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소중하게 만들면 소중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장인은 만들지 않는다. 영혼을 심는다. 장인의 손에서 나오는 건 물건이 아니다. 혼이 깃든 창작물이고 예술이다.
'더 많이, 더 빨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하나 하나 정성을 다해 빚어내는 장인은 세상을 거꾸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속도와 물량에 갇혀 무엇이 소중한지도 모를 때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길을 돌리게 한다.
장인은 아무리 대량생산·대량소비사회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 그 우직함에서 나오는 작품들은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영혼을 담아 만든 작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지난 1월 중순 경기 안성의 유기 공방.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김수영(72) 유기장이 혼을 불어넣어 작업하는 창작 현장이다. 그는 이곳에서 선친 고 김근수 선생에게 가업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유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물건은 만드는 사람이 소중하게 다뤄야, 사용하는 사람도 소중하게 다루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유기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시기는 삼국시대다. 주로 불교와 관련된 불상, 범종 등을 청동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고려 시대에는 상류층에서 밥그릇, 제기 등의 동제품을 사용했고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시대부터이다.
특히 안성유기는 관청이나 한양(서울)의 양반가들 주문을 도맡았다. 특별한 주문을 받아 우수한 제품을 만든 것으로 '모춤(마춤)'으로 불렸다.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됐다.
"유기는 빛깔이 중요합니다. 재룟값 낮추려고 값싼 원자재를 사용하면, 바로 나타나요. 오늘은 용광로에 재료를 녹이는 날입니다."
유기그릇은 동과 주석의 합금으로 해독작용을 한다. 음식을 담아 두면 여러 가지 음식을 변하게 하는 요소들을 방해하고 균의 번식을 막아 준다. 또 독이 들어간 음식을 담으면 색이 변한다. 그 때문에 유기그릇은 궁궐에서 음식의 독성 유무를 판단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안성 유기만의 빛깔과 선이 있습니다. 성형 후 껍데기 가공을 해야 하니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작업입니다. 우리가 음식점에서 음식이 유기그릇에 담겨 나오면 대접받는 느낌을 받는 게 이런 과정 때문이지요."
"유기하면 밥그릇, 접시만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유기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빛깔과 디자인이 매우 중요하고요."
유기 이야기를 들려주던 김수영 선생이 지난날을 회상했다.
"1960년대에 선친께서 미국의 유명 백화점으로 유기를 수출하셨어요. 당시 우리나라 수출액이 1억 달러도 안 됐을 때인데…. 자부심이 컸습니다. 유류파동 때는 힘들었죠. 그러다 1980년대에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났어요. 당시 난방, 주방 형태가 많이 바뀌었죠. 연탄가스에 색이 변하던 유기그릇이 도시가스, 보일러로 주거 환경이 바뀌자 사람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어요. 건강에 좋으니까요."
김수영 선생은 고궁박물관 종묘 제기와 현충사 제기, 경복궁 건청궁 생활 기물, 돈암서원 제기, 향간향교제기, 전주이씨 효령군파 종중 제기, 동구릉 제기, 원산군묘 제기, 삼각산 동당제 제기, 전주 경기전 어진박물관 제기 등 많은 제기 복원 및 재현 사업을 했다.
"선친께서 생전에 인간문화재 유기장이셨어요. 어릴 적 아버님 일을 돕고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습니다. 전수자가 된 이후 일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저도 국가중요무형문화재가 된 거 같습니다."
"유기그릇은 참 좋으면서도 재밌는 점이 있습니다. 한번 마련하면 정말 오래 사용하시죠.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을 만큼 파손율이 낮습니다. 새제품을 다시 사러 오시는 기간이 정말 길어요. 이점이 참 재밌습니다. 또 예전에는 고봉밥에 쌀 소비량도 많았지만, 요즘엔 식생활이 바뀌고 쌀 소비도 줄었습니다. 따라서 유기그릇 크기도 점점 작아졌지요. 대신에 모양은 더 섬세해졌다고 할까요. 찾는 분들이 예전과 달리 디자인을 많이 보십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릇 하나라기보다 예술품을 만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KPI뉴스 / 문재원 기자 m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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