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내의 죽음 파헤치는 남편
경주마 박제하는 과정과 더불어 아내 영혼 탐색
세상살이의 순리와 배반, 사람에 대한 연민 녹여 -죽으면 다 없어지고 덮어지는 것일까. 아내에게는 끝인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내는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일까.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보호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물개 박제를 수리하며 밤샘 작업을 하다가 아내에게 연락을 안하고 아침 일찍 귀가한 것이 화근이었다. 욕실에서 선명하게 두 줄이 나타난 임신 테스트기를 발견했다. 아내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침묵을 지키다가 그렇게 홀연히 떠나버렸다. 어찌할까. 이순원 장편소설 '박제사의 사랑'(시공사)은 동물 표본 박제사이자 장례지도사인 박인수가 죽은 경주마를 박제하면서 동시에 아내의 삶을 복원해나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한때 장례지도사를 겸업했던 박제사 박인수는 두 직업 사이에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둘 다 주검을 수습하는 일인데 박제사는 죽은 짐승의 생전 빛나는 모습을, 장례지도사는 죽은 사람의 육신을 보살펴 천도하는 일을 거든다.
아내의 '배신'에 치가 떨릴 만도 하지만, 박인수는 차분하게 아내가 왜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렀는지 탐색하기 시작한다. 깔끔하게 지워진 아내의 휴대전화를 처제에게 건네받았지만 이후에도 죽은 이에게 전송된 문자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단서다. 박제사의 임무는 죽은 존재의 생전 빛나는 모습을 찾아 복원해내는 일이다. 그가 아내에게서 찾아낸 생의 고갱이는 무엇이었을까.
"추리소설을 펼쳐들면 거의 결과를 알고 나서는 던져버리는데 한 번 더 들춰볼 수 있는 추리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 소설 속에 서정적인 요소들을 담아보는 게 목적이었어요. 우리나라 소설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지만, 추리소설에는 엽기적 요소가 굉장히 많은데 이번 소설을 구상해놓고 돌아보니 추리소설조차 나는 서정적이구나 싶더군요. 지금까지 이런 서정적인 색채의 추리소설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1985년 단편소설 '소'로 등단한 이후 22편의 장편소설과 소설집 12권을 펴내며 줄기차게 작가의 업을 이어온 이순원의 작품 빛깔은 대체로 서정적이다. 강원도 자연의 품에서 태어나 '유가' 에서 성장한 그의 작품 중 유독 다른 빛깔을 띤 것은 초기작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였다. 전형적인 추리소설 형식을 띤 작품으로, 압구정동 연쇄살인 사건을 설정해 천민자본주의 사회의 욕망과 민낯을 드러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널리 알려진 이 작품 이후 30여년 만에 다시 본격 추리소설을 표방한 작품을 내놓았다.
"내 작품의 바탕색으로는 예외적인 '압구정동'을 내놓았을 때 작가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추리 기법을 동원한 사회파 소설이라고들 표현했는데, 추리소설은 순도가 낮은 장르라는 선입견이 우세한 세태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추리소설도 순문학 안으로 들어올 시기가 지나지 않았나 싶어요. 장르의 벽을 허무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소설을 펼치면서 강력하게 뒷부분을 먼저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추리소설만이 갖는 흡인력이겠죠. 이 소설을 쓰면서 저도 즐거웠습니다."
박제사가 주인공인 이번 소설에서 경주마를 박제하는 과정은 아내의 죽음 배경을 밝히는 일과 더불어 중요한 축을 이룬다. 박인수가 박제를 의뢰받은 죽은 경주마 '나비지르'의 이름은 나폴레옹의 애마 '르 비지르'에서 따온 것이다. 황제와 함께 수많은 전쟁터를 누볐던 말은 죽은 다음 가죽이 벗겨진채 떠돌았다. 삶이라는 전투를 함께 치러낸 동지인 아내 '채수인'의 영혼을 탐색하는 일이나, 살아서 쉼없이 달려야 했던 '나비지르'를 복원하는 일은 같은 맥락이다.
