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총알은 백범의 심장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6-02-27 17:13:28
탄신 150주년 장편 '백범 강산에 눕다' 펴낸 작가 임순만
백범의 삶과 정신을 사실 바탕으로 24개 연작 형식 구성
원시적 상상력과 강건한 애국심으로 돌파해낸 독립의 길
"백범은 역사 앞에서 울게 만드는 '사무치는 위로'였다"

소설 작업에 전념해온 언론인 임순만 씨가 10여 년의 구상과 자료조사, 5년의 집필 끝에 장편 '백범 강산에 눕다'를 펴냈다. 백범 김구(1876~1949) 탄신 150주년과 2026년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 선정을 기념해 한길사에서 출간한 이 소설은 백범의 행적과 생각을 사실에 기반해 촘촘히 그려낸 역작이다.  

 

▲ 2026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백범 김구의 삶을 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소설로 펴낸 작가 임순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200자 원고지 4500장 분량의 초고를 2200장으로 치밀하게 압축해 완성한 이 작품은, 참담한 환경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역사의 책임을 감당했던 '인간 김구'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연대기적 서술에서 벗어나 총 24개의 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각 장이 하나의 독립된 단편소설처럼 읽히도록 설계됐다. 작가의 미학적 리듬에 따라 사건을 재배치하여,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 같은 강렬한 역사적 변곡점부터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백범의 핵심 성격을 세 가지로 규정한다. 첫째는 어떤 위기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태산부동(泰山不動)'의 리더십이다. 둘째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전근대의 인물임에도 막다른 현실을 기적처럼 돌파해낸 '원시적 상상력'이다. 상해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자처했던 그는 훗날 주석의 자리에 올랐고, 침체된 독립 투쟁의 불씨를 살린 두 의거를 주도했으며, 타국의 하늘 아래서 광복군을 창설하고 좌우 합작을 이끌어내는 창의력과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셋째는 나라 잃은 뼈저린 고통 속에서 동지들이 언제든 찾아가 엉엉 울며 의지할 수 있었던 넓은 품, 즉 '사무치는 위로'를 주는 어른이었다는 점이다.

소설은 역사의 전면에서 물러나 있던 숨은 조력자들의 헌신도 세밀하게 복원한다. 일제의 치밀한 포위망 속에서 일반 노동자 임금 1500년 치에 이르는 현상금이 걸린 김구를 5년이나 숨겨주며 '유사 부부' 행세를 했던 중국인 처녀 뱃사공 '주애보'의 순애보가 대표적이다. 훗날 여비 100원만을 쥐여주고 헤어져야 했던 그녀의 침묵과 희생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빚을 지고 있음을 작가는 잊지 않고 짚어낸다.

임시정부 청사 임대료 30원과 직원 월급 13원을 감당하느라 정작 자신은 지독한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면서도, 동포들의 집을 전전하며 밥을 얻어먹는 것을 결코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던 백범의 초인적인 책임감도 묘사된다. 강대국의 억압과 망국의 처절한 굶주림을 온몸으로 겪어냈기에, 그는 남을 억압하는 군사력이나 무력이 아닌 인의와 자비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문화의 힘'을 그토록 갈구할 수 있었다.

-왜 지금 백범인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고 곧바로 해방이 되자마자 민족이 분단돼서 80년이 지나 100년을 향해 가고 있는데 지금처럼 민족이 원수처럼 산 적은 없다. 우리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족사적 관점에서 보면 지금처럼 황폐하고 억울한 수난기가 없다. 우리 선열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서 언제든지 몸 바칠 준비가 돼 있었던 그 당시의 이야기를 우리가 몰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원시적 상상력이란?
"이봉창이 일본에 가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는 것만 해도 당시 상황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윤봉길 열사 도시락 폭탄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기 힘든 어려운 돌파를 해냈다. 도망다니면서도 다른 나라에서 광복군을 만들어내는 일도 그렇다. 우리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좌우합작 정당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렇게 돌파해내는 기본적인 힘은 백범의 강건한 애국심이 바탕이었다. 모든 것을 사심 없이 나라에 바치겠다는 애국심, 밤새도록 나라를 생각하는 그 힘인 것 같다."

