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달성군(현 대구시 동구)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은 1951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해 6·25 전쟁에 사관생도 자격으로 참전했다. 1955년 소위에 임관했고, 1967년 수도기계화사단 맹호부대 소속 연대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됐다.
1979년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 사단장으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고,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 비상대책위원과 국군보안사령관 등을 맡은 후 1981년 대장으로 전역했다.
이후 제5공화국에서 정무2장관,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대한체육회장, 제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등을 지냈다.
1987년 민주정의당 총재에 올라 대통령선거인단 투표를 통해 차기 대통령에 무난히 오를 것으로 보였으나 6·10 민주항쟁에 가로막혔다.
같은 해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실현했고, 12월 16일 열린 대선에서 36.6% 득표를 기록하며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 후보'를 모두 누르고 당선됐다. 이듬해인 1988년 2월 5년 임기인 13대 대통령에 취임해 제6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1990년에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해 초대 총재에 올랐다. 1992년에는 김영삼 민자당 대표의 요구에 따라 탈당하여 사상 첫 '중립 내각' 시대를 열었다.
1994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후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5년 비자금 사건이 터져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은 후, 같은 해 12월 20일 김영삼 정부에서 사면복권됐다. 추징금은 2013년 즈음에 완납했다.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생활해왔다. 이후 암이 재발하고 소뇌 위축증을 앓는 등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돼 자택 요양 생활을 해왔다.
취임 후 노동운동 등 민주화 조치 실현, 러시아·중국 등과 수교 및 회담을 성사시킨 북방외교, 인천공항 등 사회간접자본 확보,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이 업적으로 꼽힌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 씨, 아들 재헌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KPI뉴스 / 김명일 기자 terr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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