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와 투샷, 절반은 기절…다시 만나고파"
'드라마 2년 주기설' 깨고 새해 볼 수 있을까

연기는 기본, 직접 카메라를 손에 감고 촬영까지 하고도 하정우가 앞에서 끌고 나는 뒤에서 밀기만 했다고 말하는 배우가 있다. 이선균이다. 대중을 직간접으로 만나는 여러 홍보의 장에서도 그는 'PMC: 더 벙커'에 담긴 하정우의 노력과 열정을 알리는 일에 힘썼다. 요즘 남남 브라더스 케미가 이토록 좋은 영화가 있었나 싶을 만큼 영화 안에서도 하정우와 좋은 호흡을 자랑하더니 스크린 밖에서도 형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도 잊은 채 인터뷰에 열심인 이선균을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만났다.
꼭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다. 에이헵(하정우 분)으로부터 윤지의라는 이름 대신 '북한'으로 불리는 남자. 직업이 의사라고는 하지만, 북한을 무슨 괴뢰군이나 늑대인간으로 바라보던 시절도 아니지만, 이선균이 연기한 윤지의는 굉장한 휴머니스트다.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윤지의를 다른 배우가 아닌 이선균이 했기에 '무슨 북한 사람이 저래?' 하는 거부감 없이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기에 묻고 싶었다. 윤지의를 어떤 인물로 생각하며 표현했나요?
"홍보할 때 의사 역할 많이 했다는 걸 강조하던데, 실제로 그 의사 역할들이 겹겹이 쌓여 도움 되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건 결국 북한 말 구사인데, 북한 말이 억양 자체가 직선적이고 강하고 호전적인데 이 사람은 좀 다르단 말이죠. 그냥 강하게 평범한 북한 말로 했다면 더 쉬웠을 거예요."

"특히 가장 걱정된 게 첫 대사였습니다. 그때는 아직 의사인 게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고, 뭔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야 했어요. '야, 남조선…'으로 시작하는 대사요. 에이헵이 모르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주려는 것인지 내 탈출에 이용하려고 하는 것인지 모호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측면도 있어야 했고요. 생각해 보면 윤지의의 인간미는 단어로 되게 많이 나와 있어요. '사람이 사람 치료하는데 뭐이 이유가 필요하네'처럼요. 그래서 첫 대사는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따뜻하게 보이기보다 호전적으로 보여지는 게 나중의 대사들에 대비돼 더 다양하게 비쳐질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북한말 선생님과 첫 대사는 강하게 얘기해도 될 것 같다 결론 내렸고, 그렇게 갔죠. 그 이후로는 부드럽게 갔고요."

"북한 말의 음이 두성과 비음으로 많이 가더라고요. 이 부분이 전달력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북한말 자문해 주시는 분은 주로 억양을 많이 얘기하셨고, 그게 그 분이 현장에 계신 이유였고요. 소리에 대한 고민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후시(촬영 후 보완녹음) 때 김병우 감독께서 그거 신경 쓰지 말고 감정 신들이니까 감정에 맞게 편히 하는 게 좋겠다고 요구하셔서 그에 맞춰서 했습니다."
미국과 중국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한국과 북한 가운데 누가 쏜 것인지도 모르는 총탄이 날아다니고 총성이 귀를 찌르는 지하벙커에서 정확한 대사 전달이 가능할까. 현실성을 살리자니 대사 전달력이 울고, 전달력만 고집하자니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딜레마 속에서 부단히 고민했던 이선균. 그런 이선균의 고민과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답변이었다.

이선균에게서 배태된 윤지의의 따뜻한 인간미, 휴머니티 얘기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다. 꼭 묻고 싶었던 두 번째 질문, 많은 감독들이 이선균을 부르는 이유, 그리고 관객이나 시청자가 이선균에게 맞는 옷이라 느끼며 호응을 보내는 캐릭터에 대한 답이 거기에 있다.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사람, 좋은 어른 역에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사실이 이선균의 좌표가 아닐까.
"이번 역할 같은 경우 드라마 '하얀 거탑'의 최도영이 보인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대중은 이선균에게서)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어느 하나로 특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센 역할도 해보고 싶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보고 싶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을 통해 저도 성장한 것 같아요. 제 인생도 돌이켜보게 되고, 이러이러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고. 더하여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관객이나 시청자가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얼른 답을 내지 못 하고 머뭇거리는 모습. 사실 누구나 갈등하잖아요, 그런 갈등과 흔들림이 보이는 걸 인간미 있게 봐 주시는 것 같아요."

