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 문래동 일대는 1900년대 초 경성방직, 조선피혁주식회사 등 대규모 방직공장 단지를 시작으로 1960년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철공소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며 IMF 외환위기와 중국산 부품, 산업 변화 등의 이유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또 도시 내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기존 공장들이 지방으로 대거 이전됐다.
공장과 원주민이 떠난 문래동. 적막감도 잠시, 문래동엔 예술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홍대, 대학로의 높은 임대료에 밀려 새로운 작업실을 찾던 예술인들은 공장의 편한 작업 환경과 낮은 임대료 등의 이유로 문래동에 모여들었다.
예술인들로부터 문래 창작촌으로 불리기 시작한 뒤 세간의 관심이 늘자 창작촌엔 음식점과 카페 등 요식업계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문래동은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철공소 사이의 개성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로 젊은이들에게 핫플레이스로 불리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3일 기계금속 공장과 예술공방, 핫한 카페가 공존하는 영등포역 인근 경인로와 문래창작촌 일대 3곳을 '특화가로'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변화를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문래동에서 30년 가까이 커피숍을 운영한 장경애 씨는 "요즘 문래동이 활성화가 되고 사람들이 알아주니 좋긴 하다. 그런데 우리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우리 커피숍을 찾던 손님들은 다 금형 공장을 하던 시대의 사람들이었다. 점점 카페나 술집, 음식점이 늘고 있다. 자기들이 인테리어까지 하고 들어온다는데 건물주 입장에서 우리보다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임대료는 오를 거고, 같이 잘 살면 좋지만…힘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년 전 이곳 창작촌에 들어온 '4414 가죽공방' 대표 이경화 씨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동네 분들과 같이 어울리며 소통하는 곳이 되길 바란다. 이 상태에서 기존 공장들과 공방들이 함께 공존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벌써 창작촌 임대료는 변하고 있다. 너도 나도 더 내고 들어오겠다는데 임대료 문제는 기존에 계셨던 분들부터 지금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들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창작촌이 발전하는 건 좋지만 임대료도 같이 오를 게 분명하다"고 토로했다.
KPI뉴스 / 문재원 기자 m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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