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는 1919년 3·1운동을 전세계에 알린 당시 UP(United Press·지금의 UPI) 통신원 앨버트 테일러가 한국에서 아내와 살던 집이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의미를 가진 딜쿠샤는 종로구 행촌동에 지하1~지상2층의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딜쿠샤의 주인 앨버트 테일러는 1896년(고종 33) 조선에 들어와 평안도, 충청도 등에서 금광을 운영한 광산 사업가였다. 1917년에는 영국인 메리 린리(Mary Linley)와 결혼해 조선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 3월 1일 부인이 아들 출산을 위해 입원 중이던 세브란스 병원 외국인 병실 침상에 누군가 숨겨둔 3·1운동 독립선언서 사본을 발견했다. 이후 그는 그것을 갓 태어난 아들의 침대 밑에 숨겨 밖으로 내보냈다.
그날 밤 앨버트는 동생 윌리엄을 시켜 독립선언문을 도쿄의 통신사로 전달한다. 윌리엄은 독립선언문을 구두 뒤축의 빈 공간에 숨겨 서울에서 도쿄까지 이동했다. 미국 지역 언론들은 UP통신이 타전한 기사를 받아 1919년 3월 10일 3·1운동을 처음 소개했다.
앨버트 테일러는 이후 UP 외의 다른 통신사 제안을 받아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기도 했고, AP 통신원으로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제의 만행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1942년 조선총독부의 외국인추방령에 의해 추방됐고, 딜쿠샤는 장기간 방치된 채 훼손됐다. 이후 서울시가 2018년 복원 공사에 착수한 후, 지난해 12월 공사를 완료했다. 내부 1·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 거주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나머지 공간은 테일러 가족의 한국에서의 생활상과 앨버트 테일러의 언론활동 등을 조명하는 6개의 전시실로 구성했다.
이번 주출입구 계단의 개방으로 딜쿠샤 관람객들은 기존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과 함께 3호선 독립문역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특히 경교장과 딜쿠샤를 거쳐 독립문, 서대문형무소로 이어지는 항일문화 유산 답사길로도 활용될 수 있어 역사도시 서울의 관광 루트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경로는 독립문역 3번 출구에서 독립문 방향으로 직진, 독립문역 사거리에서 사직터널 방면으로 좌회전 한 후 영락농인장로교회 옆 골목으로 올라오면 된다. 도보로 약 10분이 소요된다.
가는 길은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와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딜쿠샤에 방문하려면 공공서비스예약 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해야 한다.
KPI뉴스 / 김지원 기자 k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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