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편하게, 사람은 불편하게'…세계적 추세 역행 '교통섬'

김명일 / 2021-08-03 16:57:22
주의 운전 어렵고 속도 빨라져 보행자 사고 속출
노약자·어린이에 더 위험…"이제 철거를" 지적
70대 노부부는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횡단보도를 천천히 건넜다. 신호등 구간이 끝났지만 짧은 횡단보도를 하나 더 건너야 했다. 이들을 발견한 차량은 멈춰섰다. 짧은 횡단보도에는 차량 진입통제 시설이 전혀 없었다.

50대 중반 여성인 김현희 씨는 3일 서울 강동구의 한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진입 차량을 보며 멈칫했다. 차량이 멈추자 재빨리 건너 신호등이 있는 교통섬에서 파란불을 기다렸다. 김 씨는 "이 곳을 건널 땐 신경쓰인다"며 "차를 몰 때도 마찬가지로, 운전자도 보행자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3일 서울 강동구 천호사거리의 교통섬 횡단보도를 시민들이 건너고 있다. [김명일 기자]

두 곳의 공통점은 '교통섬' 방식인 횡단보도라는 점이다. 교통섬은 사거리에서 우회전 자동차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보행자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릴 수 있도록 차도상에 섬처럼 설치해 놓은 시설이다. 이런 방식은 90년대부터 차량 정체가 심한 사거리에 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섬을 설치하면 우회전 차량이 차량신호와 보행신호에 구애받지 않고 갈 수 있어 교통 흐름 개선 효과가 있다. 그러나 우회전 차량 속도가 높아지고, 차와 보행자 간 사고 가능성이 커지며, 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신호나 시설이 전혀 없어 위험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확인된다. 일반 교차로에서 우회전 차량 속도는 평균 시속 29.45㎞인데 교통섬 구간은 31.61㎞로 7.3% 빨랐다. 공단이 2707명을 상대로 한 인식 조사에서도 응답자 94.9%가 교통섬 설치 교차로를 위험하다고 느껴,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5.1%)는 답을 크게 앞섰다.

실제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잠실나루역 인근 교차로에서 차량이 교통섬에 돌진해 3명이 부상당했다. 지난 1월 31일 충북 청주 용암동의 왕복 6차로 도로에서는 18세 배달원이 몰던 배달 오토바이가 넘어져 교통섬까지 미끄러지며 보행자 3명과 충돌했다.

▲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횡단보도를 시민들이 건너고 있다. [김명일 기자]

김 씨는 "움직임이 빠르지 않은 노인도 그렇고, 유모차를 밀거나 어린이와 동행하는 여성에게는 더욱 위험하다"며 "없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행자 중심으로 도시 교통 체계를 바꾸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육교와 지하도를 폐쇄하고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사례도 늘고 있고, 차도를 줄이고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늘리는 등 '보행자는 편하게, 차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선진 도시들의 방향이다. 이런 흐름에서 보행자의 불편을 담보로 차량 통행을 늘어나게 하는 교통섬은 시대적 추세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시군 등 기초지자체가 판단해 교통섬을 철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KPI뉴스 / 김명일 기자 terr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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