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순열 칼럼] 가해자, 피해자 뒤바뀐 한일관계

류순열 기자 / 2023-03-22 18:05:50
"일본은 이미 수십차례 반성과 사과를 표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틀렸다. 반성과 사과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어제 사과해놓고 오늘 부정한다면 그게 무슨 반성이고 사과인가.

한일관계는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결단'이었다는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이런 답보상태를 재확인하는 계기였을 뿐이다. 이런 과거사의 매듭을 풀지 않고 양국의 새로운 미래가 열릴 거라고 기대한다면 그건 환상이다.

당장 일본의 태도가 말해준다. 윤 대통령의 구애만 화끈했다. 강제징용피해 해법으로 대법원 판결까지 뒤집고 제3자 배상이란 선물보따리를 안겼다. 보수진영에서도 위헌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큼 파격적 구애였는데도 일본의 태도는 냉정했다. 외무상 하야시 요시마사는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찬물을 끼얹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는 표현을 고집했다. 역시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얘기다.

현찰을 주고 어음을 받은 모양새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 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듯한 형국이 진짜 문제다. 피해자가 사정하고 가해자가 베푸는 듯한 상황을 왜 피해자 스스로 만든단 말인가. 그런 게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는 건 가당찮다.

개인이든 국가든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는 새로운 미래의 대전제다. 그 과거사의 매듭이 풀리지 않는한 한일관계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미래로 가다가도 과거로 돌아가는 도돌이표 구간을 무한반복할 뿐이다.

역류는 이미 시작된 듯하다. NHK 등 일부 일본 언론보도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고작 오므라이스를 대접하면서 "위안부 문제 합의 이행"과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요구하고, '다케시마'(독도)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 아닌가.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도 아니거니와 더욱이 영토주권의 문제 등 하나같이 민감하기 짝이 없는 이슈를 밥 먹다 불쑥 테이블에 올리는 그 오만과 무례, 자신감은 어디서 솟구쳐나온 것인가. 한국이 외교 지렛대를 스스로 놓아버리니 막 질러도 된다고 생각한 것인가.

박진 외무장관은 "한국 정부를 믿나, 일본 언론을 믿나"라며 큰소리쳤지만 그의 국회 답변을 쫓다 보면 일본언론 보도가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시다 총리의 언급은 있었던 거 아니냐"는 물음에 "확인해보니 그런 얘기 없었다"는 똑부러진 답변은 끝내 하지 못했다. "구체적 말씀을 드리기는 적절지 않다"거나 "정식의제로 다뤄진 적 없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만찬장에 배석하지도 않았으면서 "제 기억엔 없다"거나 "그런 얘기 나올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는 '뇌피셜'로 대응하기도 했다.

이쯤되면 총체적으로 이해불가다. 이럴 거면서 왜 그렇게 화끈했나. 왜 그렇게 조급했나. 그러다보니 "천공 스승이 남쪽의 귀인에게 잘 하라고 했나 보다"라는 얘기까지 회자한다.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 놀랍게도 천공이 일본에 대해 참으로 놀라운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회를 이끌고 나갈 사람들은 일본에게 참 고마운 생각을 해야 해요. 우리가 힘이 없을 때 일본이 힘이 돼주고 도움을 받은 적은 있어도 일본한테 당한 사람이 없다. 일본한테 고마운 생각 해야 하는 것이다. 참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이게 다 무슨 소린가. 듣는 귀를 의심할 정도로 몰역사적이고 망국적인 발언이다. 정말 이런 정신나간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천공 장학생'인 것인가. 그렇다면 이건 의심의 여지없이 '주술정치','주술외교'다.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났다.
▲ 류순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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