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 대한항공도 경영권 다툼으로 형제간 화목 깨져
서민들도 부모 집 한 채 두고 상속 분쟁 사례 증가 한가위는 한 해 농사를 무사히 지을 수 있게 해 준 조상님께 감사드린다는 의미를 지닌 명절이다. 중국 중추절이나 미국 추수감사절 역시 수확과 관계가 있는 명절이다.
그러나 먹을 것이 사시사철 충분하고 계절을 따져서 수확하는 개념이 줄어든 현대사회에서 명절은 가족이 모여서 서로에 대한 유대와 애정을 확인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평소의 두 배 이상 걸리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고향을 찾아, 가족을 찾아 대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가족이 모이는 이런 명절이 즐겁지도 않고, 가족은 있지만 만나서 애정을 확인할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로 돈 때문이다. 돈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이 불화하고 형제가 싸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재벌 2곳 중 1곳은 형제끼리 재산 다툼, 롯데는 현재 진행
8년 전의 조사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30대 재벌 가운데 승계 문제와 관련해 형제간에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곳이 17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후에도 재벌의 2세, 3세 승계에 이어 4세 승계까지 시작하면서 재산 싸움은 끊임없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그 비율은 더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진행 중인 싸움의 대표적인 것이 롯데 가의 신동주 신동빈 형제의 경영권 다툼이다. 지난 4월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롯데지주, 롯데쇼핑에 이어 롯데칠성 음료 지분을 모두 매각하면서 형제간 다툼이 끝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신동주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정기 주총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에 대해 다시 문제를 제기하면서 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결과는 이번에도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나타나 신동주 회장은 8전 8패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신동주 회장은 롯데의 지배구조에서 최상위에 있는 광윤사의 지분을 50% 이상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승복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두 형제가 명절에 한 상 앞에 모인다는 것은 앞으로 상당 기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범 효성 그룹, 형제간 우의를 강조한 창업주의 뜻과 달리 3세 승계에서 갈등 표출
효성 그룹 창업주 고 조홍제 회장의 경우를 보면 형제간의 재산 싸움은 더욱 안타까워 보인다, 경상도 양반가의 자손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재산이라는 것은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들어오기도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내세웠지만 3세 승계 과정에서 어느 재벌 집안보다 뜨거운 분쟁을 겪었다. 조 창업주는 세 아들 조석래, 조양래, 조욱래에게 각각 효성과 한국타이어, 대전피혁을 물려주면서 2세 승계는 순조롭게 넘어갔다.
그러나 3세 승계 과정에서 효성에서는 차남 조현문이 장남 조현상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또 한국타이어에서는 조양래 회장이 차남 조현범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자 장녀가 나서서 아버지의 정신 이상 여부를 감정해 달라는 성년 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 두 집안의 경영권 분쟁은 지분 상으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지만 다시 보지 않을 듯 싸운 형제간 감정의 골은 메워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명절은 반쪽 모임에 그칠 것이다.
한진그룹, 2세 3세 모두 경영권 갈등
고 조중훈 회장이 세운 한진그룹은 대를 이어서 경영권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2002년 사망한 조 창업주는 장남 조양호 회장에게 대한항공을, 차남 조남호 회장에게는 한진중공업을, 3남 조수호 회장에게는 한진해운을, 4남 조정호 회장에게는 메리츠금융을 물려줬다.
그러나 2006년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선친이 재산 분배에 대한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는데 조작된 유언장이 공개됐다고 주장했다. 조양호 회장은 유언장 조작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결국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했다. 법원은 조양호 회장 손을 들어줬지만, 조양호 회장이 2019년 사망할 때까지 형제간의 우의는 복원되지 못했다.
그 이후 대한항공의 3세 승계 과정에서도 형제간 갈등은 재연됐다. 고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회장과 큰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공개적인 지분 싸움을 벌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아시아나 합병이라는 변수가 개입하면서 조원태 회장의 완승으로 일단락됐지만, 이 집안 역시 형제간의 우의를 회복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형제간의 싸움, 극적인 화해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재산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지만 결국에는 형제간에 화해로 마감하는 해피앤딩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화의 김승연, 김호연 형제는 3년 6개월간 소송전을 벌였지만. 극적으로 화해했다. 삼성 이맹희 이건희 형제는 직접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맹희 장례식에 이재용 회장이 조문하고 이건희 회장 장례식에는 이재현 회장이 참석하는 모습을 보였다. 3세간에는 다시 화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한진그룹도 조양호 회장의 장례식에 조정호 메리츠 금융 회장이 조문하면서 살아서는 화해하지 못했지만, 마지막에는 형제의 정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재벌 그룹에 근무하는 임원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게 회장님 형제간의 다툼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신이 모시는 사람을 위해 지나치게 상대방을 비난했다가 나중에 형제간에 화해하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경영권을 두고 빚어지는 재벌가의 싸움을 보면 나중에 화해하기에는 너무 많이 나간다는 걱정을 감출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재산을 둘러싼 형제간의 싸움, 재벌만의 일은 아닌 듯
부모의 재산을 둘러싼 형제간의 다툼은 비단 재벌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법원의 통계를 보면 재산을 둘러싼 상속 분쟁은 지난 10년간 3만300건에서 4만3799건으로 40%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지금 부모 세대는 상위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는 물려줄 것을 걱정할 만큼 재산을 모은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집 한 채 가진 것이,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재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부모님의 집 한 채를 두고 형제간에 다툼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지금 젊은 세대를 두고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첫 번째 세대라고 한다. 부모로부터 뭔가 물려받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도약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형제간의 우의도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한가위 명절에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불화하는 형제들이 많아진 것이다.
고루한 얘기지만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형제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길을 가던 형제가 금덩어리 두 개를 주워서 하나씩 나눠 가지고 나룻배를 탔다. 배가 중간쯤 갔을 때 동생이 가지고 있던 금덩어리를 갑자기 강에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형이 놀라서 왜 귀한 금덩어리를 버리느냐고 물었다.
동생은 평소 형님을 존경해왔는데 금덩어리를 주운 뒤부터 만일 형님이 안 계셨으면 금덩어리 두 개를 모두 내가 가졌을 터인데 형님 때문에 한 개밖에 못 가져 형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 던졌다고 답했다. 그러자 형도 자신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면서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버리고 두 형제가 서로 손을 잡고 기뻐했다는 것이다.
이번 한가위 명절에 평소의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운전해 부모님을 뵙고 형제간에 우의를 다지며 소소한 행복을 느꼈을 보통 사람들이야말로 주운 금덩이를 강에 던진 형제가 아닐까? 그래서 이들의 삶이 더욱 소중해 보인다.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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