배우 이선균의 정체성이라 할 '인간미'를 구성하는 건 따뜻함, 그리고 흔들림이라는 자기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묻고 싶었던 또 한 가지, 이선균만큼 드라마와 영화를 순조로이 오가는 배우가 있을까. 보통 한쪽으로 굳어지기 십상이고 어느 한쪽이 유달리 어울리거나 유달리 겉도는 느낌을 주는 게 다반사다. 비결이 뭘까. 5명 라운드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드라마 2년 주기설'을 제기했다.
"드라마와 영화 현장이 비슷하면서 다르거든요. 그런데 잘 오간다, 돌이켜보니 2년 주기라 그런 것 같아요(웃음). 한쪽으로 쏠리면 오가기가 힘든데 꾸준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드라마 현장도 바뀌어가고 있지만 드라마엔 양은 냄비 같은 게 있잖아요, 빠른 피드백. 옛날엔 그게 힘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재미있기도 해요."
"좋은 드라마를 하면 이게 기준이 되잖아요, 그래서 바로 하기가 겁나는 것도 있어요. '나의 아저씨' 뒤에 바로 다른 걸 하면 드라마가 빨리 잊힐 것 같고, 이번 게 너무 잘됐는데 곧바로 하면 (높아진 기준으로) 제가 예민해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나 또 하고 싶어요, 드라마의 재미가 있으니까요. 캐릭터를 보기엔 드라마가 좋은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캐릭터의 힘을 가지고 채워가기엔 드라마가 좋죠, 거기서 배우는 것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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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석 감독과 나란히 선 이선균. 이지은의 모습도 보인다. [tvN '나의 아저씨' 공식 홈페이지] |
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진심이 전해 왔다. 그럼 2년 주기설을 깨고 2020년이 아닌 바로 내년에 안방극장에서 이선균을 보게 되려나. 2018년 많은 어른들, 밥벌이에 사랑에 고된 세상살이에 쓸쓸한 어른들을 위로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 여름에 방영한 드라마임에도 겨울 장면이 많아서 그런지 부쩍 생각나는 요즘이다.
"음, '나의 아저씨'가 여운이 긴 작품인 것 같아요. 김원석 감독님은 너무 훌륭한 지휘자예요. 현장에서 지휘자가 직접 뭘 연주하지 않지만 그 감정들을 이끌어내서 그 템포들을 조절하며 이끌고 가잖아요. 요즘 겨울 되니까 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여름 하면 '커피 프린스'가 떠오르고, 올림픽만 되면 '태릉선수촌', 겨울 하면 '나의 아저씨'. PMC는 게임할 때 생각날까요? (영화 PMC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싱글벙글) 우리 애들이 아직 안 봤어요, 개봉하면 꼬셔서(꾀어서) 데려가려고요. 큰 애가 피 나오는 걸 못 봐서 작은 애라도 데려가려고 해요."
가족 얘기가 나온 김에 물었다, 아내인 배우 전혜진이 영화 'PMC: 더 벙커'를 본 반응. 지난 22일 V앱 생방송을 보니 전혜진이 "김병우 감독은 금세 할리우드 가겠다"라는 말로 한국영화의 틀을 벗어난, 혹은 한 발 더 나아간 영화라는 호평을 남겼다고 남편 이선균이 말하던데. 배우 이선균의 연기에 대해선 뭐라 평했는지 궁금하다.
"(만면에 미소) 서로 그런 얘기 잘 안 해요. 그(가족 등을 초대한 VIP시사) 뒤 제가 바로 뒤풀이, 그 뒤 부산 대구 지역행사 다녀오느라 길게 말할 틈이 없었어요. 다만 시사 당일에 '정말로 잘 봤다, 너무 좋았다'고 얘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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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나 잘 어울리는 두 남자. 하정우가 볼트라면 이선균은 볼트를 품는 너트. |
영화 얘기로 한 발 더 깊이. 하정우와의 브라더스 케미가 좋다는 평들이 많다. 영화 안에서 서로를 이름 대신 '북한' '남조선'으로 부르며 대결로 시작해 공조의 우정을 보이더니 스크린 밖에서도 어울림이 보기 좋다. 각종 화보와 홍보행사들에서 두 사람은 때로 첩보원처럼 사이좋은 형제처럼 훈훈한 모습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동생의 수고를 대중에게 알리고 자신은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하정우를 추켜세우는 모습이 마음 넓은 형 같다. 윤지의 에이헵, 이선균 하정우의 하모니를 볼트와 너트에 비유하자면, 우리 눈에는 언뜻 볼트만 보이지만 그 바로 아래는 너트가 있듯 이선균은 너트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하정우, 김병우 감독, 강명찬 대표(제작사 퍼펙트스톰). 모두 작업해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라 이 기회 놓치면 언제 다시 올지 몰라서 욕심냈어요. 물리적으로 스케줄 안 맞으면 피해 주는 건데, 끌고 가는 롤이면 부담됐을 텐데 정우가 끌고 가는 영화라 이런 상황이면 뒤늦게 합류해도 괜찮지 않을까 했고 그 친구들이 다 양해해 줬고. 타이틀 롤, 출연분량 부담 없이 간 거라 모든 게 고마웠죠."
"현장도 정우가 찍은 걸 가이드 삼아 제가 촬영했고, 극 속에서도 적대 관계로 만났다가 서로 도와주는 관계로 변하며 작은 우정이 쌓이는 관계예요. 'PMC: 더 벙커'는 온전히 정우가 진두지휘, 선봉에 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부딪히며 가는 영화, 욕심내야 하는 영화가 있는데 이거는 그런 영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홍보는 원래 그렇게(상대를 빛나게 하며) 해야 하는 거고요. 아쉬운 것은 둘이 마주하는 장면이 없는 거, 투샷이 촬영 3일분밖에 없었고 그중 반은 제가 기절해 있었고(웃음). 다음에 다시 만나고 싶은 욕심,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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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인이 아닌 민간인 윤지의의 놀람과 당황을 그대로 표현하려 했던 이선균. |