이순원은 박제사의 일을 소설에 녹여내기 위해 볼펜 두 개 높이의 자료를 쌓아놓고 연구하고 공부했다. 그는 말미에 "작품의 완성도와 박제술의 정확한 기술을 위해 직접 박제사 분들을 만나 모든 과정을 취재하고 싶었으나 소설 속 박제사의 자유로운 손길을 위해 자료로만 공부했다"면서 "경주마 한 마리를 내 손으로 박제한 느낌"이라고 부기했다.
"박제는 동물이 살아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모습으로 재현해내는 겁니다. 늙은 사자와 호랑이조차도 늙은 상태를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팽팽했던 시절 갈기 휘날리는 모습을 되살립니다. 박제사는 살을 자르고 가죽을 벗겨내는 도구들을 다루다 보니 '양들의 침묵' 같은 영화에서도 그렇고 게임에서도 주로 엽기적인 캐릭터로 나오죠. 이와는 반대로 박제하는 일 자체의 성실성과 만들어놓은 작품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 말 한 마리의 박제를 시작하고 끝내는 지점에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의문들을 병치시키면서 함께 풀어나가는 박제와 복원, 이것이 이번 소설의 두 축입니다."
아내가 침묵 끝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추리소설에서 결말을 누설하는 건 또다른' 범죄'에 가까울 터, 다만 박인수가 발견한 아내의 행복했던 시절 정도는 밝혀도 무방할 듯하다. 그는 아내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 시절 힘들고 가난하게 살았어도 아내는 여강 한배미들에서 동생들과 함께 지낼 때가 인생에서 가장 꽃 같고 아름다웠다'고 말한 부분을 떠올리며 '예전에는 들어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함께 흔들리며 핀 꽃들로 거친 들판이 아름답고 그걸 견뎌낸 시간이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깨닫는다. 이순원은 '사람에 대한 연민'이 더 앞섰다고 했다. 죽은 말의 주인 정은영은 박인수에게서 받은 '위로'에 대해 말한다.
-선생님이 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부인은 태어나면서 운명처럼 슬픔 속에서 자랐던 사람 같고, 선생님은 그런 부인이 한 번이나 슬픔에서 놓여나 행복했던 적이 있는지, 그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부인이 마음 아플 때 선생님은 그런 위로를 한 번이나 주었는지, 그것이 떠난 부인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죄송하고 아프다고 했어요. …제게도 그것과 비슷한 상황에 그런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그런 위로를 하지 못하고, 그날 선생님으로부터 제가 하지 못한 위로를 받았던 거예요.
김유정문학촌 촌장(2020~) 을 맡고 있는 이순원은 "앞으로도 쓰는 일을 절대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미에 썼다. 그동안 2년 간격으로 장편을 쏟아냈을 만큼 줄기차게 지치지 않고 써 온 그이고 보면, 이런 다짐은 새삼스럽다.
"사단법인 강릉 바우길 이사장(2009~2013) 시절에 바우길을 개척할 때야말로 매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길 위에 있었죠. 촌장을 맡았을 때 문학촌을 발전시키는 게 물론 제일 중요하지만 또 하나는 소설가로서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 문학촌을 빛내는 일이라고 밝힌 적 있어요. 한국 자본사를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보다도 두고두고 읽힐 좋은 연애소설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이순원은 "추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서정적 추리 기법'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목숨을 잃은 동물에 영혼을 불어넣는 박제 작업의 아름다움, 그리고 세상살이의 순리와 배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후기에 썼다. 소설 속 마주(馬主) 정은영이 박인수에게 한 말은, 살아 있을 때 부지런히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역설일 터이다.
-저는 선생님이 한 말씀 중에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어요. 여기는 목숨을 잃고 들어온 동물을 그것이 살아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모습으로 되살리는 곳이라고 한 말이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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