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한국이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KPI뉴스
go@kpinews.kr | 2025-11-20 10:02:02
우리나라 경주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공동체(APEC) 회의가 끝난 지도 벌써 2주가 지났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제 차분히 그 의미를 되씹어볼 때가 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깐부치킨 회동으로 확보된 26만 장의 최신 인공지능(AI) 반도체(GPU)를 어떻게 AI 강국 도약의 지렛대로 쓸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보유한 GPU가 5만 장 정도라고 하니 갑자기 약 5배의 컴퓨팅 파워가 생긴 셈이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은 "국내 AI 컴퓨팅 자원이 2030년까지 약 30만 장 수준으로 늘어나며,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권 AI 인프라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AI 3대 강국은 CPU 26만 장으로만 달성되지는 않는다. 물량으로만 치면 중동국가들이 AI 올림픽 동메달을 놓고 우리보다 더 먼저 달리는 중이다. 이들은 석유 다음의 차세대 국가자원으로 AI를 놓고, 미국·유럽 등 선진국과 손잡고 막대한 오일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중동형 AI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UAE에 152억 달러를 투자해 200메가와트(M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 UAE는 트럼프 대통령의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계획인 '스타게이트'에도 참여해 10년간 1조4000억 달러를 투자한다. 연 50만 장의 엔비디아 GPU가 공급돼 5기가와트(GW) 규모의 UAE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3위 AI 강국을 목표로 국영 AI 기업인 '휴메인'을 설립했다. 휴메인은 엔비디아, AMD, AWS 등과 함께 2034년까지 최대 6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전국에 세울 예정이다.
GPU는 AI를 학습시키는 자원에 불과하다. 당장 한국의 AI 수요는 10M~20MW 수준에 불과한데, GPU 26만 장은 총 2.5GW 규모다. 수요의 100배를 넘는 공급이 들이닥친 것이다. 글로벌 테크 전문미디어 밀크에 따르면 최신 GPU는 3년 내 성능이 반감하고 5년이 흐르면 구형 고철로 전락한다. 3년 안으로 이 귀한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게 큰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이 명실상부한 AI 3대 강국이 되려면 다음 3대 숙제를 풀어야 한다. 첫째, 어떤 AI를 개발할 것인가 하는 우선순위 문제다. 둘째, GPU를 돌릴 전력과 데이터를 풍부하게 확보해야 한다. 셋째, 인재양성이다.
어떤 AI를 개발할 것인가? 바로 '피지컬(physical) AI'이다. GPU 26만 장은 정부가 최대 5만 장, 삼성·SK·현대차 그룹이 각 5만 장, 네이버가 6만 장을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우선 AI 정부 구현에 박차를 가해야한다. 중앙 부처부터 AI 행정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공공 AI 플랫폼도 구축해야 한다. 다음은 대기업 독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미래 AI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해 유망 스타트업들에게 GPU를 싼 값에 공공 임대하는 등 차세대 주자 육성 역시 정부의 할 일이다. 새내기 기업들이 GPU 이후 첨단 반도체가 될 신경망처리장치(NPU) 같은 도전적 임무를 맡도록 판짜기에 힘써야 한다.
대기업들은 GPU 자원으로 틈새 수직(vertical) 산업군(群)인 '피지컬 AI'에 승부를 걸어라. 로봇(휴머노이드), 자율주행, 스마트 제조가 그것이다. 로봇은 한국의 제조업 역량이 집결된 승부처다. 오상록 KIST 원장의 제안대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한국이 삼국지의 공명처럼 한국형 휴머노이드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꾀할 수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뿐 아니라, 자율 드론과 선박 등 이동체에서 방위산업처럼 숨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이 한국 기업에 있다.
마지막으로 제조업의 인공지능 전환(AX)에 전력을 다해야한다. 제철, 석유화학 등 전통산업은 지금 수명이 한계에 달했다. 재래형 양산제품은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넘기고 첨단고급품 생산에만 주력해야한다. 배터리, 디스플레이처럼 후발국의 추격이 목 아래에까지 다가온 산업군도 마찬가지다. AX를 차별화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
전력과 데이터는? GPU는 전기 먹는 하마다. 원전 없이 26만 장의 GPU를 돌리긴 어렵다.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서버 운영에 보통 500MW의 전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냉각, 보안, 네트워킹을 포함한 부가 전력까지 더하면 800M~1000MW 이상의 전기가 들 것이다. 재가동되는 고리 2호기의 설비 용량이 685MW이니 원전 하나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는 셈이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황금 배합 비율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데이터의 규제 장벽을 철폐해야 한다. 특히, 의료 데이터는 한국이 잘 구축된 건강보험 체계로 세계에서도 우수한 양질의 재료를 갖고 있음에도 각종 규제로 바이오산업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입법·행정·사법 공공 데이터 역시 최소한의 안보 방화벽 밖의 것들은 모두 개방해 창의적 민간기업의 AI 훈련용으로 쓰게 해줘야 한다. 소버린(주권) AI의 출발이 고유의 데이터이다. 엔비디아 GPU는 쿠다(CUDA) 같은 엔비디아 소프트웨어 생태계 안에서 돌아간다. 제품에 이어 서비스 종속을 막기 위해 소버린 소프트웨어의 재료인 데이터를 막힘없이 흐르게 하자.
인재는 어떻게 키울 것인가? 과학기술 인재양성에 대한 체계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10년 후 인재는 초중고 교육에서부터 키운다. 지금 인재는 잘 돌봐주고, 나간 인재는 모시고 와야 한다. 우리나라 인재 유출(brain drain)은 '한국이 싫어서' 떠난 기술 이민이다. 의대 안가고 공대로 진학한 우수 이공계 인재를 실컷 다 키워놨더니 한국 사회의 푸대접에 질려 외국으로 떠나버린다. 해외 우수인재 유치는커녕 집토끼마저 놓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형 피지컬 AI를 개발하려면 세계정상급 두뇌가 필요하다. 중국의 천인(千人)계획은 우리보다 10여 년을 앞서 내다본 실천이었다. '천재 1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각오를 되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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