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덜고 건강도 덤으로 '일석이조'
"택배기사 과로사 뉴스에 분노 일어요" 지난해 6조 원 규모로 급성장한 택배 산업. 코로나19 사태 이후 물량은 더 급증했다. 동시에 화려한 이면에 숨겨진 그늘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총알 배송은 소비자의 '빨리빨리'니즈를 채워줬으나 그 이면엔 살인적 업무량과 불공정계약이 있었다. 올해만 택배기사 14명이 과로로 숨졌다.
배송의 세계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살인적 환경만 제어한다면 그 세계도 보람과 긍지가 넘치는 삶의 현장이다. '실버 택배'의 세상이 그랬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건물.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모여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곳은 평균 연령 70세의 실버퀵 지하철 택배 사무실이다. 지하철 요금이 무료인 65세 이상 시니어들이 택배원으로 일하는 현장이다.
"북한산우이역에서 인천", "여의도 의원회관"
"네, 지금 갑니다."
전화가 끊어지자 TV를 보며 앉아 있던 시니어들은 단숨에 가방을 챙기고 택배 준비를 마쳤다.
최영식 씨는 내비게이션 확인 후 71세의 걸음속도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선생님 원래 이렇게 걸음이 빠르세요?"
"네 , 이 일을 하고 자주 걷다 보니 더 건강해졌어요. 우리같은 은퇴자들, 노인네들이 제일 어려운게 뭔지 알아요? 하루 하루 시간을 때우는 거에요. 나는 이거 하면 몸에 엔돌핀이 돌아요,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함께 일하는 거에 행복을 느껴요. 늙어서 가만히 있으면 병 나요. 그 빼기 힘들다는 뱃살도 잘 빠지구요."
하루 2건 정도 배달을 하면 대충 2~3만원 정도는 번다고 한다.
"이제 이 서류 들고 인천갑니다. 조심히 들어가요."
"IMF 때 사업 실패 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참 고민 많이 했어요."
오전 업무를 마친 실버퀵지하철택배 배기근 대표는 기자에게 20년 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아침 9시에 어느 물건을 갖다달라고 퀵배송을 주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오후 5시나 돼서야 젊은 학생이 물건을 가져오더군요. 그 경험을 하면서 아, 퀵배송 일이 많구나, 돈 벌 수 있겠다, 하는 생각에 무작정 시작했어요. 그러다 공원에서 건강하시고 말도 잘하시는 노인들이 바둑만 두고 계신걸 보고, 저분들이랑 같이 일하면 좋겠다 싶어서 한 세월이 벌써 20년이 됐네요."
배 대표는 요즘 잇달아 발생한 택배 기사의 과로사 뉴스에 분개했다.
"나는 요즘 택배 기사 과로사라는 뉴스를 볼 때, 화가 나는 걸 넘어 아주 분개해요. 어떻게 한 사람한테 분류와 배송을 다 시킬 수 있어요? 일 양이 터무니 없이 많은거예요. 젊은 나이에 한창인 사람들이 일을 하다 과로로 죽는다...이건 정말 분개할 일입니다. 대기업 택배사의 운영 방식은 잘못됐어요, 지금이라도 시스템을 다 바꿔야 합니다."
다음 배송 전화가 들어오자 이번엔 분홍 외투를 곱게 차려입으신 할머니가 사무실 문을 나섰다.
"노오란 은행잎 비가 내리네요"
배송할 물건을 들고 길을 걷던 실버퀵 지하철 택배원 김진순(79)씨가 말했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매일 걷다 보니, 몸이 더 건강해졌어요. 오늘 3만보 넘게 걸었어요. 이 나이에는 가만히 있으면 병 나요,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해야..."
79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은 사람들 속에서 당당히 길을 걷는 김진순 씨.
64학번 대학생활 이야기, 어릴 적 부모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하는 김진순씨의 모습은 공원에 산책을 나온 여느 할머니의 모습과 같았다.
"일할 땐 행복해야 해."
"배송 완료 여의도역, 오더 주세요" 김씨는 능숙하게 메시지를 날렸다.
KPI뉴스 / 문재원 기자 m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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