하정우를 가이드 삼아 편히 작업한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녹록찮았을 터. 지하벙커 안 유일한 민간인이고, 의사라 의학용어를 쓰는데 그것도 북한말로 써야 했다. 김병우 감독이 제작보고회에서 반진심 반농담으로 밝혔듯 전업을 해도 될 만큼 촬영에 재능을 보이며 붕괴된 지하벙커 안 자신의 모습을 직접 촬영했다. 총성이 오가는 곳에서 연기하랴 촬영하랴 얼마나 정신없었을까.
"의학용어가 의학드라마처럼 전문적으로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부담은 적었어요. 다만 북한에서 온 의학용어인데다 익숙하지 않은 억양으로 북한 의학용어를 말하면 관객들이 낯설 텐데 어찌할까 하는 걱정은 있었죠. 차분히 치료에 집중할까 총격 터지는 현장감을 살릴까 했는데 감독의 선택은 후자였어요. 현장에서 저도, 그래 좋다 싶어서 귀마개도 빼고 했는데 후회가 되네요(웃음). 유일하게 군인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군인들이 하는 리액션과 다른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놀람과 당황함을 그대로 표현하려 귀마개를 뺀 거였는데. 제 귀에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아비규환 연기했거든요. 총격신은 100% 후시 녹음이라 후시 때 커버하려 했는데 감독님이 동시(현장녹음) 때처럼 해 달라 해서 그대로 따랐어요. 영화 보실 때 잘 안 들리신다는 얘기, 연기하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반응이 안타깝긴 한데 관객 분들이 현장감 있게 즐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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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연기하랴 촬영하랴 고군분투한 이선균. |
"무너진 벙커 안에 갇힌 장면은 제가 들고 있는 카메라에 담겨야 하니까 제가 한 거죠(웃음). 카메라가 작은 게 아니고 렌즈도 광각렌즈 끼고 손에 그립밴드 감고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감독님도 1차로 제가 찍은 걸 보고 그 뒤에 앵글을 올려 달라, 좀 더 움직임이 필요하다 디렉션을 주셨고, 아무래도 연기할 때 손이 자유롭지 못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또 옆에 있는 친구가 담겼으면 좋겠다는 디렉션이 추가되기도 해서 열심히 찍었습니다."
'PMC: 더 벙커'는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반응하는 영화다. 인물의 전사를 미리 알고 가면 그들의 말과 행동의 근거를 이해하기가 보다 쉽다. 이선균의 입으로 윤지의의 배경 스토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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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의 기복을 겪는 에이헵의 변화, 결말로 이끄는 역할이 윤지의에게 주어졌다. |
"에이헵과 서로 가정사를 얘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장면이 감정적이고 늘어지는 부분이 있어 감독께서 편집하신 것 같아요, 국제정세 부분이 강조되고요. 저의 백그라운드는 아내와 아이가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얘기를 에이헵과 나눴고요. 용병인 에이헵이 윤지의에게 지하벙커에서 도망갈 기회가 있었는데 왜 도망가지 않았느냐고 묻잖아요. 윤지의가 답하죠, 이념 다 부질없고 사람이 먼저다. 윤지의에게 생명이 먼저다라는 신념이 중요하고 그게 에이헵에게 영향을 미쳐 결말의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봤어요. 그런 역할이 제게 맡겨졌다고 생각하고 연기했습니다."
에이헵은 한국 공수부대 시절의 상처를 안고 미국으로 갔다가 현지 민간군사기업(PMC)의 발탁과 지원 아래 용병이 되고 팀장에 이를 만큼 장기 활약하며 팀을 이끄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에이헵은 과거 상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와 용병의 본분 사이에서 또 누가 친구인지 적인지 알 수 없는 전장의 상황에서 감정의 기복을 겪다 본래의 인성을 되찾는데, 여기서 심정과 태도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게 윤지의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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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나의 아저씨', 2019년엔 'PMC: 더 벙커' 사랑해 주세요~ |
끝으로 이선균은 "2018년은 '나의 아저씨'가 차지하니까 'PMC'가 2019년의 긴 시간을 차지하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감, 새해를 맞이하는 희망을 얘기했다. 또 "최고의 작품, 최애(가장 사랑하는)의 작품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렇게 애정하는 작품을 하나 더, 'PMC: 더 벙커'를 만들었다는 것이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묵은해가 저물어가는 세밑, 그리고 새로이 다가오는 복된 돼지해. 볼 때는 마치 게임인 듯 4DX인 듯 실감나게 즐기고, 보고 난 후엔 우리 인생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수많은 판단의 순간에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 'PMC: 더 벙커'를 관람하는 건 어떨까. 훈훈한 인간미를 지닌 이선균표 윤지의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추운 마음이 조금은 녹을 것이다.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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