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주의 주마등] '폭싹 속았수다' 속 세 번의 이별
김윤주 기자
kimi@kpinews.kr | 2025-04-18 14:27:05
주인공인 '애순이' 세 번의 이별을 겪으며 인생 쌓아
앞날 모른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 '대단'
▶ 각오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누군가'의 딸이라면. 내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정주행할까 고민 중이라 하자 친구가 해준 말이다. 드라마를 보는데 무슨 '장엄한' 각오까지 필요한가 싶어 실소가 나왔다. 아무리 내가 뭘 보든 눈물부터 터지는 '파워F'라지만 시작도 전에 겁을 주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이미 조금 졸은(?) 상태에서 남편과 정주행을 했다. 그리고 볼 때마다 울었다. 드라마 주인공은 단연코 '애순'이다. 사람이 이별을 겪으며 나이를 먹는 것처럼, 애순 역시 세번의 큰 이별을 겪으며 인생을 쌓는다.
▶ #엄마 그중 첫 번째는 '엄마와의 이별'이다. 애순인 고작 10살 때 엄마를 떠나보낸다. 매일 엄마와 통화하는 나로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다. 우리 엄마 역시 늘 '자식'이 먼저였다. 내 좋은 점을 나보다 먼저 알아보고 지지해 줬다. 힘든 일이 있어도 '내가 되어' 화내줬다. 내가 꿈을 이루길 누구보다 바랐다. 하지만 난 엄마의 꿈을 모른다. 마음으론 효도해야 함을 잘 알지만, 난 여전히 7살처럼 짜증 내는 '미운 37살'이다. 엄마는 늘 내 곁에 있을 거란 '안이한 희망' 때문이다. 애순인 칠순이 되어도 엄마를 그리워한다. 나도 죽을 때까지 엄마를 그리지 않을까. 놀라면 '엄마'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처럼 당연한 듯 그렇게.
▶ #자식 애순인 셋째 동명이를 바다에서 잃는다. 생때같은 어린 자식이 떠나고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낸다. 자식을 잃는 건 너무 슬퍼서 그걸 지칭하는 '용어'조차 없다는 말이 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부모를 여의는 건 어찌 보면 예고된 수순이지만, 자식을 앞세우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자식을 낳아보니 더 알겠다. 자식의 작은 생채기에도 마음 아픈 게 부모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을 잃는 건 '죽음'과도 같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통곡이 아니라 '절규'를 한다고 한다. 내 목숨 바쳐서라도 자식을 살리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닐까. 죽을 거 같던 애순이는 또 그렇게 살아간다. 이 또한 '자식' 때문에.
▶ #남편 애순이의 애달픈 인생을 바라보며 그럼에도 꼭 부러운 게 있다. 바로 남편 '관식'이다. 관식이는 어린 시절부터 오직 애순이만 바라본 '순정파'다. 어쩌면 이 수천억 드라마의 가장 판타지적인 요소가 아닐까. 애순이는 힘든 여정을 관식이와 함께 걸었기에 주저앉지 않았다. 관식이는 애순이를 위해 생선도 갖다주고, 양배추도 팔고, 시도 외운다. 수영선수가 되는 대신 '애순이의 남편'이 된다. 그런 관식이가 50대 중반에 떠난다. 애순이를 위한 수많은 머리핀을 사놓은 채. 물론 내게 관식이 같은 남편은 없다. 대신 '학씨 아저씨' 같은 남편은 있다. 그럼에도 남편이 없는 건 참 싫다. 옆에 있으면 귀찮지만, 없으면 허전한 그런 존재다. 앞으로 내가 애순이처럼 어떤 이별을 겪을지 모른다. 또 지금도 누군가는 아픈 이별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 앞날을 모른 채,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굉장히 대단하고 수고스러운 일이 아닐까. 우리 모두 "폭싹 속았수다'(매우 수고하셨습니다)"
KPI뉴스 / 김윤주 기자 kim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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