장 너머 딸과 조우하는 장면을 두고 4차원인지 5차원인지 분석하려 했다.

'어벤져스'의 경우 지적만족감은 범우주적 세계관과 필연적으로 연관된다. 22편의 마블 영화를 통해 우주는 어떻게 형성돼 있고, 그 각자의 세계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그들은 어떻게 생각이 다른지, 우주전쟁이 났을 때 각자 누구와 연대하여 어떤 생각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전쟁하는지가 명확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 21번째와 22번째 영화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타노스는 인류의 절반을 죽여 다른 절반을 살리겠다고 하지만 어벤져스와 그의 친구들은 비록 내일이 보이지 않더라도 생명을 희생해 생명을 구하는 오늘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들이 우주 최후의 전쟁을 하는 이유다.


▲ 아스가르드 행성의 왕자이자 아무나 들 수 없는 해머 묠니르의 선택을 받아 강력한 힘을 지닌 히어로 토르. 스톰브레이커를 손에 넣은 뒤 더욱 강력해져 타노스를 상대할 파괴력을 갖췄다. 엔드게임을 끝낸 뒤 왕위를 내려놓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호에 탑승했다. [월트디즈니컴피니 코리아 제공]


우리나라 관객들은 범 우주적 세계관, 강산이 바뀌고도 계속돼온 장대한 스토리 앞에 주눅 들지 않았다. 되레 즐겼다. 22편의 영화를 통시적으로, 공시적으로 분석했다. 각 등장인물들의 소속과 개성, 무기와 초능력 등 특성을 정리하고 그들 개개인의 역사를 정리했다. 히어로 간 우열 순위를 영화들에 등장했던 장면들과 승패를 통해 추론했다.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주관하는 6개의 인피니티스톤(스페이스, 리얼리티, 파워, 마인드, 타임, 소울)의 기본 특성과 그것들이 각 영화들에서 언제 등장했고 어떻게 주인이 바뀌어갔는지를 꿰고 있다.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러한 모든 구성요소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이어져 온 마블의 역사를 인터넷백과 혹은 자신의 사이트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어려운 숙제가 아니라 즐거운 놀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놀라운 일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를 겸비한 우수한 콘텐츠가 기본이 됐지만 그것만으론 불가능한 역사다. 세계적 배급망을 바탕으로 한 편에 수천억 원을 투자할 수 있는 할리우드영화의 시장성이 부럽지만 당장 흉내 낼 수 있는 제작여건이 아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인적자원이 최대 강점인 스토리강국 대한민국. 5000년 역사 속에 농익은 풍부한 설화와 동양적 관점을 투영해 우주와 인류 역사를 통찰하고 해석해낸 세계관 아래 정교하게 구조화된 이야기를 기대한다.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홍종선

홍종선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