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생산성↓…재택근무 반년의 빛과 그림자

이민재 / 2020-08-26 11:09:49
직장인 84% 재택근무 만족…"삶의 질 높고 업무 효율도 좋아"
준비 안된 전통산업…관리·감독 쉽지 않고 업무 지연·끊김 발생
"'똑똑한 재택'근무 하려면…평가 시스템·소통 체계 마련이 관건"

출퇴근 시간이 사라졌다. 여유가 생겼다. 업무 효율도 좋아졌다. 삶의 질이 높아진 걸 느낀다. 코로나19가 연 재택근무의 시대. 직장인들은 만족스럽다.

유통회사 마케팅팀 2년차 A(28·여) 씨는 통근 시간만 3시간이었다. 화장과 옷차림을 포함하면 더 늘어난다. A 씨는 요즘 아침엔 더 자고 '저녁 있는 삶'을 누린다.

직장인들에게 재택근무는 이제 익숙하다. 코로나19 재확산과 함께 재택근무도 재확산 중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도 과거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이제 재택근무가 미래 근무형태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전망은 낯설지 않다.

부드럽게 안착할는지는 알 수 없다. 아직은 충분한 준비도 없이 급하게 돌입한 실험일 뿐이다. 그래서 그림자도 짙다. 회사 입장에선 생산성, 효율성이 떨어진다. 소통이 답답하다. 직원 근태 관리에도 구멍이 뚫렸다. 딴짓하는 직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회사는 불안하고 불만족스럽다. 유통, 건설 등 대면 업무가 주류인 전통산업 부문에서 특히 어려움을 토로한다.

재택근무 시대 돌입 반년이 훌쩍 지났지만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다. 보편적 근무 형태로 자리잡기까진 갈 길이 멀어보인다.

▲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시대가 가속화하고 있다. 미래 보편적 근무형태로 안착할지는 미지수다.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다. [픽사베이]


"삶의 질 높아져…업무 효율성은 덤"

재택근무 경험자들은 '재택근무로 삶의 질이 올라갔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조사 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를 경험한 직장인의 84.4%가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A 씨 역시 통근 시간을 아껴 평상시보다 아침에 1시간 반가량 더 잘 수 있게 돼 피로도가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전 9시부터 업무가 시작되니 8시 30분 정도에 일어나면 된다"면서 "옷도 차려입을 필요 없고 이 파자마 차림으로 업무를 할 수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또 A 씨는 올해 초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 회사를 나갈때는 구내식당이나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는데 재택근무를 하다보니 배달음식보다 직접 조리해서 먹게 되면서 생긴 취미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B(32) 씨는 업무 효율도 올랐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도 많을 때는 4차례 까지 있었던 회의 횟수도 확실히 줄었고, 상사 눈치를 보는 등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도 없어졌다"면서 재택근무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재택근무를 부분적으로 경험한 IT업계에서는 재택근무가 확대된 후에도 높은 업무 효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게임업체의 개발자는 "코로나 이전부터 사용해온 협업 툴과 시스템을 바탕으로 차질 없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작업 기록은 공용 클라우드에 모두 저장돼 있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고민 깊은 전통 산업…생산성 저하, 근태 감독 어려워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전통산업 기업들의 고민은 반대로 깊어지고 있다. 재택근무 도입이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다 보니 '방역' 문제가 아니면 되도록이면 빨리 끝내고 싶어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생산성 저하와 근태 등 직원들의 업무 감독과 관리의 문제가 크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업계의 특성이 보수적이다 보니, 시스템과 문화 모두 재택근무를 계속 유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결재가 있어도 대면보고가 필수고, 심지어 '급하지 않으면 재택근무 끝나고 대면보고한 뒤 처리하라'는 말까지 나온다"면서 "업무가 지연되거나 끊기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비대면 업무 특성상 실시간으로 근태를 관리하기 어렵고, 결국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3월부터 재택근무에 돌입했다는 건설사의 영업팀 사원 C(29) 씨는 "우리 회사는 일정 시간 컴퓨터에서 클릭이 없으면 기록을 남기는 근태 체크 프로그램을 동원해 관리, 감독을 하고 있는데 일부 사원들은 자동으로 클릭을 만드는 '매크로'를 켜두고 다른 볼일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처음에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관리·감독이 없으니 장기적으로는 일의 집중도는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면서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재택근무를 통해 생산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재택근무 안착하려면 평가·소통 시스템 필요

재택근무가 앞으로 일반적인 업무형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글로벌 IT기업을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최근 "봉쇄조치가 풀려도 원격근무와 온라인 행사를 계속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잭 도시 트위터 CEO는 아예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에도 원하는 직원들에게 계속 재택근무를 허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재택근무가 생산성 저하 등 부작용 없이 안착하려면 업무 성과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임직원의 근태 등을 통제할 방법이 사실상 사라진 상황에서, 성과에 대한 객관적 지표를 중심으로 생산성 유지나 향상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강성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재택근무가 장기화하면 정확한 평가시스템이 필요해질 것"이라면서 "임직원들도 자유가 더 생긴 대신에 결과로 입증해야 회사와 근로자 모두 상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원활한 비대면 업무를 위해 '소통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제까지 대면 소통을 기반으로 한 업무에 익숙했지만, 재택근무 상황에서는 비대면 소통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비대면 소통 시스템 마련과 이에 대한 교육 훈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KPI뉴스 / 이민재 기자 lm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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