 

▲ 임순만은 백범 김구의 존재를 "그 이름을 부르며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만드는 역사의 사무치는 위로"라고 썼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백범은 '역사의 사무치는 위로'인가.
"여타 독립운동가들도 그렇지만 특히 백범 김구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가 살아있을 때도 독립운동가들이 찾아와 엉엉 울기도 했다. 다 큰 남자들이 엉엉 운다는 것은 수치일 수 있는데, 백범 선생은 그만한 품이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질 때마다 찾아가서 엉엉 울었다. 백범이 죽고 나서도 묘지에 찾아가 퍼질러 앉아서 엉엉 우는 게 전통이 되다시피 했다. 살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백범은 그런 의지처였다. 그런 어른이 존재했다는 역사 자체가 우리에게 위로다."

-쓰면서도 울먹였겠다.
"사실 많았지만, 4500장 넘게 쓰면서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쓰는 일이 천형이라고 하는데, 힘들다는 걸 못 느끼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돌아볼 정도였다. 독립운동가들의 그 맑은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작가는 대부분 팩트를 중심 서사로 삼되 그 사이를 연결하는 세부는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이 작품은 강건하고 맑은 독립운동가들과 일체가 되어, 그 힘으로 매일 새벽 수행하듯 써내려간 결실이다. 백범은 이봉창·윤봉길 열사의 의거를 기획한 임시정부의 배후 장본인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뒤 숨어 다니며 막대한 현상금의 위협을 감수해야 했다. 임시정부 시절 배를 곯던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 식사를 제공하고 도처에서 지원금을 보냈던 수많은 이들이 백범을 지켜낸 배후였음은 자명하다.

그중에서도 5년간 곁에서 백범을 보살피며 '유사 부부'로 지냈던 뱃사공 여성 '주애보'와 관련된 일화는 간단한 팩트 위에 작가의 섬세한 상상력이 삼투된 경우다. 행방이 묘연한 주애보의 이후 행적을 작가는 '김구'를 지키기 위해 자결한 것으로 처리했다. 소설 속 백범의 말. 

 

'주애보의 공로를 잊을 수가 없네. 공로의 하나는 내가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는 개인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유지해 광복군을 만들 수 있었다는 공적인 것일세.'

-24개 단편 형식으로 구성했다.
"이봉창, 윤봉길, 주애보의 이야기를 초두에 배치했다. 이후 성장기와 임시정부 시절 에피소드들, 해방공간의 대치 국면들을 전개하는 방식이다. 이 소설을 어떤 구성으로 전개하느냐는 내 나름의 미학이 기준이었다. 이 소설의 구성은 내가 숨 쉬는 결에 잘 맞는 것이었다. 백범의 강건한 면과 고심하는 인간적인 면을 어떻게 균형을 맞추느냐가 어려운 문제였다."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오직 인의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문화의 힘일 뿐이다. 문화의 힘은 선량하고 자비롭다. 문화는 누구도 억압하지 않는다. …현재 인류가 불행한 근본적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감싸주는 것은 오직 문화의 따뜻한 힘이다.'

-백범이 역설한 '문화의 힘'은 이른바 'K-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힘만이 최고이던 그 시절에 정말 21세기에 필요한 문화를 얘기했다는 게 참으로 놀라운 것처럼 보이지만, 엄청나게 배도 곯아봤고 강국에게 눌리는 우리 민족의 정말 슬픈 시절을 경험한 사람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누구도 억압하지 않는 자유로운 문화, 나는 그걸로 좋다고 얘기할 수 있는 바탕은 그만한 고통을 겪어봤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 임순만은 독립운동가들의 맑은 정신을 접하는 일이어서 오랜 소설 작업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남북협상에 나선 백범의 대의는 옳았으나 정치적 실패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지날수록 백범의 태도가 맞았다고 본다. 정치인들은 백범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하는데, 한 사람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당장 월드컵 우승을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축구인이라고 얘기한다는 건 이상한 일 아닌가. 백범이 지닌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보여줬던 가능성, 뿌렸던 씨앗이 굉장히 소중하다."

평전이 소화할 수 없는 팩트 사이의 진실을 소설은 감당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가 소설 형식으로 백범을 붙든 이유인데, 그는 이 소설 말고도 이미 3편의 장편을 완성해 놓은 상태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저류에 공통으로 흐른다. 백범은 '역사의 회전문' 저편에 여전히 살아 있다.

'1949년 6월 29일 낮 12시 45분, 안두회가 쏜 4발의 총알이 백범의 가슴을 향해서 날아갔지만, 총알은 백범의 심장까지는 도착하지 못했다. 총알은 비역사의 공간으로 날아갔다. …역사는 다른 쪽의 회전문을 열었다.'_ '강산에 눕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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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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