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인문 서적 소개하며 이끌어낸 깊은 질문
인공지능 시대 각별히 더 중요해진 '질문'의 의미
"내편이라면 질문 없이 받아들이는 위험한 사회"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이런저런 걱정과 논의가 분분하다. 결국 아무리 견제하고 두려워한다 해도 인공지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이 과정에서 질문의 능력이야말로 이전에 답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던 노력만큼 중요한 항목으로 부각된다. 제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사용자가 무엇을 주문하고 물어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질문' 능력은 작금 세상을 살아가는데 긴요한 핵심 자산으로 새삼스럽게 각광받는 이즈음이다.
질문의 근육을 키우는 원동력은 바로 '책' 속에 있다고 믿는 문학평론가 우찬제 교수(서강대 국문과)가 책 관련 칼럼을 모은 에세이집 표제를 '책의 질문'(열림원)으로 내세운 배경이다. 책은 그 자체로 수많은 질문들을 내장한 보고라는 인식 아래 그가 읽으면서 획득한 질문들을 독자들과 더불어 나누는 형식의 글들을 모았다. 문학은 물론 다양한 인접 인문학 관련 책들이 6부에 걸쳐 질문의 향연에 풍성하게 등장한다.
1부 '여기는 아닌, 지금은 아닌, 나는 아닌?'에서는 지속 가능성과 생명 평화론, 2부 '사막에서 우물의 노래를'에서는 피로사회를 넘어 모색하는 웰빙의 가능성, 3부 '미친 상상으로 네잎클로버를'에는 창의적 발견, 4부 '절망의 산에서 희망의 돌멩이를'에는 절망을 심하게 앓는 시절에 배우는 희망, 5부 '무의미의 의미와 환대'에서는 삶의 의미에 대한 탐문과 인간성 회복, 6부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는 책과 책 읽기와 관련된 다양한 사유를 위한 질문들을 담았다.
"그동안에는 제가 질문해서 풀어낸 결과를 서술형으로 말하거나 쓰는 데 익숙했어요. 학생들과 소통하거나 교육하는 과정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질문하고 찾아내고 한 것은 이거다, 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질문을 찾아내고 또 그것에 대한 해답을 같이 찾으면서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질문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에서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자기 인생길을 자기가 열어 나가야 되는데 언제까지 이미 앞선 사람들이 찾은 길, 찾은 질문에 대한 답만 내놓을 수는 없잖아요."
전화로 만난 우 교수는 최근 들어 특히 뜨거운 관심사인 챗GPT가 어떤 질문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던지느냐에 따라서 다른 답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그는 "챗GPT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경우도 질문을 구체적이고 창의적으로 하면 할수록 이미 그 질문 안에 그 질문을 찾아내려고 하는 길이 내장돼 있다"면서 "이전에는 허기진 사람이 일용할 양식을 채우듯 책을 읽었다면 이제 그걸 마중물 삼아서 크든 작든 자기 질문을 열어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그 질문들끼리 서로 토론하고 대화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편에 속해 있으면 ('내편'에서 제공하는 정보나 주장을) 그냥 질문 없이 받아들인다"면서 질문이 없는 공동체나 집단의 위험성에 대해서 덧붙였다. 우 교수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나름대로 질문하고 이곳이 내가 가야 할 사유의 방향인가, 내 발이 가야 할 길인가 끊임없이 순간순간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모습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작가 A.G.가드너(1865~1946)의 '모자 철학'에서도 '편견의 우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이끌어낸다. 그는 이 질문을 전개하면서 "편견은 문명을 떠받치는 기둥"(앙드레 지드)이기도 하지만 "볼테르의 지적처럼 어리석음의 으뜸이 되는 것이 편견"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편견을 대문으로 쫓아내면 언제나 창문으로 되돌아 들어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라면서 '내편/네편'을 가려 믿고 싶은 것만 거두절미하고 받아들이며 맹목의 갈등으로 치닫는 사회에 대한 새삼스러운, 엄중한 경고를 환기한다.
괴테(1749~1832)는 만년 역작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느님에게 내기를 걸게 한다. 파우스트 박사를 악마의 길로 끌어들이는 걸 하느님이 허락만 한다면 그는 영영 다시 구원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켜보라고, 악마는 장담한다. 여유 있는 하느님의 답. "그가 지상에서 사는 한, 네 마음대로 하는 걸 막지 않겠노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니라." 우 교수는 괴테가 만들어낸 이 이야기를 되새기며 과연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인" 존재인지 독자와 함께 묻고 생각한다.
"뭔가 신념이 있는 사람들, 자기 소신에 갇힌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행복해요. 진실이 이것일까 저것일까 고민하는 사람들은 계속 방황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고민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지만, 그 혼돈 상태가 진실을 찾아나가는 길 위에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방황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반성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이런 반성이 부족하거나 결여될 때 갈등과 싸움과 혼란이 일어납니다. 더 깊은 진실을 위해 혼돈 속에서 방황하고 모색해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읽고 질문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르반테스(1547~1616)의 '돈키호테'에 이르러서는 "미친 상상으로 네잎클로버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허리를 굽혀 따려는 순간 총알이 머리 위로 지나갔는데 그대로 서 있었더라면 목숨이 위태로웠을 상황이었다. 우 교수는 행운의 상징으로 인식돼 온 네잎클로버를 5년 간 실험을 통해 종자 개량으로 대량 생산해 납품하는 농부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농부는 어쩌면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한다"는 돈키호테의 말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썼다. 행운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대량 생산하는 '미친 상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사례라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1900~1980)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이끌어낸 질문은 '명사형 사고에서 동사형 사고로 전환할 수 있을까?'이다. 1980년대 초반 대학에 다닌 그는 대학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검열을 의식해 관념적인 명사형을 많이 썼는데 그러다보니 관념적인 사람이 되더라고 했다. 이 사실을 자각한 이후 '영토화된 개념'인 명사보다 고여 있지 않고 흐르는 '탈영토화된' 동사나 부사나 형용사로 사고하는 쪽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이런 태도야말로 프롬이 말하는 소유형 인간에서 존재형 인간으로 나아갈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명사형 사고가 아니라 동사형 사고, 뭔가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뭔가 새로운 생각을 발견하기 위한 유연한 사고를 향한 질문을 그는 이 책에서 독자들과 함께 이끌어낸다.
이번 에세이집의 부제로 활용한 질문 '여기는 아닌, 지금은 아닌, 나는 아닌?'은 하라트 벨처, 한스-게오르크 죄프너 등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기후 문화'라는 책에서 따온 질문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은 "각종 매체들이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자연 재해 등을 보도하며 지구 재앙의 위험을 경고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여기는 아닌, 지금은 아닌, 나는 아닌' 태도를 보인다"고 적시한다. 이대로 가면 미구에 닥칠 재앙 앞에서도 '나는, 여기는, 지금은' 아니라고 버티는 안이한 생각은 단지 기후 위기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네 생활 전반에 퍼져 있는 고질적 태도라는 시각이다.
국제적인 '문학과 환경학회'에서 활동하는 우 교수는 나무를 중심에 놓고 문학작품을 고찰한 '나무의 수사학'(2018)에 이어 기후 문제를 천착한 시나 소설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이즈음 들어서는 '인간은 작은 사람'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살고 있거니와, 조만간 '작은 사람'이라는 산문집도 묶어낼 예정이다. 그는 "자유롭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생겨난 서로 다른 많은 질문들이 책 밖에서 만나 대화하고 합창하는 '질문의 교향악'이 펼쳐지면 좋겠다"고 '책의 질문' 독자들에게 바란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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