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리포트] 인종차별주의 꺼내든 트럼프, 50년전 닉슨은 성공했지만...

공완섭 / 2020-09-07 08:53:02
트럼프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
소수계·백인여성 표심 등돌려
바이든 상대적 이득으로 앞서
고질적인 '미국병' 인종차별 이슈가 미 대선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지난 6월 절정에 달했던 흑인인종차별 반대 시위(BLM:Black Lives Matter)가 잠시 가라앉는 듯하더니 위스컨신주 커노샤 제이콥 블레이크 피격사건으로 재점화했다.

게다가 지난 3월 뉴욕주 로체스터에서도 경찰이 흑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얼굴에 복면을 씌워 사망하게 한 비디오가 최근 공개되고, 지난 2일에도 워싱턴 DC에서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인종갈등이 선거정국에 태풍의 눈으로 돌변하는 양상이다.

인종차별 이슈는 코로나와 경제회복 등과 달리 확연하게 선호가 나누어지기 때문에 판세를 좌우할 결정적 변수로 간주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두 후보의 태도는 극명하게 대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일 위스컨신주 커노샤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제이콥 블레이크가 자녀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비무장상태에서 경찰에 7발의 총을 맞고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찾은 그는 정작 블레이크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가족을 찾지도 않았다.

트럼프는 그 대신 경찰들과 식사하면서 시위대의 약탈과 기물파괴 행위 등을 언급하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느라 고생 많았다"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드러내놓고 경찰편을 든 것이다. 게다가 42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조 바이든 후보가 시위대 요구를 수용, 경찰 예산 삭감을 공언한 것을 의식한 조처였다. 10대 백인 소년이 총을 난사, 시위대 두 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도 백인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법과 질서(Law & Order)'를 강조하면서 시위대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트럼프 전략은 사실 1960년대식 낡은 인종차별주의 수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68년 대선 때 공화당의 닉슨은 린든 존슨 행정부가 사회 혼란에 제대로 대처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법과 질서를 수호하겠다며 백인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썼다.

유권자를 백인과 비백인으로 나누고, 백인표를 얻기 위해 흑인과 소수계들에게 범죄, 무질서 등의 이미지를 덧씌운 다음,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안전과 안정을 원하는 백인들의 표심을 노골적으로 자극했던 것.

그 결과 닉슨은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그 전략을 벤치 마킹하려고 작정한 것일까. 트럼프가 50년이 지난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의 주요 타겟은 자신에게 등을 돌린 백인 여성표. 지난달 말 백악관을 떠난 캘리앤 콘웨이 선임고문은 "혼란과 무정부주의를 강조하는 방식이 먹힐 수도 있다"고 말해 트럼프가 '닉슨 따라하기'하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조지아주 오티스 존슨 전 새버나시장도 "트럼프는 인종차별적 공포를 부추겼던 고전적인 각본을 먼지구덩이에서 다시 꺼내들었다"고 비판했다.

시위가 다시 거세지자 조 바이든도 인종주의 카드로 맞섰다. 지난 4일 커노샤를 방문, 블레이크의 부모와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사법체계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가해 경관을 기소해야 한다" 고 말했다.

바이든은 "구조적인 인종차별은 사라져야 한다"며 선거를 통한 심판을 역설했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경찰 편을 든 걸 의식, 의도적으로 시위대 쪽에 선 것이다.

인종주의가 선거에 미치는 파장은 어느 정도인가. 폴리티코가 모닝컨설트 여론조사기관과 공동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 6월 61%로 정점을 찍었던 BLM지지도는 두 달만에 52%로 줄었다. 민주당 여론전문가인 코넬 벨처는 이처럼 인종이슈가 큰 진폭을 보인 것은 "시위대가 인종이슈를 선거쟁점으로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트럼프가 시위대를 폭도, 무정부주의자로 몰아가는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고 트럼프 지지율이 올라간 건 아니다. 9월 초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바이든 50%, 트럼프 42% 로 바이든이 여전히 8% 포인트 앞서가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와 야후뉴스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바이든 50%, 트럼프 39%의 지지를 얻어 11% 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지난달 전당대회 이후에도 지지도 격차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 두 후보 모두 컨벤션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모닝컨설트 카일 드롭 선임연구원은 "인종차별에 관한한 트럼프가 네거티브 방식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바이든은 긍정적 신뢰감을 심어주고 있어서 지지율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가 승리를 거둔 곳이자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 미시간주의 민심도 돌아섰다.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에 따르면 UCLA 내이션스케이프와 데모크라시 펀드가 공동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바이든이 48%, 트럼프 42%로 바이든이 앞서가고 있다. 역시 인종차별 이슈가 판도를 뒤집었다. BLM 운동 추세를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54%인 반면, 부정적 견해는 37%였다.

위스컨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등 대표적인 러스트벨트 지역에서 승리함으로써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트럼프가 이 지역에서 소수계 인종차별 철폐 요구를 외면한 것은 결정적인 패착으로 간주되고 있다.

조지아주 여론조사 기관 HIT스트레티지 테런스 우드베리 연구원은 인종차별 문제가 선거의 핵심 이슈가 될 것이라고 보는 유권자가 79%나 된다고 밝혔다. 그는 "안전이나 범죄 같은 건 백인여성의 관심사가 아니고, 코로나19 바이러스, 경제, 인종차별 같은 이슈가 최대 관심사"라고 지적했다.

소수계 유권자 비율은 30%선. 2016년 선거를 백인 노동자 계층이 좌우했다면 2020년 선거는 소수계 노동자들에 달려 있다고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사실 흑인 커뮤니티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트럼프의 재선을 막아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워싱턴포스트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흑인 10명 중 8명이 트럼프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응답했다. 10명 중 9명은 업적이 형편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트럼프는 재임 중 이민자, 소수계를 차별하는 조치를 잇따라 취함으로써 흑인은 물론 소수계 지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차 대전 이후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확률은 4명중 3명꼴. 웬만하면 현직의 프리미엄을 살려 재선에 성공하기 마련인데, 트럼프는 30%의 소수계 표를 사실상 포기하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의 재선 가도가 밝지 않은 이유다. 

KPI뉴스 / 공완섭 재미언론인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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