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이차전지보다 기술 장벽 높아…美 제재도 큰 영향"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차세대 저전력 D램 개발과 생산시설 확충에 속도를 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위협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에 주도권을 내준 이차전지 산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반도체는 이차전지보다 기술 장벽이 높고 미국의 첨단 장비 수출 규제도 강해, 중국 기업이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당장은 시장 잠식보다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한 점유율 확대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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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 허페이 공장 전경. [창신메모리 홈페이지] |
4일 중국 경제매체 '디이차이징'(第一财经)에 따르면 창신메모리는 차세대 저전력 D램인 'LPDDR6'의 연구개발 검증을 마치고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말 LPDDR5X 양산에 들어간 데 이어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음 세대 제품 개발에 나선 것이다.
저전력 D램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노트북 등에 주로 탑재된다. 일반 D램보다 전력 소모와 발열이 적어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최근에는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한 인공지능(AI) 서버에서도 전력과 발열을 줄일 수 있는 메모리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도인텔리전스는 저전력 D램 시장 규모가 올해 395억 달러(약 57조원)에서 2031년 866억 달러(약 124조원)로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창신메모리 제품은 아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품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점에서 경계 대상으로 꼽힌다.
생산능력 확대에도 나섰다. 로이터에 따르면 창신메모리는 베이징 이좡경제기술개발구에 12인치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개발구 측과 자금 조달 방안을 협의하고 있으며 일부 국유기업도 투자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창신메모리는 허페이 등 3곳에서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각 공장의 월간 웨이퍼 생산능력은 약 10만 장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공장이 추가되면 기술 개발뿐 아니라 물량을 통한 시장점유율 확대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배터리 시장 삼킨 중국…반도체도 되풀이될까
창신메모리의 공세가 주목받는 것은 중국 기업이 이차전지 시장을 장악했던 과정과 닮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점유율 23.5%로 중국 CATL(24.0%)을 0.5%포인트 차로 추격했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34.7%에 달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에너지 밀도가 높은 삼원계(NCM) 배터리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은 성능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가격과 안전성이 뛰어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대량 공급하며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2021년 30.4%에서 2022년 23.7%, 2023년 23.1%, 2024년 18.4%로 하락했다. 지난해에는 15.3%까지 떨어져 CATL(39.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BYD(16.4%)에도 뒤졌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도 창신메모리가 상대적으로 성능이 낮은 범용 제품을 싼값에 대량 공급한다면 국내 업체의 점유율과 수익성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반도체는 기술 장벽 높아…단기간 추월 어려워"
전문가들은 그러나 반도체와 이차전지의 경쟁 구도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지배력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점유율 39%로 1위, SK하이닉스는 26%로 2위를 차지했다.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은 65%다. 마이크론이 25%로 뒤를 이었고 창신메모리는 7%를 기록했다. 창신메모리 점유율은 전년 동기 5%보다 2%포인트 높아졌지만 한·미 선두 업체들과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기술력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약 3년, 범용 메모리반도체에서 1∼2년 정도"라며 "아직 중국 기업이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병훈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도 "저전력 D램 등 일부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만 최첨단 공정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뚜렷하다"며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도 중국의 기술 고도화를 늦추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중국 기업들은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국 업체가 이머전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EUV 장비와는 성능 차이가 크다.
EUV는 미세 회로를 상대적으로 적은 공정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반면, DUV는 회로를 여러 차례 나눠 새기는 멀티 패터닝이 필요하다. 공정이 복잡해지고 수율과 생산비 측면에서도 불리하다.
당장은 가격 공세보다 공급 확대가 변수
창신메모리가 범용 D램을 저가로 쏟아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공급자 우위 시장에서는 공격적인 가격 인하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병훈 교수는 "지금은 고객들이 메모리반도체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공급자 우위 시장"이라며 "창신메모리가 굳이 가격을 크게 낮춰 판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손인준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메모리반도체 공급 부족이 심해 가격이 하락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실제로 창신메모리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비슷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창신메모리의 부상이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장 지위를 흔들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다만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능력을 지속적으로 늘릴 경우, 향후 수급이 완화되는 시점부터 범용 D램 시장의 가격 경쟁을 촉발할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KPI뉴스 / 안재성·배지수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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